부산 중앙동 40계단 근처는 다양한 카페들이 즐비해 있다. 그 가운데 연극 공연을 하는 소극장이 카페와 함께 운영되고 있는 곳이 있다. 지하철 중앙역 11번 출구로 나와 40계단 쪽으로 가다 보면 옛날 모퉁이 극장이 있었던 건물 2층. ‘스페이스 고도’가 그곳이다. 평일 낮에는 카페로 운영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연극 단체 ‘극적공동체 고도’의 작업 공간이다. 커피를 마시러 들어왔다가 공연을 발견하고, 공연을 보러 왔다가 다시 카페를 찾게 되는 곳. 연극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작은 문화 공간인 셈이다. 커피를 마시며 공연을 접하고, 이후 실제 공연 관람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작은 시도이다.
시작은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 진행되던 ‘에쯔 ETS’ 워크숍이었다. 방학마다 조창주 연출가가 학생들과 함께 진행하던 이 워크숍에 참여했던 이들이 중심이 되어 극단을 만들게 됐다. 초기 멤버들은 시간이 지나며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났지만, 그 과정에서 형성된 작업 방식과 공동체 문화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고도는 김재현 대표를 포함하여 총 9명의 단원들로 운영되고 있고, 단원 모집은 매년 진행되지만 공간 규모와 작업의 적정성을 위해 최대 15명이 적정 인원이라고 한다. 김재현 대표는 고도의 단원들이 단순히 공연을 만들기 위한 동료라기보다는 함께 공간을 운영하고 생활을 함께 이어나가는 ‘연극 마을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점이 매우 인상 깊었다.
극적공동체 고도의 정기 공연은 오랫동안 조창주 연출가의 작업 스타일이 중심이 되어 왔다. 작품들은 대체로 실험적인 성향을 띠며, 쉽게 소비되는 이야기보다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많다. 관객이 공연을 보고 바로 이해하기보다는 공연이 끝난 뒤에도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을 선호하는 편이다. 최근 선보인 작품 <바다와 양산>은 결이 다른 사실주의극이었고, 이로 인해 관객들의 감상평이 나뉘기도 했다고 한다. 고도의 마니아 관객들은 다른 스타일로 인해 아쉽다는 소감을 전했다고도 한다. 이후 극단에서는 고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실험적인 작품과 대중적인 작품을 균형 있게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고도에서는 지속적으로 “들린다락”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낭독극을 공연해 왔다. 작년에는 오디오 극장으로 김유정 작가의 1920년대 작품 "야앵”을 각색하여 입체낭독극으로 만들었고, 이를 시각장애인을 위한 찾아가는 공연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올해도 이 공간에서 2인극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등 다양한 작은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극단 내부에는 ‘울타리 회원’이라는 협력 네트워크가 있다. 정식 단원은 아니지만 작업의 취지가 맞을 경우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협력 관계다. 과거 레지던시 활동 시기에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구조로, 필요할 때 서로의 작업을 돕는 네트워크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협력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여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공연 <페튜니아를 짓밟은 거인>도 기획해 보고 있다고 한다.
올해 극단은 재단의 ‘시어터링크(Theater Link)‘ 사업에 선정되어 창작 공연 제작뿐 아니라 연기 훈련 프로그램, 태국 극단 ‘타렌트 쇼(Talent Show)’와 협력해 오브제와 마임 중심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다. 신작 공연으로는 극단의 창작 프로젝트인 ‘위버멘쉬(Ubermensch)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 준비되고 있다. 위버맨시는 인간과 사회를 주제로 한 블랙 코미디로, 이번 작품은 공동 창작 방식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기존 레퍼토리 공연도 다시 무대에 오른다. 극단이 꾸준히 공연해온 작품인 <더 스트롱거(The Stronger)>와 <제10층>이 새로운 단원들과 함께 다시 제작될 예정이다.
고도의 역사와 공간 안내를 해주신 김재현 대표는 고도의 배우이기도 하다. 그에게 연극은 삶의 구심점이라고 한다. 개인과 극단의 삶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도 말한다. 생각하는 삶의 태도를 연극을 통해서 배워간다는 그는 고도 안에서 숨 쉬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내려주는 따뜻한 커피와 문정희 배우님이 차려준 깜파뉴를 먹으며 책장에 꽂혀 있는 “가난한 연극”이란 책을 본다. 공연에 쓰인 여러 오브제들, 공연 포스터들, 비치되어 있는 고도의 매 회차별 팜플렛들에 둘러싸여 연극이란 어떤 것인가 가늠하며 함께 숨 쉬어 본다. 문득 이곳 스페이스 고도가 나만의 케렌시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쁜 일상 중에 잠시 짬을 내어 연극이란 뭘까 하고 들여다보기 좋은 공간, ‘스페이스 고도’에서 연극 배우와 함께 숨 쉬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힐링 타임으로 좋겠다.
‘스페이스 고도’는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다양한 음료가 있는 카페이기도 하고, 때로는 영화를 보기도, 책 읽기 모임을 하기도, 워크숍 공간이 되기도 하는 유연한 예술 공간이다. 연극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작업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장소로서 또 다른 실험과 확장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