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수영구 망미동 골목 안쪽, 일부러 찾아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자리에서 북카페 ‘바사크라’는 조용히 시간을 쌓아가고 있다. 이름부터가 이 공간의 태도를 드러낸다. ‘바사크라’는 제주도 사투리로 “가봐야 알지”, “가서 보자”라는 뜻이다. 직접 와보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그 경험 자체를 권하는 태도가 이름에 담겨 있다.
이 공간은 2022년 12월 문을 열었다. 시작은 단순한 창업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가 사라진 이후의 선택이었다. 운영자인 현정란 작가는 부산양서협동조합에서 책과 문화가 결합한 공간을 운영해 왔지만, 임대료 부담과 구조적 한계로 결국 공간을 정리하게 된다. 이후 “다른 방식으로라도 이어갈 수 없을까”라는 질문 끝에 바사크라가 만들어졌다. 협동조합은 해체되었지만, 그 안에서 이어오던 독서와 문화 활동은 이곳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망미동이라는 위치 또한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수영사적공원과 재래시장인 수영시장을 좋아했던 개인적 취향, 평지라는 지리적 조건, 비교적 저렴한 주택 가격이 맞물려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망미동도 도시재생사업 이후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공간이 생겨나고 또 사라진다. 그 속에서 그는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한 공간들이 느슨하게라도 연결되기를 바란다. 사라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는 관계, 그것이 이 골목에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바사크라는 카페이면서 책방이고, 동시에 작가의 작업실이다. 운영자는 하루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낸다. 아침 10시에 문을 열고 밤 10시까지 머무르며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난다. 이곳은 양서협동조합에서부터 맥을 이어온 어린이도서연구회의 부산지부 아지트가 되기도 한다. 그 외 인문학 독서 모임과 소설 강독 모임, 청소년 모임, 창작 모임 등이 이어진다. 특히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주제 전시는 부산어린이도서연구회가 주체가 되어 3월 4·3, 4월 세월호, 5월 5·18, 6월 위안부와 같은 역사적 사건을 책으로 풀어내며, 조용하지만 지속해서 기억을 환기한다. 7, 8월은 쉬고 9월부터 다시 권정생, 10월은 이원수 등 부산의 작가를 만나보는 전시로 이어질 계획이다.
이 공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있다. 다락방에 사는 고양이 ‘토리’다. 원래는 망미동 파스타집과 책방 한타를 오가던 길고양이였지만, 한타 책방이 사라진 이후 바사크라에 머물게 되었다. 사람을 잘 따르는 ‘개냥이’ 성격 덕분에 일부러 토리를 보러 오는 손님도 있을 정도다. 지금은 이 공간의 또 다른 주인이자, 자연스럽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존재가 되었다.
바사크라는 서점이면서 카페다. 하지만 순서는 분명하다. ‘서점을 유지하기 위해 카페를 운영하는 공간’이다. 책만으로는 수익을 유지하기 어려우므로 커피를 함께 판매하는 구조를 선택했지만, 중심은 여전히 책에 있다. 공간 사용료를 따로 받지 않고 차 한 잔으로 머무를 수 있게 하는 방식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이곳은 소비보다는 체류를 전제로 하는 공간이다.
현정란 작가는 대만의 서점을 탐방하며 인상적인 장면을 경험했다. 미술, 페미니즘, 그림책 등 특정 주제에 집중한 전문 서점들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도 이런 특화된 책방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특정한 관점과 취향을 중심으로 한 공간들이 늘어나야 한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은 흥미롭다. 혼자 오는 방문객이 많고, 예상보다 젊은 세대의 비율이 높다. 책을 읽는 인구가 줄어든다고 말하지만, 이 공간에서 체감하는 분위기는 다르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꾸준히 책을 읽고, 혼자 머물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이곳은 그런 흐름을 조용히 증명하는 장소처럼 느껴진다.
이 공간은 작가의 창작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현정란 작가는 『하늘 연못의 비밀』, 『버디』, 『베이스캠프』, 『사비성 아이』, 『우린 친구 아이가』 등을 통해 신화, 역사, 지역 서사, 청소년 성장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을 써왔다. 백두산 천지를 보고 집필한 판타지, 스쿠버 다이빙의 경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등반한 학교 부적응 학생들의 성장 서사, 그리고 부산 소막마을을 직접 취재해 완성한 이야기까지, 그의 작품은 ‘현장’과 ‘경험’에서 출발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지금 이곳 바사크라 다락방에서 또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올해 출간을 앞둔 신작 동화 『깔콩을 찾아라』다. 책 속 글자를 지키는 벌레 ‘지콩’과 글자를 먹는 벌레 ‘깔콩’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사라져 가는 글자와 이야기를 지키려는 세계를 그린 작품이다. 책방 다락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어쩌면 지금 이 공간을 지키고 있는 것과도 닮아 있다.
망미동 골목 안, 책의 정원으로 가는 바사크라에는 ‘사람들이 와서 편하게 쉬어가는 곳’이길 바라는 현정란 작가가 기다리고 있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이야기는 계속 쓰인다. ‘가봐야 알지’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직접 와본 사람에게만 조금 더 분명해지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