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해양의 시점으로 바라보면 _전미경 작가

글. 정재운

<전미경 작가 소개>

<웹진 공감 그리고>의 독자님들께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부산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전미경입니다. 오랫동안 부산에서만 작업을 했고요. 근래 이십여 년은 바다라는 제재에 몰두해서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공간에 대한 소개도 좀 해주시죠.

소개하긴 누추한데, 생활과 작업 공간으로 이곳을 마련한 것이 2017년이니 어느덧 십 년 가까이 되어가네요. 그 전엔 감천문화마을 레지던시에 입주해 작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 너무 많아 여러모로 불편했습니다. 창문도 열고 지내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죠. 다행히 마을 곳곳과 친숙해진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덤으로 뱃고동 소리도 들리고요. 좁다면 좁은 산비탈에 자리하고 있지만, 장작을 쌓아둘 공간도 있어 좋아하는 장작 타는 소리도 마음껏 듣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지금도 새소리가 나는데, 참 듣기 좋습니다. 작가님 소개와 공간 소개도 해주셨으니 작업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유화가 지닌 물성에 끌리다 보니 오랫동안 회화 작업을 해왔습니다. 보여드릴 만한 성과가 없어서 말씀드리기가 민망하지만, 근래에는 입체 작업에 빠져있습니다. 긴 시간 바다를 그리다 보니 회화의 평면성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바다가 만들어낸 어떤 스토리나 촉각 등의 감각적인 문제에 있어서 평면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거든요. 잠시만요. 이것 한번 보실래요?
“무엇처럼 보이시나요?”
(전미경 작가는 무언가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제가 바다에서 주운 게 좀 많아요. 돌은 돌인데 파도에 깎이고, 시간에 쓸려서… 무언가를 닮지 않았나요? 제 작품 중에 「깃털」이라는 그림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 작품은 바로 이 돌에서 나온 거예요. 이 돌을 처음 발견했을 때, 언뜻 어떤 새의 날개 한 죽지가 해변에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우리가 바닥에 떨어진 날개를 보면 추락의 이미지를 상상하잖아요. 저는 뱀이 허물을 벗듯이, 새도 낡은 날개를 벗어 던지고 새로운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봤어요. 그렇게 바다에서 우연히 주워 발견한 것은 저에게 상상의 생성으로 다가왔고, 그 과정 자체도 하나의 발견이죠. 그렇게 입체를 다시 평면으로 옮기는 과정이 저로서는 상당히 재밌어요.

<우연의 바다, 미지의 바다를 그리다>

인간이 인간적인 관점을 버린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저 바다의 눈으로 인간사의 사건과 사연들을 보면 어떨까, 되게 무심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산이 그렇게 보이길 바라서 웅장한 것이 아니고, 일송정 소나무의 올연함도 실은 인간의 사정과는 무관한 것이니 말입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봤을 때, 어떤 미지의 영역으로서의 바다가 많이 강조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품 속 우리의 시선은 바다의 심층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가닿고 침투하고자 하는 욕망을 소거한 듯한 시선은 표층에 붙박인 채로 바다의 잔물결을 담아내고 있죠. 그런데, 우리네 인간들의 시선은 어떻습니까? 무엇이든 벗겨내려 하고, 다다르고자 하는 욕망이 들끓죠. 언젠가 저는 작가님의 작품을 보고 짤막한 감상을 남긴 적이 있는데요.
“저 잔물결만 좇더라도 단속 없는 무한한 운동성 속에 ‘태어나는 것’과 ‘죽은 것’, ‘먼 것’과 ‘가까운 것’의 모든 에너지가 들어있음을 작가는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작가님의 작품 속 바다는 감상자가 어떤 상징으로 읽어내야 할까요?

어떻게 읽히길 바란다는 목적성은 가지지 않으려 합니다. 기획 작업물이 아닌 이상, 특정한 주제와 메시지에 작품을 가두고 싶지는 않거든요. 모든 창작물은 그 같은 요약의 유혹, 폭력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겠죠. 사실, 전시장의 어떤 위치에 거느냐, 어떤 조명을 주느냐에 따라서도 다르게 보이는 것이고, 작가들도 이를 선택하지만, 저는 되도록 제가 본 것 그대로 감상자에게 보이길 바라는 편입니다. 의도한 상징과 메시지가 어디까지 전해질 것인가 하는 점은 캔버스에 표현의 과정에서 어렴풋이 알게 될 뿐, 끝내 작가조차 모르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말씀 잘 알겠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표피적이고도 지엽적인 감상의 디딤돌을 하나 놓아보고자 하는데요. 바다를 대상물로 그린 작품 앞에서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위기, 탄소중립 등의 문제를 떠올리지 않기란 어려운데요. 지구 전체의 생태와 생존이 위험할 만큼 바다 또한 해양오염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대지의 오염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다로 폭탄 돌리기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이 같은 메시지도 작품 창작의 배경에 자리 잡고 있을까요?

