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결국에는 이어지고, 새롭게 만들어내는 우리_ 김정훈, 허석민

인터뷰이. 김정훈, 허석민 / 인터뷰. 곽다예

부산문화재단의 레지던시 사업에는 어떤 팀들이 참여하고, 그들은 어떤 경험을 안고 돌아올까요?

2026년 기획형 레지던시 공모 사업을 통해 대만과 일본을 다녀온 두 팀의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의 작업을 나누며 함께한 시간. 그 경험은 각 팀의 작업에 어떤 영감을 더하고,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새로운 공간에서의 만남과 교류가 창작 활동에 남긴 흔적,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한 새로운 가능성을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정훈): 안녕하세요. 부산에서 전시공간 ‘낙원’을 운영하며 전시 기획과 큐레이터 일을 이어가고 있는 김정훈입니다. 이번 레지던시에서는 김덕희·손혜민·정현준 작가와 함께 타이베이현대미술관(MoCA Taipei)과의 공동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허석민): 안녕하십니까. 저는 ‘극단 따뜻한 사람’의 대표이자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허석민이라고 합니다. 이번 레지던시에서는 스트레인지 시드 시즈오카와 함께 조선통신사를 소재로 공동 공연을 추진했습니다.

<걸어가다> 홍보 이미지(출처: Strange seed SHIZUOKA) / <내일이 잊혀질 때> 포스터(출처: MoCA TAIPEI)

대만과 일본에서의 현지 레지던시 활동을 마치고 막 돌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후련함과 아쉬움이 함께 남을 것 같은데요. 현지 예술가들과 어떤 작품을 기획하고 선보이셨나요?

(김정훈): 이번 전시 <내일이 잊혀질 때>는 한국과 대만이 함께 마주하고 있는 초고령사회의 현실에서 출발했습니다. 한국 작가들의 경우 김덕희는 돌봄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팡이와 보행보조기 등을 활용한 설치 작업을 선보였고, 손혜민은 한국·대만·일본의 해녀 문화와 지역의 지식이 이어지는 방식을 탐구했습니다. 정현준은 대만에서 노인들이 모이는 장소를 관찰하고, 그곳의 풍경을 한국에서 촬영한 이미지와 연결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정현준, 김덕희, 손혜민의 <내일이 잊혀질 때> 전시 전경(출처: MoCA TAIPEI / 사진: Shih-Yuan Wang)

<내일이 잊혀질 때>
當未來不再被紀念, When Tomorrow is Forgotten

  • 전시 기간: 2026. 10. 3.~11. 22.
  • 전시 장소: 타이베이현대미술관 MoCA STUDIO
  • 공동 기획: 김정훈, 황이쉬안
  • 참여 작가: 김덕희, 손혜민, 정현준, 추웨이샹, 궈위핑, 정완첸

(허석민): 이번 작품 <걸어가다>는 조선통신사를 소재로 부산과 시즈오카의 연출가와 배우들이 공동으로 창작·제작한 작품입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손짓과 표정, 몸의 움직임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걸어가다>(출처: Strange seed SHIZUOKA)

<걸어가다(Walking On)>

  • 공연 일시: 2026. 10. 11.(일) 13:00
  • 공연 장소: 일본 시즈오카 오키츠역 앞~세이켄지
  • 공동 연출: 허석민, 하마요시 세이타로
  • 참여배우: 이경진, 김승환, 박지원, 요시미 료, 모리야마 후유코, 쿠라시마 사토시, 다나카와 히로코, 스즈키 유키오, 카게야마 히사에
  • 공동 제작: 부산문화재단, 스트레인지 시드 시즈오카

작품 이야기를 듣다 보니 레지던시에 참여하기 전의 작업도 궁금해집니다. 이전에는 어떤 작업을 주로 하셨나요? 어떤 계기로 지원을 결심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김정훈): 저는 꽤 오랜 시간 전시 공간을 운영하면서 기획 일도 함께해 왔습니다. 익숙한 방법으로 일을 이어오다 보니 어느 순간 관성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조금 재미있는 계기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마침 개인적으로 새로운 전시 공간을 열고 기획하면서 ‘새로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레지던시 공모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공동 전시 기획과 창작 경험을 나누는 인터뷰 현장

(허석민): 제가 운영하는 ‘극단 따뜻한 사람’은 그동안 부산에서 만든 공연을 해외로 가져가 현지에서 선보이는 경험을 주로 해왔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미 만들어진 공연을 해외에서 선보이는 것을 넘어 처음부터 해외 예술가들과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창작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해외 예술가들과 협업을 추진한다는 것이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교류해 온 팀이나 기관이 있어야 새로운 협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저희가 직접 해외 예술가들과의 만남을 만들고 교류를 추진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기획 단계부터 함께 고민하고 작품을 만들어갈 수 있는 이번 레지던시는, 그동안 풀기 어려웠던 문제를 해결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더불어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예술적 관점을 가진 예술가들이 함께 작업하면서 기존 작업을 확장하고, 새로운 장르나 창작 방식도 시도해 볼 수 있겠다는 기대를 안고 참여했습니다.

