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2024 공감그리고 겨울 55호
P. 31

1976년에는 극단 ‘독립무대’(대표 설령)가 강변밀크샵을 개조하여 5평의 무대와 2백석의 객석을 갖추고
             연극전용극장으로 탈바꿈하기도 하여 부산연극계에 활기를 불어넣기도 했다. 독립무대는 강변밀크샵에
             조명시설, 소도구, 무대설비를 설치하고 레퍼토리시스템으로 극단 운영을 도모했다. 독립무대는
             다른 극단에 연습장소나 공연무대를 무료로 내주거나 실내악단을 초청해 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04
             단원들은 공연이 없을 때 종업원으로 차를 나르기도 했다고 한다.  에덴공원 강변밀크샵은
             젊음과 예술에 한껏 열려있는 공간이었다.



             1970년대 말이 되자 도시계획에 의해 에덴공원 인근에 도로가 생기면서 아름답던 갈대밭은
             매축되어 주택단지가 되었다. 강변밀크샵까지도 도시계획에 편입되면서 백광덕 씨는
             1986년 에덴공원 정상에 있던 매점을 철거하고 그 장소에 노천 음악당 ‘솔바람음악당’을 열었다.
             음악으로 자연과 벗하며 낭만을 일깨우는 장소를 표명하며 천상병 시인이 부산을 방문한 그해,
             솔바람음악당에서는 야외 <천상병 시화전>을 열기도 하였다. 솔바람음악당은 국악 연주단체
             새여름국악실내악단의 공연, 오페라와 발레 공연 영상 상영, 부산시향 목관팀의 연습 장소였다.
             특히 강변음악동호회가 결성되어 갈대가 아름다운 가을이 되면 강변음악동호회 가을음악회를 열었다.
             2002년부터 매월 시민과 함께하는 정다운 음악회를 열어 금관5중주단 연주, 목관5중주단 연주,
             현악4중주단, 성악곡 등의 연주를 선보였다. 솔바람음악당은 정기적으로 클래식음악회를 개최하면서
             지역 문화예술인들과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공간이었다.


             솔바람음악당으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이 시절을 추억하듯 오태균 음악비가 낙동강 석양을 바라보며 서
             있다.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초대 지휘자이며, 후학 지도와 클래식음악 해설가로 부산음악사회에 헌신한
             그의 공적을 기리는 음악비다. 평소 솔바람음악당에 자주 들렀던 오태균과의 인연으로 음악비 건립터를
             내어주었고, 제자들과 후배들의 모금과 헌신에 힘입어 2001년 6월 30일 빗돌을 세웠다.
             음악비 아랫쪽에는 오태균이 생전에 가장 많이 연주했던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의 첫 두 마디를 새겼다.



             그러나 백광덕 씨가 암으로 투병하면서 모든 음악회가 멈추었다. 입원 중에도 그는 매일 아침
             솔바람음악당에 클래식음악이 흘러나올 수 있도록 자녀들에게 당부했다고 한다. 솔바람음악당에 대한
             그의 진심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솔바람음악당은 결국 2008년 문을 닫는다.
             이후 보라색 등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2012년 4월 28일,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백성혜와 백성경이
             솔바람음악당의 무성하던 잡초를 걷어내고 50년 전 에덴원을 처음 개척했을 때처럼 다시 음악회를 열었다.









             04   「‘독립무대’서 에덴공원에」, 『부산일보』 1976.1.22. 3판 5면.




                                                                                          29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