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이하 BPAM)이 처음 시작되었다. 첫해에는 내가 사업을 담당하지 않았지만, 평소 공연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았던 터라 마켓에서 어떤 공연들을 선보이는지 궁금한 마음에 공연장을 찾았다. 그때의 나에게 마켓은 유통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플랫폼이라기보다 새로운 공연을 만날 수 있는 하나의 행사였다. 그러나 다음 해, 이 사업을 직접 담당하게 되면서 비로소 마켓이 단순히 공연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연예술 생태계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기 위한 플랫폼 구축에 근본적인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BPAM의 본질을 이해하고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공연을 어떻게 상품처럼 판매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공연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물건처럼 동일한 형태로 반복해서 생산되는 일반 상품이 아니다. 작품마다 창작자의 철학과 예술적 메시지가 담겨 있고, 무엇보다 관객과 같은 공간에서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예술이다. 이러한 공연을 ‘마켓’이라는 틀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개하고, 어떻게 실제 유통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다. 과연 부산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국내외 공연시장에 지속적으로 유통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첫해 마켓에 참여한 부산 작품 가운데 실제로 루마니아에 진출한 사례가 있었지만, 이러한 흐름이 꾸준히 이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어쩌면 첫해의 성과가 ‘초심자의 운’처럼 우연히 만들어진 결과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까지 생기기도 했다. 이미 서울아트마켓(PAMS)이라는 오랜 역사의 마켓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BPAM이 지역성을 바탕으로 어떤 차별성을 만들어내고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지에 대한 부담도 컸다.
재단에 근무하며 다양한 사업을 담당해 왔지만, 이처럼 많은 고민과 걱정을 안겨준 사업은 없었다. 2024 BPAM이 시작되기 하루 전까지도 이러한 고민과 걱정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고, 엄청난 업무량에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행사가 시작되자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델리게이트와 예술가가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공연과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하면서, 그동안 내가 고민했던 마켓의 역할이 무엇인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희망이 생겼다. BPAM이 글로벌 유통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었다. 단순히 공연을 소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매개로 사람들이 만나고,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며, 그 만남이 새로운 협력과 흥미로운 작업, 나아가 실질적인 유통으로 이어지는 것. 내가 생각한 마켓의 모습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마켓이 끝난 뒤 참여했던 예술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행사 전과는 달라진 그들의 눈빛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무언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듯한 모습이었다. 돌이켜보면, 올해 BPAM 예술감독을 맡은 김형준 감독님의 말씀이 그 장면과 겹쳐진다. 감독님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마켓에 참여한 예술가들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볼 때라고 말씀하셨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지만, 지난해 마켓이 끝난 뒤 예술가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니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2025 BPAM은 전년보다 한층 성장하며 마켓으로서의 체계도 조금씩 갖춰져 갔다. 해외 주요 마켓 및 페스티벌과의 협력이 강화되었고, BPAM에 대한 인지도도 높아졌다. 무엇보다 부산 작품들이 해외에 진출하는 사례가 하나둘씩 쌓이면서, 부산의 예술가들에게 해외 진출은 더 이상 막연한 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현실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어렵고 힘들며, 갈 길이 먼 사업이다. 올해 2026 BPAM을 준비하면서도 새로운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부산 작품의 해외 진출이나 국내외 델리게이트의 참여 확대처럼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BPAM이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을 더욱 강화하는 일이다.
마켓을 통해 예술가와 기획자, 제작자, 전문가 등이 만나고, 그 만남이 공동제작과 협업, 새로운 프로젝트 등 다양한 형태의 네트워킹으로 이어지는 것.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새로운 관계와 가능성이 만들어지고, 시간이 지나 다양한 성과로 이어지는 것. 나아가 서로의 경험과 영감을 나누며 예술적 성장을 이루고, 그렇게 만들어진 좋은 작품과 결과물이 다시 시민들에게 새로운 예술적 경험으로 돌아가는 것. 어쩌면 내가 지금 BPAM을 통해 만들어가고 싶은 마켓의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을 쓰는 지금으로부터 2주 후면 2026 BPAM이 개최된다. BPAM이 발전한 만큼 나 역시 이 사업을 통해 조금은 성장한 것 같다.
이러한 성장은 결코 혼자서 이룬 것이 아니다. 2024년에 BPAM을 처음 맡아 함께 고생하며 나의 버팀목이 되어준 최 팀장님, 2024년부터 지금까지 함께해 온 든든한 후배 김 대리님, 2025년부터 함께하며 누구보다 진정성을 담아 BPAM을 이끌어주고 계신 박 단장님과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해주며 동료들을 챙겨준 최 대리님, 특유의 센스로 곳곳에서 힘을 보태준 강 사원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은 퇴사해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BPAM의 중심을 잡아준 옥 과장님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지난해 BPAM 사업단이 청년문화팀과 한 팀으로 운영되면서, 청년문화 사업을 담당하지만 BPAM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함께 고민하고 도와준 김 과장님, 박 대리님, 최 사원님이 없었다면 사업을 제대로 운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쉽지 않은 여정을 함께하며 동고동락한 감독님들과 전문위원님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지원해 주신 코디네이터님들과 기간제 선생님들 덕분에 지금까지 BPAM을 원활하게 운영해 올 수 있었다.
또다시 BPAM의 막이 오른다. 여전히 걱정도 많고, 앞으로 풀어 나가야 할 과제도 많다. 하지만 예전과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마켓을 기다리고 있다. 혼자였다면 여전히 막막했겠지만, 그동안 함께 고민하고 힘을 보태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올해 BPAM 역시 또 한 번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