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봄은 축제의 향연이다. 유채꽃 축제, 벚꽃 축제, 멸치 축제 등 다채로운 봄맞이 행사가 곳곳에서 펼처진다. 화려한 봄날의 한 자락을 추억으로 담기에 모두 훌륭하지만, 부산의 역사와 가치, 의미까지 모두 음미할 수 있는 여정이라면 단연 조선통신사 축제를 꼽을 수 있다. 부산문화재단에서 해마다 규모와 내실을 탄탄히 쌓아 올려 시민들의 축제로 승화시키고 있기에 더욱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지난 4월 24일부터 26일까지 북항친수공원, 조선통신사 역사관, 광복로 일원에서 열린 조선통신사 축제는 부산항 개항 150주년을 기념해 더욱 뜻깊었다.
조선통신사를 흔히 외교, 문화 교류의 상징으로 많이 이야기하지만, ‘해양성’이라는 관점을 접목하면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조선시대, 통신사 일행이 한양을 떠나 일본으로 향할 때, 육로의 마지막 종착지이자 본격적인 해로가 시작되는 곳이 바로 이곳 부산 북항이었다. 바다를 건너기 전 무사안녕을 기원하던 영가대(永嘉臺)나 해신제의 전통은 부산이 가진 '해양 관문'으로서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또한 통신사 일행은 부산에서 배를 정비하고, 일본 측 사절과 절차를 조율했다. 당시 부산은 단순한 항구가 아니라 외교, 무역, 통역, 숙박, 조선 기술이 집약된 국제 해양도시 역할을 수행했던 셈이다. 성난 파도를 자랑하는 대한해협을 건너 세토 내해를 지나 일본 에도에 이르기까지 이 긴 항해 자체가 거대한 해양 교류였다. 즉, 바다는 나라를 가르는 장벽이 아니라 사람·문화·기술·정보가 흐르는 통로였다.
이런 뜻을 되새겨볼 때, 올해 2026 조선통신사 축제의 슬로건인 ‘바다를 건너, 사람을 잇다’는 참으로 적확한 표현이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의 관계 회복이 절실했던 일본은 조선에 공식적으로 외교사절단 파견을 요청했다. 조선 또한 ‘좋은 이웃으로 평화롭게 교류한다’라는 선린우호(善隣友好)의 원칙을 표방하면서 1607년 조선통신사 여정이 시작됐다.
조선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총 12차례 파견이 이뤄졌다. 포로 송환과 양국 간 긴장 완화를 중심 과제로 삼아 출발한 이래, 통신사는 단순 사절이 아니라 ‘평화 회복과 신뢰 재건’을 상징하는 외교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약 200년 동안 동아시아 해양 친선 외교의 상징이었던 조선통신사는 19세기 초반, 일본의 정치 외교 구조와 세계 해양 질서의 변화로 인해 운영이 어려워졌다. 1811년, 마지막 조선통신사는 일본 에도까지 가지 못하고 대마도에서 교섭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사실상 막을 내렸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는 교류가 많은 만큼 이익 충돌도 함께 커진다. 국경, 바다, 자원, 무역, 안보 같은 문제가 겹치면서 ‘가깝고도 먼 나라’가 되기 쉽다.
조선통신사가 왕래하던 200여 년 동안 조선과 일본은 그야말로 평화로운 ‘가까운 나라’였다. 인접한 국가 간에 이토록 오랜 기간 전쟁이 없었던 건 세계사적으로도 드물다.
한일 양국은 조선통신사가 남긴 평화 공존의 가치를 이어가기 위해 부산문화재단과 일본의 조선통신사연지연락협의회가 힘을 합쳤다. 그 결과,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한국과 일본이 합해 총 111건 333점의 기록물이 등재되었다.
봄빛이 천지를 환하게 밝힌 주말 오후, 북항친수공원 산책로는 이미 축제의 길이 되어 있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까지 따뜻하게 느껴지는 날, 사람들은 걸음을 늦추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귓가를 채운 것은 우렁찬 대취타 소리였다. 곧이어 화려한 전통 의상을 갖춘 조선통신사 행렬이 길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조복에 금띠를 두르고 양관을 쓴 조선통신사 정사 역할을 맡은 배우 유재명이 손을 들어 인사하자 환호가 터졌다. 시민들의 휴대폰 카메라 세례가 쏟아지는 가운데 응원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뒤를 잇는 행렬은 더욱 다채로웠다. 익살스러운 표정의 일본 사절단 가면, 긴 칼을 차고 당당히 걷는 일본 사무라이 복식 행렬도 눈길을 끌었고 화려한 부채를 펼친 춤사위는 저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원색의 강렬함과 제각각 개성을 뽐내는 조선통신사의 행렬은 오늘날 K-컬처가 보여주는 문화 외교의 기원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조선시대, 통신사 행렬이 지나갈 때면 일본인들이 사절단에게 그림 한 장, 시 한 편을 얻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한다.
조선통신사는 외교사절단의 역할뿐 아니라 조선의 우수한 문화 콘텐츠를 일본에 전파한 ‘이동하는 문화 플랫폼’이었다.
‘일본’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양가적 감정이 든다. 친근하면서도 불편하다. 일본 문화를 일상적으로 소비하면서도, 역사적 기억 앞에서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럼에도 긴장은 풀고 평화는 이어져야 한다. 진정 어린 사과와 배상은 정치와 외교로, 평화 분위기는 예술과 문화로 푸는 것이 현명하다. 조선통신사가 상징하는 바 역시 ‘예술과 문화’로 잇는 가교다. 성신교린. 서로 속이지 않고 다투지 않으며 진실로 교류한다는 원칙. 이 원칙으로 이어져야 한다.
국립부산국악원의 공연 ‘경계를 넘어 - 두 개의 길을 잇다’는 이러한 성신교린의 철학을 잘 담았다. 무대에 설치된 스크린은 3개, 양쪽에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인터뷰가 교차하고, 가운데 스크린에는 대한해협이 두 세계를 잇는 매개로 등장했다. 다큐멘터리가 스크린X 영화관처럼 펼쳐졌다. 다양한 세대의 한국인과 일본인의 생각이 오갔고, 가운데 바다가 둘을 이어주고 있었다.
조선통신사의 여정은 국악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웅장하게 되살아났다. 국악과 클래식 악기의 결합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바다를 건너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긴 여운을 남겼다.
조선통신사 축제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다를 건너는 통신사 사절단의 마음이 되어 본다. 한양(서울)에서 부산을 거쳐 에도(도쿄)까지. 험난한 여정 속에서도 꽃피웠던 인연을 생각한다. 서로 속이지 않고 진실로 교류한다는 성신교린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조선인과 일본인이 길 위에서 나눈 환대와 미소들. 통역이 없어도 통하는 마음들이 성신교린이다.
그 전통을 어떻게 오늘에 더 넓고 아름답게 전파할 것인가? 그것이 우리의 숙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