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의 한적한 공장지대 골목 안. 층고가 높은 공간에 커다란 서핑보드들과 자유로운 그림들이 가장 먼저 시선을 붙든다. 전시장 같기도 하고, 작업실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아지트 같기도 한 공간. 유니온 갤러리는 그렇게 단순한 이름으로 설명되지 않는 장소였다.
이곳을 운영하는 송민 대표와 서장현 전무는 오랜 시간 서핑 문화를 몸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두 사람은 호주에서 서핑을 통해 처음 만났고, 이후 국가대표 서핑팀 운영부터 브랜드 사업, 문화 프로젝트까지 함께 이어오고 있다.
갤러리 안에는 미국 샌디에이고 기반의 서퍼 아티스트 ‘앤디 데이비스(Andy Davis)’, 호주의 프로 서퍼이자 뮤지션·아티스트인 ‘오지 라이트(Ozzie Wright)’, 그리고 서핑·스케이트 문화 기반의 예술 작업으로 잘 알려진 ‘토마스 캠벨(Thomas Campbell)’의 작품들이 해변의 여유를 가득 담고 있었다. 2층 작업실에는 하와이 작가 해시 브라운, 일본 일러스트레이터 히로시 나가이의 작품 등이 소장되어 있다.
“서핑은 스포츠라기보다 하나의 문화에 가까워요. 해외에서는 서퍼들이 음악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영화도 만들어요. 바다에서 받은 감각을 자기 방식으로 표현하는 거죠.”
서장현 전무의 설명처럼, 유니온 갤러리는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다. 이곳에는 서핑보드가 하나의 오브제처럼 세워져 있고, 때로는 요가 클래스가 열리기도 하며, 사람들은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며 자유롭게 머문다. 정해진 규칙보다 ‘좋아하는 감각’을 공유하는 일이 더 중요한 공간이다. 유니온이라는 이름 역시 그런 의미에서 붙여졌다.
“결국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더라고요. 서핑이든 음악이든 예술이든 좋아하는 사람들이 와서 같이 이야기하고 쉬고, 그런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되었으면 했어요.”
두 사람이 말하는 서핑은 단순히 파도를 타는 기술이 아니다. 삶의 태도에 가까운 감각이다.
송민 대표는 호주 생활 당시 영주권까지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서핑 문화 보급에 뛰어들었다. 그는 서핑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말한다.
“제 인생은 서핑하기 전과 후로 나뉩니다. 서핑을 알기 전에는 다소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파도를 타면서부터는 문제를 피하기보다 부딪히게 됐어요. 적극적이고 낙관적으로 많이 바뀌었죠.”
그 변화는 자연스럽게 한국 서핑 문화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2016년부터 대한서핑협회와 국가대표팀 운영에 참여하며 10년 가까이 한국 서핑의 기반을 만들어왔다. 아시안게임과 국제대회를 오가며 선수들을 이끌었고, 올해 역시 나고야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 지도자로 참여할 예정이다.
특히 송민 대표는 “올해가 국가대표팀과 함께한 10년의 마지막 해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새로운 세대가 더 전문적인 스포츠 시스템 안에서 한국 서핑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저희는 기회를 만들고 문화를 보여주는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후배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성적도 중요하지만, 서핑을 하면서 성장하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유니온 갤러리에는 경쟁보다 감각이 먼저 존재한다.
잘 타는 기술보다 바다를 바라보는 태도, 결과보다 경험의 시간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해변 문화라는 건 여름에만 잠깐 즐기는 게 아니라, 자연을 일상처럼 가까이 두고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말처럼 이 공간은 바다를 ‘구경하는 장소’가 아니라 삶 안으로 들이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서핑보드 하나, 그림 한 점, 음악 한 곡을 통해 바다의 감각을 도시 안으로 옮겨놓는다.
지난해 유니온 갤러리에서는 「Kook in Kook Out」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 kook은 초보서퍼를 지칭하는 말이다. - ‘서툴지만 자유로운 감각’을 담은 이 전시는 전문성과 완성도보다 삶의 태도와 창의적 감각을 더 중요하게 바라보는 서핑 문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오는 8월에는 또 다른 해외 프로젝트 전시도 준비 중이다. 로스앤젤레스와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찰리 에드미스턴(Charlie Edmiston)을 중심으로 한 협업 전시다. 그래피티 문화에서 출발한 그는 색과 형태를 활용한 추상 작업과 대형 벽화, 공간 설치 작업으로 잘 알려진 작가다. 회화와 디자인, 공간 작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의 작업 역시 유니온 갤러리가 지향하는 감각과 맞닿아 있다.
서장현 전무는 “서핑 문화처럼 예술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며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유니온 갤러리는 완성된 결과물을 보여주는 공간보다, 서로 다른 감각과 취향이 만나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장소에 더 가깝다.
파도를 기다리듯 사람을 기다리고, 속도보다 리듬을 믿는 공간.
도쿄올림픽 서핑 해설로 화제를 모았던 송민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똑같은 파도는 절대 다시 오지 않는다.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해야 한다. 인생하고 닮은 점이 아닐까 싶다.”
생각해 보면 바다도, 문화도, 사람의 삶도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흘러간다.
억지로 붙잡을 수 없고, 같은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결국 자신만의 리듬으로 그 시간을 통과해내는 일인지 모른다.
어쩌면 두 사람이 만들어 온 10년의 시간은 큰 배럴(파도가 만드는 터널 모양의 장막) 속에서 머물다 나온 듯 하다. 이제 또 새로운 파도를 타며 다른 도전을 해나갈 시간 속에서 유니온 갤러리는 그들 스스로를 응원하는 공간인지도 모르겠다. 기장의 바람과 파도 가까이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해변 문화를 만들어 가며 삶을 살아내는 곳. 삶이 우선되는 작업공간이라 전시는 매년 한 번씩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올 여름 전시는 꼭 가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