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의 끝자락, 태평양으로 열리는 바다와 한반도의 대륙이 만나는 자리에서 150년 동안 사람과 물건,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를 맞이해 온, 나는 부산항입니다.”
1876년 봄,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었고, 그 결과 나는 근대의 개항장이 되었습니다.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증기선이 항구로 들어왔고, 초량왜관 일대에는 상점과 창고가 늘어났습니다. 조용하고 작은 포구에 불과했던 내가 가마솥 모양을 닮았다는 이름(부산 釜山)답게 낯선 것들이 한데 모여 부글부글 끓고 있는, 거친 에너지를 지닌 역동적인 항구 도시로 변모했지요.
19세기 말, 제국주의 열강의 경쟁 속에서 나는 안타깝게도 일제 대륙 진출을 위한 교두보이자 수탈의 관문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각종 물자가 나를 거쳐 일본으로 실려 나갔고, 항구와 철도는 점점 더 크게 확장되었지요. 그렇게 번잡해진 항구의 풍경 뒤에는 식민지 시대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답니다.
길고 긴 일제강점기의 시간을 겨우 지나왔다고 생각했을 때, 전쟁의 파도가 밀려왔습니다. 1950년 6월, 수많은 사람들이 작은 보따리를 들고 남으로 남으로 피란해 내려와 항구에 자그마한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내 주변 언덕은 얼기설기 엮은 판잣집으로 가득 찼고, 군인과 피란민, 구호물자와 군수 물자가 끊임없이 나를 통해 오갔습니다. 당시 부산은 오갈 곳 없는 이들을 너른 가슴으로 품었던 환대와 포용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전쟁 이후 나는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한국 경제를 이끄는 수출의 관문이 되었습니다. 거대한 컨테이너 부두와 크레인이 나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지요. 이제는 지구온난화로 녹아 열리게 된 새로운 바닷길을 바라보며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꾸고 있습니다. 북극항로라는 비전이 앞으로 부산과 대한민국을 어떻게 도약하게 할지 자못 기대가 됩니다.
내가 보아온 지난 150년 동안의 역사와 기억은 고스란히 부산 문화 예술의 무늬로 녹아들었습니다. 개항 시절, 낯선 문화와의 어색한 만남에서 태어난 이야기들, 일제의 압박 속에 고통받았던 기억과 독립운동을 위해 바다를 오갔던 이야기들은 내 몸속 구석구석에 새겨졌습니다.
피란수도 시절, 배고픔 속에서도 시인은 시를 쓰고, 화가는 담뱃갑 은지에 그림을 그리며, 음악가는 부두의 소음을 선율로 바꾸었지요. 절망의 한복판에서도 예술을 꽃피웠던 그 고단하고도 위대한 시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 선정으로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겠지요. 그때 내 곁에서 뿌려진 예술의 씨앗들은 오늘날 부산을 영화와 음악, 문학이 살아 숨 쉬는 도시로 자라게 했습니다.
나는 부산항입니다. 세상의 이야기가 모였다가 다시 흘러가는 항구입니다. 앞으로의 150년 역시 나는 이야기와 기억을 실어 나르며 여러분 곁을 지키겠습니다.
부산항 개항 150년을 맞아, 부산항의 시선에서 시간을 돌아보는 방식으로 편집자 노트를 써 보았습니다. 부산항의 시간이 곧 부산의 시간입니다. 이 도시의 문화와 예술 역시 바닷바람을 머금고 자라났습니다. 종이 잡지로 독자를 만나던 <공감 그리고>는 이제 웹진으로 새로운 항해를 시작합니다. <웹진 공감 그리고>는 앞으로 다양한 목소리와 기발한 상상이 모이고 흘러가는, 또 하나의 항구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