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는 엄마의 카세트테이프에서 비롯하였다. 국민학교(초등학교) 6학년 무렵, 엄마는 잠자리 머리맡에서 날마다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에 무언가를 번갈아 틀어주었다. 지금 물어보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나는 카세트테이프 수십 개 세트로 되어 있는 ‘세계팝음악전집’(?)이고, 하나는 십여 개 세트 ‘한국명시낭송백과’(?)였다. 그때는 선구매 하고 달마다 돈을 나누어서 내는 ‘월부’ 방문판매원이 집집마다 많이 돌아다녔다. 아마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산 김에 월부로 카세트테이프 전집을 산 모양이다. 잠옷을 입고 베개를 베면 엄마는 플레이어에 하루는 시낭송을 하루는 팝송을 틀어주었다. 하루는 시나라를 걷다가 하루는 팝송에 젖어 잠이 드는 나날이었다. 엄마는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가난한 집안 처지로 음악을 할 수 없었다. 엄마의 결핍에서 비롯한 잠자리 고문이 내게는 온 삶을 꿈꾸는 선물이 되었다. 내 삶은 이미 결정되었다.
나의 10대는 기형도의 우울과 장정일의 도발과 락 음악의 분출 사이에서 갈팡질팡 널뛰었다. 시가 쓰고 싶었고 락 음악이 하고 싶었다. 롤모델이 있었다. 락밴드 도어스(The Doors)의 보컬 짐 모리슨(Jim Morrison)은 시를 써서 곡을 만드는 진정한 아티스트였다. 진로를 결정했다. 문예창작학과나 국어국문학과에 가는 것이다. 입학하자마자 그룹사운드(그때는 스쿨밴드라고 하지 않았다.)에 들어가서 시를 쓰면서 음악을 하면 되겠다. 꿈도 야무지다. 어찌어찌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갔다. 바로 그룹사운드를 알아봤다. 노천강당 반지하에 풍물패와 방을 하나씩 나누어 쓰던 그룹사운드가 있었다. 시끄러운 것들끼리 모아놓은 것이다. 제 파트를 정해서 오디션이라는 것을 보아야 했다. 나는 당연 보컬이었으니 야심차게 영국 락밴드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 정규 2집 <Sad Wings of Destiny>(1976) 수록 명곡 ‘Epitaph’를 입시보다 더 열심히 준비했다. 락 음악을 하기엔 평범해 보이는 선배들 앞에서 멋지게 불렀다. 너무 반응이 없다. 한 곡을 더 불러 보라고 했다. 이건 반칙이다. 잘 부르던 가요 가운데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를 불렀다. 선배 한 사람이 너는 성악이 더 어울린다고 조언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선배들은 주다스 프리스트 곡을 알지 못한 것이었다. 오디션이 다 끝나고 베이스 파트를 제안했다. 거절했다. 여섯 달 동안 그룹사운드 보컬은 여러 번 바뀌었다. 여섯 달 후에 보컬을 맡으라고 하여 화려하게 복귀했다. 보컬 하던 동기는 베이스가 되었다. 동기는 내가 미웠을 것이다. 가을에 그룹사운드 정기공연까지 하고, 그룹사운드 정기공연 최초로 엄마가 오는 초유의 사건이 터졌지만, 나의 첫 음악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내가 사는 부산 북구에서 만덕터널(제1만덕터널)을 지난 부산대학교까지 오가는 130번 버스 막차는 산발 머리, 찢어진 청바지, 악기를 멘 딴따라들로 넘쳤다. 부산대학교 구정문 앞에는 음악사 ‘뮤즈’가 있었고 라이브클럽 ‘몽크’가 있었다. 저 멀리 부평동에는 ‘먹통레코드’가 있었다. 곳곳에서 엘피판을 사 모으고 메탈티를 사입으며 첫 음악생활의 아쉬움을 달래곤 했다. 라이브클럽 ‘인터플레이’에서 그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장기하와 얼굴들’의 수상하기 짝이 없는 공연을 봤다. 재즈 그룹 ‘윈터플레이’ 공연에 매혹되었다. 그 이후 많은 인디라이브 클럽이 생기고 없어지고 또 생겼다. 나는 곳곳에서 음악 천재 ‘김일두’, 서프락의 새물결 ‘세이수미’, 펑크락의 새바람 ‘보수동쿨러’를 만났다. 그리고 지금은 돌고 돌아 제주도에 살고 있는 아방가르드 아티스트 ‘사이’를 만났고, 그가 부산을 떠나는 마지막 공연을 손수 마련했다.
정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지금 음악을 듣는다. 고장 난 라디오처럼 옛날 음악만 주구장창 트는 사람은 추억을 좇는 사람이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본디 이 글은 부산 지역의 예술 현장을 찾아가서 소개하는 꼭지에 놓인 글이다. 라이브클럽은 인디음악가가 움트고 자라고, 인디음악이 춤추고, 듣는 이들이 맞춤 추는 마당이다. 락 음악을 들으며 춤추지 않을 도리는 없다. 부산만의 처지는 아니겠지만, 춤추는 어깨를 꽉 움켜쥐고 있는 낡은 법 때문에 마당이 닫혔다. 모처럼 청년들과 락 음악 들으며 춤추려던 락아재의 현장 출동은 무산되었다. 인디음악클럽은 락 음악의 현재다. 락아재는 클럽에 가고 싶다. 락을 춤추게 하라. 우리 모두는 어떤 락이며 모든 락이다. 우리 락은 이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