어떤 확정적인 메시지를 보여주려고 했다면 그건 거짓말이 될 것 같아요.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사람과 사회와의 연결성을 바라고 생각하듯이, 저의 작업 또한 사회를 위한 작은 이바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언제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업을 할 때는 그 같은 욕망을 넣고 싶지 않아요. 청개구리 같죠? 그러니까 환경문제, 사회, 정치적인 문제 역시 제가 해변에서 주운 돌처럼 우연히 그곳에서 발견되길 바랍니다.

<바다, 살아있는 경이>

작가님께서는 언제부터 바다를 그리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배경으로서의 바다가 좋아요. 제가 가지고 있던 나름의 목적성을 바다를 배경 삼아 그렸었지요. 지금 보고 계신 그림은 1999년도 작품이에요. 「자갈치에서의 두 사람」이라는 제목처럼 바다는 후경으로 물러나 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배경이 주인공처럼 저한테 확 오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바닷가 5층 옥탑에서 작업실을 꾸리고 있었죠. 밤샘 작업 후에 새벽 바다를 보는 걸 좋아했는데, 그날만은 수면이 너무도 낮았습니다. 갈매기 소리도 없고, 사위도 기이할 만큼 고요했죠. 그때, 엄청난 높이의 해일이 두 눈앞에 몰려왔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제가 있는 곳은 5층짜리 건물의 꼭대기였죠. 무섭다기보다 살아있는 바다에 대한 경외심이 일었습니다. 이후로 바다가 계속 저를 끌어당기더라고요.
세월이 흘러 IMF 시절이었던 1998년에 첫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그때 전시명이 “부유하는”이었어요. 물론 그 제목에는 사회 초년생으로서 작가의 길을 더듬더듬 갈 시기의 불안이 반영된 것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삼십여 년의 세월을 그렇게 물처럼 흐르고 흘러 이즈음에 다다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럼 작가님에 관해 한 발 더 깊이 들어가 처음 그림을 그리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그림 말고는 다른 인생이 있다는 걸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그것 말고는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저는 가난한 촌에서 수저 하나라도 덜고자 외가에 보내졌는데, 교육이랄 게 전혀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시절에 넘치는 것은 시간뿐이었죠. 처마 끝에 지나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것만 그리다 움직이는 것도 그리고 시작했죠. 닭도 그리고, 고양이도 그리고… 그래도 공부하라고 어디서 재생지를 구해와 키만큼 쌓아두었는데, 저는 글자도 모르니 거기에 매일 그림만 그렸죠.

창작자로서 가장 큰 영감을 준 작가나 작품이 있나요?

도시로 공부하러 간 삼촌 방에서 『제인에어』, 『폭풍의 언덕』을 읽었던 기억이 여전히 또렷합니다. 그러다 부산에 왔는데, 그때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내내 살았어요. 남포동 극장가가 놀이터였고요. 거기 가면 자갈치에서 어머니가 농사지은 배추 등속을 파셨어요. 자연히 공동어시장도 제 놀이터가 되었고요. 그러니 눈으로 보는 바다 풍경, 내음 모두 친숙한 것이었죠.

지금 작업하고 계신 작품이 있다면 볼 수 있을까요?

그렸다가 엎어 버리곤 하는 게 일상이죠. 지금은 그리고 싶은 바다가 없어요. 제 화폭에서 전면화되었던 바다를 다시 배경으로 놓아주고픈 마음이랄까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인물도 좀 등장할 것 같고요. 그동안의 작업이 굉장히 사실적인 묘사가 많은데, 앞으로는 나이를 생각해 노동집약적인 작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감정과 체력 면에서도 많이 달라졌고요. 지금은 변화를 예비하는 차원으로 드로잉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한 변화라기보다 조화로움을 위한 변화라고 말하고 싶어요. 내후년쯤 전시를 계획하고 있는데, 그때도 전에 없던 것을 보여주고 싶다기보다 자신부터 만족시키고 싶은 마음입니다.

<웹진 공감 그리고> 독자님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보여드릴 것도, 재밌는 사람도 아닌 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역시 작품을 생산하는 창작자이자, 한 사람의 문화향유자로서 애정 어린 눈으로 <웹진 공감 그리고>를 바라보고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미경 작가는 바다를 외부의 자연물이 아닌 살아있는 주체로 표현한다. 이는 작가의 시선이 인간 중심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해양의 시점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딛고 있는 육지의 시점으로 바깥을 보면 나와 나 아닌 것들은 명확하게 구분된다. 그러나 해면의 일렁임에는 그 어떤 경계도 없다. 우리가 선 자리에서 해안선을 바라보기보다 해양에서 육지를 바라볼 때 새로운 생각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먼 것’과 ‘가까운 것’, ‘현지인’과 ‘난민’, ‘서양’과 ‘동양’, ‘남성’과 ‘여성’, ‘이성애’와 ‘퀴어’의 우열에 대해서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그 '해양의 시점'이 날이 갈수록 간절히 필요한 세상이다.

전미경
살아 숨 쉬는 바다의 경외를 화폭에 담아, 입체의 깊이를 평면 위에 펼쳐내는 예술가
글. 정재운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고, 다다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설집 ‘경이로운 동그라미’(강, 2024)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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