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시 가현동 62번지에 살다가 처음 부산을 접한 여섯 살 아이가 들은 첫 사투리는 “야야~ 주리 가가라!”였다. 난생처음 듣는 단어, 인형 이름 같은 그 단어 “주리”를 향해 아주머니가 손짓하는 곳으로 쭈뼛거리며 다가갔더니 잔돈을 내주셨다.
그 뒤로 부산에 정착하게 된 아이가 좋아하는 부산 사투리는 “끄지라”였다.
경계를 분명히 하는 거칠고 단단한 단어! 그래서 냉큼 핸드폰 이름으로 설정했다. 한 번은 코로나 시기에 이 이름으로 온라인 워크숍에 접속했다가 “끄지라 선생님, 본명으로 이름을 바꿔주세요!”라는 말을 듣고 전국구로 얼굴이 빨개진 적도 있다. 서둘러 얌전한 이름으로 재설정하긴 했지만, “끄지라”라는 단어만큼은 부산 사람다운 근기로 주머니 속에 언제나 담고 다닌다.
나의 최애 사투리는 “할매”다. 여섯 살 이후로 줄곧 할머니 손에 자란 내게 우리 할매는 그냥 할매다. 거친 손등과 굽은 허리, 주름진 얼굴,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게 처진 눈두덩이···. 할매는 할매지, 할머니라는 말은 영 안 어울린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할매’는 내게 그리움을 부르는 단어가 되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이 다른 종을 압도한 이유는 ‘이야기를 함께 믿고 협력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서로의 이야기를 믿는 힘이 혼자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연약한 존재들을 연대하게 하여 생존을 이끌었다는 말을, 불확실성 속에서 각자도생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착한 그물’ 5년, ‘똑똑똑 예술가’ 2년, ‘문화돌봄’ 2년. 문화 소외 계층을 직접 찾아가는 문화예술 사업들에 참여하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재미가 있다.
이야기함은 인간의 생존 능력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 살아가기 위해서는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되지 않겠는가···.
예술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가장 오래된 방식 중 하나다. 게다가 언어의 한계를 넘어선 그 지점까지 우리를 함께 데려다주기도 한다. 이야기로 연대할 수 있게 하고, 인간다움을 연결해 줄 수 있는 매개인 예술.
AI가 앞서가고 개인주의가 강해지는 시대다. 공동체 경험이 줄어들고, 세대 간 기억이 단절되고, 지역성이 약해지고, 함께 만드는 문화가 흐려질 수 있다. 이런 시대에 예술은 마주 앉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해낼 힘이 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부산만 한 곳이 없다.”는 말을 종종 들으면서 자랐다. 이는 피란 시절부터 유래한 말이겠지만, 내게는 때로 ‘1등이 아니어도, 최고가 아니어도 된다’는 말로 해석되기도 하고, ‘네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는 위로로 들릴 때도 있다. 도대체가 살아갈 힘이 없을 때 가만히 바라보는 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안이고, 예술이 되기도 한다.
지역을 살린다는 것은 건물을 새로 짓는 일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게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지역의 미래는 거창한 개발 계획보다, 오늘도 자기 자리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에게서 시작될 수 있다. 필자는 예술이 그 연결고리 역할을 능히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웹진 공감 그리고>에서 들려주는 ‘부산에서 예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치 우리 할매의 굽은 손으로 등더리를 씨원하게 긁어주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