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부산을 걷고, 장소를 다시 바라보는 일 _나나와 펠릭스

글. 박보은

먼저 '나나와 펠릭스'라는 듀오를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나나): 저희는 아티스트 듀오 ‘나나와 펠릭스’로, 함께 작업한 지는 13년 정도 됐습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나 작업을 시작했고, 이후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계기로 한국을 오가다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서울을 거점으로 활동했고, 최근에 부산으로 이사해 본격적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두 분은 한국과 핀란드라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함께 작업해 오셨습니다. 하나의 작업을 만들어갈 때, 두 분의 시선은 어떤 지점에서 만나고 그것은 작업의 문제의식으로 어떻게 이어지나요?

(펠릭스): 저희는 문화적 배경의 차이를 크게 의식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많이 닮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보다는, 오히려 저희 둘 다 어느 한 문화 안에 완전히 속해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나나): 나나와 펠릭스’로 작업을 시작하면서도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 자체를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은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한국에 와서 주목했던 것은 한국 사회가 스스로를 늘 외국과 비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아파트 브랜드 이름이나 일상적인 소비 이미지, 정책 언어 안에서도 한국이 가진 본연의 가치에서 출발하기보다 서구권의 이름이나 이미지를 가져와 가치를 부여하려는 모습이 반복된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왜 계속 스스로를 다른 곳과 비교하고, 그 비교를 통해 가치를 확인하려 하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펠릭스): 물론 저희는 서로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같은 장소를 보더라도 조금씩 다르게 봅니다. 하지만 결국 저희가 반응하는 지점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대개 불편하면서도 아름다운 것들입니다. 이해하기 어렵고 때로는 거슬리지만, 동시에 계속 바라보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2017

여러 지역에서 작업해 오셨는데, 그중에서도 부산을 작업의 장소로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두 분에게 부산은 어떤 도시로 다가왔나요?

(펠릭스): 부산은 한국에서 저희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곳입니다. 여러 지역에서 살아보고, 여러 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부산은 저희에게 가장 자연스럽고 편하게 다가오는 도시였습니다. 무엇보다 바다가 있다는 점이 큽니다. 저희 둘 모두에게 바다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는 바닷가에서 태어났고 평생 바다 가까이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바다가 없는 곳에서 오래 지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집니다.
(나나): 부산은 한국에서 가장 여유로운 도시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한국의 도시들이 아주 크게 다르다고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디를 가도 아파트가 많고, 개발의 풍경이 있고, 비슷한 장면들이 있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부산에는 그냥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지점들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저희가 말하는 ‘스팟’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혼자 밖에 나가서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입니다. 바깥에서 혼자만의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죠. 서울에서는 그런 자리를 찾는 일이 굉장히 힘들게 느껴질 때가 많았는데, 부산에는 그런 사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가 훨씬 많다고 느꼈습니다. 또 부산에 아직 20~30년 전의 것들이 남아 있다는 점도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런 풍경들이 부산에 더 끌리게 만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동창(東窓), 2023

부산에서의 작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또 그 장소들을 작업으로 옮길 때, 두 분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시나요?

(펠릭스): 부산과의 관계는 꽤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영도에서 소리를 녹음했던 기억도 있어요. 어느 날은 작업 때문에 부산에 왔다가 초량 위쪽을 걷게 되었습니다. 저희 작업은 기본적으로 걷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때도 초량에서 서면 방향까지였던 것 같은데, 위아래로 계속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한 번 걷고 끝낼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다시 돌아와 여러 방향으로 올라가고 내려가며 걷게 되었고, 그 동네가 작고 특별한 모퉁이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부산에서의 작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지역과 사랑에 빠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나): 이바구길과 그 위아래의 동네들, 영주동, 수정동, 보수동 같은 곳들이 저희에게 크게 다가왔습니다. 저희가 지난 10여 년 동안 해온 작업은 발전과 개발을 위해 계속 나아가는 사회가 남겨놓은 것들, 혹은 남기고 가는 흔적들을 포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런 동네에 끌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곳들이 계속 없어지고 있습니다. 아파트가 들어오고, 언젠가는 이곳도 사라지겠지 하는 애잔함이 있습니다. 저희에게 영주동이나 수정동, 보수동 같은 동네들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동시에 사람이 거의 없고 어둡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장소들입니다. 그런데 ‘개발이 안 된 것’이 곧 나쁜 것처럼 여겨지는 인식은 늘 답답하게 다가왔습니다.

