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남포동에서 다시 만난 영화제

글. 박보은

매년 가을이면 부산에는 큰 영화제가 열린다. 거리에는 영화제 홍보물이 걸리고, 주요 행사 공간인 영화의전당 주변으로 세계 각국의 영화인과 관객들이 모여든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이면 나 역시 상영 시간표를 살펴보고, 보고 싶은 영화를 보기 위해 치열한 티켓 예매에 뛰어든다. 인기 상영작의 예매는 그야말로 피켓팅이다.

부산국제영화제라고 하면 이제는 자연스럽게 영화의전당과 센텀시티가 떠오른다. 영화인들의 무대 인사와 관객과의 대화, 다양한 상영 프로그램이 열리는 이곳은 부산국제영화제를 대표하는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영화제가 처음 시작된 곳은 남포동이었다.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남포동 일대의 극장과 수영만 야외상영관을 중심으로 개최되었다. 부산극장과 대영극장 등 원도심의 영화관들이 주요 상영 공간이었고, 지금의 비프광장은 영화인과 관객들이 함께 어울리는 장소였다. 이후 영화제가 성장하고 2011년 영화의전당이 개관하면서 영화제의 중심은 센텀시티로 옮겨갔다. 그리고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출발점인 남포동을 중심으로 새로운 형태의 영화 축제인 ‘커뮤니티비프’가 시작되었다.

관객이 함께 만드는 영화 축제, 커뮤니티비프 역대 포스터(출처: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는 ‘Made by Audience’를 슬로건으로 시민 참여형 영화 축제를 만든다. 일반적으로 영화제는 프로그래머가 선정한 작품을 관객이 선택해 관람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지만, 커뮤니티비프에서는 관객이 직접 상영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영화제의 일부를 만들어갈 수 있다.

대표 프로그램인 ‘리퀘스트시네마: 신청하는 영화관’은 관객이 보고 싶은 영화와 행사를 기획하고, 심사와 관객 투표 등을 거쳐 실제 상영으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이다. 영화제를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영화제를 기획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이번 커뮤니티비프에서는 장기하의 <산산조각>을 메가박스 부산극장에서 관람했다. 부산극장은 1934년 개관한 부산의 오래된 영화관으로 남포동의 영화문화를 함께해 온 공간이다. 지금은 멀티플렉스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과거 부산국제영화제의 주요 상영관이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산산조각> 손그림 안내판과 GV(출처: 박보은)

<산산조각> 상영이 끝난 뒤에는 작품을 만든 사람들과 직접 만나는 관객과의 대화(GV)가 이어졌다. 연출팀 ‘모래내거동수상자들’과 장기하가 작품의 제작 과정과 이야기를 관객들과 나누었다. 영화제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스크린 너머의 창작자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작품을 관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작 과정까지 알아가는 것은 영화제에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GV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작품의 제작 과정이었다. 일반적으로 영화 음악은 영상의 분위기와 장면에 맞춰 제작되는 경우가 많지만, <산산조각>은 시 한 편에서 출발해 이를 바탕으로 영상을 제작한 뒤, 완성된 영상에 맞춰 음악을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서로 다른 창작 분야가 순차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 것이다. 영화를 감상한 뒤 제작자들에게 이러한 배경을 직접 듣고 나니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다.

영화를 보고 극장 밖으로 나오니 남포동의 거리에도 영화제의 열기가 가득했다. 비프광장 야외무대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공연과 행사를 즐겼다. 영화를 예매하지 않은 이들도 지나가다 발걸음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축제에 합류했다. 커뮤니티비프의 무대는 극장 밖으로도 이어졌다. 영화관과 비프광장, 남포동의 거리가 어우러지면서 원도심 전체가 하나의 영화제 공간처럼 느껴졌다.

이러한 풍경을 보며 부산국제영화제의 초창기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당시 관객들은 남포동의 여러 극장과 수영만 야외상영관을 오가며 영화를 관람하고, 부산 곳곳에서 영화제의 분위기를 즐겼을 것이다. 물론 현재의 커뮤니티비프와 당시의 영화제를 동일하게 볼 수는 없겠지만, 남포동이라는 공간을 통해 영화제가 시작되던 무렵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그 과정에서 평소와는 다른 도시의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센텀시티에서 느끼는 영화제의 규모와 활기가 있다면, 남포동에서는 오래된 극장과 거리, 그리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 더 친근한 분위기를 만날 수 있다. 서로 다른 장소와 방식이 하나의 영화제를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영화제를 찾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감독이나 배우를 만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혹은 평소와 다른 공간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그 도시의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이번 커뮤니티비프는 영화를 보는 즐거움뿐 아니라 영화제를 이루는 사람들과 장소를 새롭게 바라보게 해준 시간이었다. 상영관 앞에 놓인 손그림 안내판, 영화제 운영을 돕는 자원봉사자들, 극장과 거리를 오가는 관객들, 그리고 비프광장에 모여 행사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는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누군가는 영화 정보를 손으로 그려 소개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참여하며 축제를 만들어간다. 이러한 참여가 모여 하나의 영화제가 완성된다는 것이 커뮤니티비프만의 특징일 것이다.

영화제가 시작된 남포동에서 다시 영화를 보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거리의 풍경을 마주했다. 오래된 극장과 새로운 프로그램, 그리고 시민들의 참여가 어우러진 커뮤니티비프는 익숙했던 남포동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 앞으로도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영화를 만나고, 함께 축제를 만들어가는 시간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글. 박보은
로컬 생산자.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부산에 대한 이야기와 연구를 기록하며 써내려가고 있다.
이전 페이지 제일 위로 다음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