두 분 모두 평소의 고민을 풀어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참여하신 것 같습니다. 실제로 경험한 레지던시는 어떠셨나요?

(김정훈): 처음에는 초고령사회라는 주제가 주어져 있었고, 언어와 작업 환경도 다르다 보니 공동으로 전시를 만들어가는 일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기왕 현지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그곳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름쯤 작가들과 함께 대만에 짧게 체류하며 리서치를 진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술관의 전시 담당자와 공동 기획자인 자스민이 작가들의 리서치에 자발적으로 동행해주셨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는데, 그분들의 적극적인 태도 덕분에 이번 프로젝트가 단순한 전시 협력을 넘어 공동작업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허석민): 저희 팀은 조선통신사를 소재로 무언극 퍼레이드 공연을 진행했던 만큼, 일본 예술가들과 긴밀하게 호흡을 맞춰야 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사실 조선통신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가 ‘문화교류’잖아요. 그런데 막상 공동 작품을 준비해 보니, 서로 다른 문화와 작업 방식, 생각들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문화교류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쉽지만은 않은 과정을 거쳐 모든 작업이 끝나고 나니, 우리에게 과연 무엇이 남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하나의 작품이 남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남은 건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태도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극단의 대표이기도 하고 전체적인 그림을 봐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그동안 누군가와 소통할 때 제 생각이나 방향을 전달하는 데 조금 더 익숙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업에서는 제 생각을 전달하는 것만큼 상대방의 생각을 듣고 이해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 자체가 문화교류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이번 공동 작업을 통해 조금씩 배웠습니다.

<걸어가다> 리플렛(출처: Strange seed SHIZUOKA)

다른 예술가들과 호흡을 맞추며 자신이나 팀의 작업 방식을 돌아보셨을 것 같습니다. 이번 경험이 실제 작업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김정훈): 앞서 질문해 주셨던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데요. 저를 새로운 경험 속에 놓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느끼고 발견하는 것 자체가 변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에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저희 전시의 주제가 ‘초고령사회’였는데, 정현준 작가는 대만에서 노인분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으며 신뢰 관계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가 영상 촬영으로 이어지도록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단순히 전시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는 것을 넘어, 낯선 환경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저 역시 새로운 방식으로 사람과 작업을 바라보게 된 것이죠.

저 역시 익숙해졌던 전시 기획의 방식에서 벗어나 여러 낯선 상황을 마주했습니다. 언어와 일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전시를 만드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꼭 해외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창작 활동에서 이동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허석민): 저희 팀은 보통 대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연극을 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창작자로서, 또 극단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작품의 정체성을 주로 대사를 통해 전달하다 보니, 과연 연극은 반드시 대사를 통해서만 무언가를 전달해야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무언극에도 관심을 갖게 됐는데요. 이론적으로는 대사가 없어도 사람에게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가능할까 하는 의문은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공동 창작에서 무언극 공연을 직접 경험하며 그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했고, 무언극이라는 형식에 대한 확신도 조금씩 갖게 됐습니다.

그 경험이 실제 창작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번 작업이 저에게 미친 영향은 상당히 컸습니다. 저 개인의 창작 방향이 달라진 것은 물론이고, 극단 차원에서도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어떤 작업을 해나갈 수 있을지 새롭게 고민하게 됐습니다. 이번 작업은 새로운 공연 하나를 경험한 것을 넘어, 극단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 자체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레지던시 경험이 개인과 팀의 작업에 여러 변화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참여를 고민하면서도 아직 지원하지 못한 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으신가요?

(김정훈): 이번 경험만으로 어떤 조언을 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주어지는 기회나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에서 활동한다는 것이 반드시 새로운 성과를 만들어내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신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작업 방식을 통해 자신의 태도나 관점이 달라지는 경험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주어진 기회 안에서 정해진 목적이나 결과뿐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경험과 발견에도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만큼이나,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무엇을 경험하게 되는지, 또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자신을 낯선 곳에 한번 던져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허석민): 레지던시 사업은 일종의 선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물을 열어보기 전에는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모르잖아요. 마찬가지로 레지던시도 직접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어떤 새로운 길이 열릴지 알 수 없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앞으로 새로운 작업을 해나갈 힘도 얻을 수 있고요.

창작에서는 결국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있다면 일단 해보는 것이 필요하고요. 특히 이런 사업에 참여할 때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만 집중하기보다, 창작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관찰하게 될지 경험하는 것 자체에도 의미를 두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익숙하게 해오던 방식에서 벗어나 낯선 상황에 나를 놓아보는 것만으로도 생각지 못했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레지던시는 단순히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 속에서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앞으로의 작업을 위한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할 수 있다면 이런 경험에 자신을 한번 던져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안에서 무엇을 얻게 될지는 직접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인터뷰. 곽다예 / 부산문화재단 글로벌문화팀 대리
예술가의 창작에 발판을 놓고, 새로운 시도가 낯선 곳에서도 뿌리내리도록 해외 교류와 레지던시 지원 현장을 꼼꼼히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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