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자면, ‘부산바다도서관’이라는 특별한 항구를 준비한 나는 정작 도서관을 즐겨 찾는 편이 아니다. 도서관 특유의 조용한 분위기가 늘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몸을 사리게 만드는 그 고요함 때문이랄까. 도서관이 좋은 공간이라는 건 알지만,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엔 늘 망설이게 된다.
그래서 만들었다. 내가 가고 싶은 도서관을.
작년 6월, 부산바다도서관이 처음 문을 열었다. 아니, ‘개항’이라 부르는 게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공간 조성부터 콘텐츠 운영까지 하나하나 직접 챙기면서도, 과연 사람들이 이곳까지 찾아올지, 온다면 어떤 반응일지 도무지 예측되지 않았다. 그렇다. 항구를 처음 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불안을 안고 첫 배를 기다리기 마련이다.
확신했던 건 딱 하나였다. 부산 사람들은 바다를 일상으로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바다 앞에서 누군가 책을 펼친다면, 그 순간은 다른 어떤 도서관도 흉내 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 될 거라는 믿음이었다.
준비 과정에서 반응은 엇갈렸다. "해변이라는 환경은 유지·운영이 까다롭다"는 현실적인 우려와, "경험 설계만 탄탄하면 사람들의 독서 행태를 바꿀 수 있겠다"는 기대가 공존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단순히 방문객 숫자가 많았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책을 마주하는 방식이 기존 도서관에서의 방식과 달랐다. 책을 다 읽고도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는 사람들, 혼자 왔다가 우연히 옆에 앉은 이와 책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지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평범한 도서관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이곳에선 아주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마침내 항구가 열리자, 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배가, 훨씬 더 다양한 항로를 거쳐서 말이다.
항구에 닻을 내린 배들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다시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한다. 짐을 내렸다 새로운 것을 채우기도 하고, 오랫동안 머물수록 다음 항해도 더 탄탄해진다.
부산바다도서관에서의 정박은 이런 풍경이다. 푹신한 빈백에 기대어 파도 소리를 배경 삼아 책을 읽는 사람. 그늘막 아래서 책은 덮어둔 채 물끄러미 바다만 보다가 어느새 곁에 앉은 이와 자연스레 대화하는 사람. 책을 읽다 웃음이 터져도 굳이 눈치 볼 필요 없는 자유로움. 이곳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
목적을 가지고 오는 곳이 아니라 오래 머무르고 싶은 곳. 독서와 쉼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그러니 꼭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은 잠시 내려놓아도 좋다.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다니. 하지만 바다를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책에 손이 가고, 글자를 눈으로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오감으로 느끼게 된다. 그것이 부산바다도서관에서의 ‘정박’이다. 억지로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계속 있고 싶어져 닻을 내리게 되는 곳.
한 번이라도 이곳에 머물러 본 사람들은 안다. 바닷가에서 넘긴 책 한 장은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잊지 못할 순간이 되어 기억된다는 걸. 어떤 문장은 파도처럼 마음에 남고, 어떤 장면은 그날의 햇살처럼 불쑥 떠오른다. 그렇게 남는 기억 덕분에, 새로운 항해를 또 꿈꾸게 된다.
작년이 떨리는 개항이었다면 올해는 본격적인 운항이다.
한 번 제대로 열린 항구는 다음을 안다. 어떤 배가 찾아오는지,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보내야 다시 만날 수 있는지.
올해 부산바다도서관의 주제는 ‘입항-정박-출항’이다.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다. 처음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머무는 시간, 그리고 다시 떠나는 그 순간까지 모든 경험의 흐름을 새롭게 다듬었다. 파도 소리를 온전히 들을 수 있는 쉼과 독서의 공간을 늘리고, 독서를 주저하는 사람도 각자의 취향에 맞는 책을 더 쉽게 만날 수 있도록 북 큐레이션도 더 세밀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나는 순간에는 각자의 마음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도록 말이다.
좋은 항구란 결국 이것 아닐까. 떠난 뒤에도 남는 것. 부산바다도서관을 나온 뒤에도, 그 안에서 마주한 어떤 한 페이지가 문득 떠오르는 것. 올해도 기꺼이 그 장면을 만들어 선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6월 13일, 민락수변공원에서 다시 문을 연다. 빈손으로 와도 좋고 책을 들고 와도 좋다. 올여름에도 많은 이들이 이곳에 잠시 닻을 내려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