저희는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정해놓고 시작하기보다는, 눈길을 끄는 것들을 사진으로 찍거나 영상으로 기록하고, 사운드를 녹음하면서 리서치 과정을 거칩니다. 그렇게 모인 것들이 그때그때 저희가 느끼는 인상과 연결되고, 그 인상을 이해해 가는 과정 속에서 작업으로 조합됩니다. 그런 점에서 장소는 배경이 아니라 작업의 일부가 됩니다.

카메라, 담배, 위스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2021~

한성1918 BCP 창작스튜디오 입주 이후, 부산에서 이어가고 싶은 작업의 방향도 궁금합니다. 현재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나 앞으로 더 들여다보고 싶은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펠릭스):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여러 개 있습니다. 다만 그 프로젝트들은 고정되어 있다기보다 계속 변하고 살아 움직입니다. 저희가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발견할수록 매일 새로운 것들을 찾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작업의 방향도 계속 달라지고 있습니다.

(나나): 현재 가장 큰 주제는 ‘안전의 건축’입니다. 예를 들어 광안리에서 이기대 쪽으로 가는 길에 경찰서에서 만든 공익 광고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두운 골목길을 배경으로 하고 그 뒤쪽에는 엘시티나 마린시티 같은 풍경이 보이는데, 그 이미지는 어두운 골목은 치안이 불안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런 시선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새롭고, 반짝반짝하고, 환하게 만드는 환경이 정말 안전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왜 안전이라는 언어가 그런 방식으로만 흘러가는지도 알고 싶고요.

(펠릭스): 한국에서는 동네 전체를 허무는 일이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개발과 재개발은 어디에나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보통 건물 하나씩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동네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느 동네에 가든 “축하합니다”라고 쓰인 현수막 같은 것이 걸리기 시작하면, 이곳이 곧 사라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가 새로 이사 온 동네에도 이미 그런 현수막들이 들어왔습니다. 물론 몇 년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사는 장소가 조금씩 변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느낌은 매우 이상합니다.

삶에서 안정적인 것은 없고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집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라짐의 규모와 완전성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나나): 안전과 발전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없어지고 다시 새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안전과 보안이라는 아이디어가 개발과 발전을 위해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보고 싶습니다. 저희는 계속 걸어 다니면서 새로운 것들의 영향을 받고, 그에 따라 작업의 방향도 조금씩 바뀝니다. 결국 어떻게 하면 가장 진실한 것을 반영할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합니다.

일월오봉아파트고속도로도, 2017

부산에 머물며 작업하는 경험은 두 분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펠릭스): 저희 작업은 늘 우리가 사는 곳, 걷는 곳, 마주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영향을 줍니다. 부산에서 바다 가까이에 살고 있다는 사실, 이곳에서 사는 것이 훨씬 편안하다는 사실은 이미 저희가 작업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피로감이나 긴장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런데 부산에서는 사람들이 조금 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있고, 덜 짓눌려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저희가 아직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좋은 것만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반나절 쉬고 바다에 갈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남은 한 주 동안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 점에서 부산은 이미 저희의 작업과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나나): 저는 부산의 어둠, 프라이버시, 약간의 비밀스러움이 좋습니다. 저희는 안전과 보안에 대해 말할 때, 반대로 신뢰에 대해 많이 이야기합니다. 계속 감시를 하면 오히려 신뢰가 사라집니다. 계속 감시한다는 것은 결국 서로를 믿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아주 개인적이고, 사적이고, 약간은 비밀스럽고 어두운 곳에도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과 공간이 필요합니다. 부산에는 혼자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앉아서 머물 수 있는, 약간은 어둡고 사적인 장소들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것들을 작업을 통해서도 더 확장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정답을 제시하는 방식의 작업보다는, 관객이 전시 환경 안에서 같은 풍경을 조금 다르게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서로를 조금 더 믿자는 것입니다. 관용과 믿음. 더 믿고, 덜 감시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나나와 펠릭스
풍경을 탐구하는 아티스트 듀오. 인간이 만든 문화적 풍경을 수집하고 재구성하며 ‘발전’의 모습을 다양한 매체로 탐구한다.
글. 박보은
로컬 생산자.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부산에 대한 이야기와 연구를 기록하며 써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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