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준이 점차 재정의되고 있다. 대단한 성공이나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오늘 하루 별일 없이 지나가는 것.’ 즉 무사히 일상을 마치고 귀가해 잠드는 그 평범함이 귀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
부적은 액운을 막고 복을 불러오기 위해 지니거나 붙여 두던 상징물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그 형식과 소원은 바뀌었지만, 부적은 훨씬 가벼운 모습으로 여전히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행운 거북이를 휴대전화에 붙이고, ‘세종이 부적을 쓴다면?’이라는 콘셉트로 한글로 디자인된 부적이 굿즈로 생산된다. 모두를 전통적인 의미의 부적이라 부르기는 어렵겠지만, 보이지 않는 바람을 어떤 이미지나 사물에 담아 가까이 두려 한다는 점에서는 오래된 부적 문화와 여전히 맞닿아 있다.
지난 7월, 부산 동구 망양로 성북고개 인근에 나숨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문화예술공간 ‘나숨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원을 예술 콘텐츠로 재해석하고, 주민과 예술인이 함께 성장하는 열린 공간을 지향하는 이 작은 갤러리가 개관전으로 택한 전시는 전혜옥 작가의 <판화 부적 - 초연결 K-테라피>다.
전혜옥은 동아시아의 인권과 평화, 생명의 가치를 판화로 형상화해 온 작가다. 홍성담 작가와 함께 걸개그림과 대형 민중 미술 프로젝트를 작업하며 민중·인권 미술의 맥을 이어왔고, 이번 전시는 그가 부산에서 여는 첫 개인전이라는 점에서도 뜻깊다.
그가 부적에 주목한 계기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앞에서 세계가 속수무책이던 시기, 작가는 ‘코로나 퇴치부’를 만들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이 느끼는 불안을, 오래된 부적의 형식을 빌려 시각화한 것이다. 그 작업은 이후 하나의 연작으로 이어졌다. 전시장에는 2020년부터 2026년까지 제작된 판화 부적 59점이 걸렸다. 작품들은 전통 부적의 도상을 그대로 가져오기도 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화적으로 그려내기도 한다.
한지 위에 붉은색으로 찍힌 목판화는 언뜻 전통 부적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지극히 동시대적이다. 건강, 백년해로, 삼신부 같은 오래된 소망 곁에 취업, 합격·승진, 마음 치유, 더위 방지부 같은 현실적인 바람이 나란히 놓인다. 개인의 소원을 넘어 아시아 평화와 사회적 현실까지 부적 안으로 들어온다. 민중 미술을 통해 사회와 시대를 응시하던 작가의 시선이, ‘부적’이라는 형식으로 옮겨온 셈이다.
그중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이 <정시 퇴근 부적>이다. 정시에 퇴근하게 해 달라는 바람까지 새긴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큰돈을 벌게 해 달라는 것도, 크게 출세하게 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오늘도 무탈하게,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마음. ‘아주 보통의 하루’를 원하는 현대인의 바람이 전혜옥의 부적 판화 한 장에 고스란히 담긴다.
전 작가의 부적에는 작가 개인의 삶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래서 더 친근하고, 더 반갑다. 잠 못 이루는 지인이 고양이와 함께 잤더니 숙면을 했더라는 말을 듣고 만든 ‘숙면 부적’, BTS의 투어 공연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그걸 바라보는 대중들의 마음은 치유된다는 의미로 만든 ‘마음 치유 부적’, 여행하다가 안전하게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들어 만든 ‘여행 안전 부적’ 등. 작가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담아 만든 부적이라 실제로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한다.
개관식 날, 작가가 들려주는 부적의 의미와 효험담에 귀 기울이던 관람객과 주민들은 저마다 필요한 부적을 골라 구입했다. 인근에 살고 있는 주민은 자녀를 위한 취업부와 어머니를 위한 장수부를 함께 선택했다. 한 관람객은 남편을 위해 숙면부를 골랐고, 연애를 하고픈 누군가는 사랑부를 손에 들었다. 전시장의 작품이 각자의 소망을 품고 다시 사람들의 삶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부적은 본래 미술관 안에서 조용히 감상하기 위해 태어난 물건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건강을 빌며 건네고, 집안의 평안을 바라며 붙이고, 액운이 지나가기를 바라며 몸 가까이에 두었던 생활 문화였다. 그런 부적 사이에 다시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다. 나숨협동조합의 ‘나숨’은 ‘낫게 하다’라는 뜻의 경상도 방언이다. 지역을 살리고자 하는 그들의 바람이 갤러리의 개관전과도 만난다. 그렇게 보면 갤러리의 첫 전시로 부적을 내건 행위 자체가 나숨을 위한 하나의 커다란 부적처럼 느껴진다.
나숨갤러리의 시선은 부적에서 다시 부산 동구의 삶과 장소로 향한다. 8월 3일~21일에는 이동근 작가의 산복도로 사진전 <모던 시티-좌천아파트>가 열렸고, 9월 1일~18일에는 송주웅 작가의 안창마을 회화전 <창창 울창 안창>이 이어진다. 10월에는 이중섭 복합 문화센터 개관 일정에 맞춰 <이중섭 부산 이마주 오마주> 특별전도 준비하고 있다.
부적에서 좌천아파트로, 안창마을로, 다시 망양로 이중섭 거리로 이어지는 전시를 따라가다 보면 나숨갤러리가 바라보려는 것은 결국 이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과 장소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첫 장에, 사람들의 소원을 새긴 부적이 걸렸다.
오늘도 무탈하기를.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기를. 그리고 나숨의 아주 보통의 하루가, 오래오래 이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