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지역 안에서 함께 먹고 머무는 방식, 오붓한

글. 박보은

오붓한 소개 먼저 부탁드려요.

어릴 때부터 그림과 영화를 좋아했고, 러시아 국립영화학교(VGIK)에서 공부한 뒤 한국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했어요. 이후 영화 현장에서 느낀 환경 문제와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면서 부산에 내려와 2011년 작은 동네 공간을 열었고, 카페이지만 공연과 전시가 함께 열리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오붓한을 만들어갔어요.

2019년에는 커뮤니티 다이닝 ‘수리수리’로 또따또가에 입주했고, 지금의 오붓한은 음식과 문화예술을 연결하는 소셜 다이닝 공간으로 다시 자리 잡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요.

오붓한의 입구와 내부 전경

부산의 원도심에서 어떤 계기로 오붓한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부산에서의 활동은 2011년에 처음 시작했어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내려온 시기였고, 처음에는 동대신동 산복도로 쪽의 오래된 집을 고쳐 살기 시작했어요 . 그 동네가 너무 예쁘고 좋았죠. 당시 서울에는 대안공간 같은 곳들이 생겨나던 시기였어요. 부산에도 사람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중앙동으로 오게 된 건 또따또가와의 인연이 컸어요. 처음 이곳을 봤을 때는 문도 낡고 비가 새서 바닥에 물이 고여 있을 정도였지만, 기본적인 주방 형태가 있었어요. 2019년 중앙동에서의 오붓한은 단순한 식당이라기보다 ‘푸드 커뮤니티’, ‘커뮤니티 다이닝’에 가까운 방향으로 시작했어요.

오붓한을 처음 만들 때, 대표님이 이 공간을 통해 가장 전하고 싶었던 마음은 무엇이었나요?

처음부터 맛으로 승부하는 식당을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물론 음식은 맛있어야 하지만, 맛있는 음식만 찾으려면 이미 너무 많은 곳이 있잖아요. 저는 오붓한이 “여기는 원래 이런 곳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음식을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 활용했어요. 예술가들이 붓으로 표현하듯이, 우리는 음식으로도 무언가를 표현하고 사람을 만나고자 했어요. 그래서 오붓한에 오는 사람들이 음식을 다양한 방식으로 맛보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붓한 내부와 장은수 대표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보거나 느꼈으면 했던 한 가지는 무엇이었나요?

“여기서는 조금 다르게 시간을 보내도 되겠구나” 하는 마음이 생기길 바랐어요. 먹는 것 하나도 “잘 먹어야 한다”는 식으로만 말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이렇게 먹을 수도 있네”, “이런 조합도 괜찮네” 하고 생각이 조금 바뀌는 경험을 주고 싶었어요.

차를 마시는 방식도 마찬가지예요. 차는 꼭 전문가만 내려야 하고 특별한 형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저는 집에 있는 음식과 차를 함께 즐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음식과 차, 이야기와 시간이 함께 놓이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오붓한을 만들어가며, 이 공간에서 어떤 이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어떤 관계가 자연스럽게 생기길 바랐나요?

오붓한에서는 사람들이 단순히 손님과 주인으로만 만나지 않았으면 했어요. 저는 원래 사람을 좋아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식당이라는 형태 안에서는 어느 순간 손님과 음식하는 사람 사이에 선이 생기더라고요. 그게 조금 답답했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소셜 다이닝 같은 형태를 더 해보고 싶어요. 원도심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와서 취향을 공유하고,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친해질 수 있는 자리요. 음식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결국 사람이 만나고 관계가 생기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오붓한을 통해 만들고 싶었던 ‘식문화’가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제가 생각하는 식문화는 대단히 어려운 것이 아니에요. 음식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왜 이 음식을 만들었는지, 그 안에 어떤 생각을 담았는지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었으면 했어요.

2022년에 메세나 활성화 지원 사업을 통해 진행했던 ‘기대어 깃든’은 그런 가능성을 확인한 중요한 계기였어요. 음식과 퍼포먼스가 결합된 실험극 같은 형태를 생각했고, 긴 테이블 위에 음식과 퍼포먼스를 얹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낯설어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때 했던 게 이런 거였구나” 하고 다시 알아봐 주는 반응이 생기더라고요. 그 경험을 통해 음식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다는 걸 확인했어요.

중앙동에서 시작한 오붓한이 앞으로 지역 안에서 어떤 활동과 관계를 만들어가길 바라시나요?

저는 아직도 원도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해운대나 광안리에 가면 더 잘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잘되는 곳에 가는 것보다 하고 싶은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에 있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오붓한은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처음에 생각했던 다이닝 커뮤니티, 푸드 커뮤니티 같은 형태요. 누군가가 요리를 해보고 싶다면 이 공간에서 해볼 수 있고, 작은 모임이나 팝업을 열 수도 있고, 대관도 가능하고, 여러 활동의 시작점이자 거쳐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저도 여러 활동을 하다 보니 이제는 제가 그런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붓한이 누군가에게 시작점이 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잠시 들렀다 가는 공간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중앙동에서 시작했지만, 그 경험이 부산의 다른 지역과도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음식과 차를 나누며 이야기가 오가는 오붓한의 시간

요즘 오붓한을 어떤 방식으로 이어가고 계신가요? 오붓한 공간에서 시작된 활동이 지금은 어떤 형태로 이어지고 있는지, 지금 하고 계신 활동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요즘은 오붓한을 꼭 이 공간 안에만 두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왜 오붓한이 여기에 있어야 하지?”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오붓한이 꼭 이 장소에만 있어야 하는 건 아니고, 제가 움직이는 곳이 오붓한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붓한이 제 닉네임처럼 불려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지금은 여러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망양로 쪽에서는 이내님과 함께 책방 공간을 운영하고 있고, 그곳에서 차나 음료, 디저트 같은 것을 시도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디저트를 해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짜이나 말차, 호지차 라떼, 비건 음료 쪽으로 방향을 찾아보고 있어요.

마켓에도 다시 나가보려고 해요. 예전에는 마켓에 나가는 걸 힘들어했는데, 막상 나가면 사람들과 직접 만나고 에너지를 받아오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식당 안에서만 손님을 만나는 방식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과 조금 더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방식도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어요.

앞으로는 오붓한을 어떤 방식의 ‘공간’으로 이어가고 싶은지, 그리고 독자가 지금 오붓한을 어디에서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도 함께 들려주세요.

지금 오붓한 식당은 잠시 쉬고 있어요. 장사를 하면서 제가 많이 지쳤다는 걸 알게 됐어요. 특히 손님과 음식을 만드는 사람 사이에 생기는 거리감이나 평가의 구조가 저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걸 느꼈어요. 저는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음식으로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었던 사람인데, 어느 순간 오붓한이 그냥 식당으로만 보이는 게 힘들었어요.

주변에서도 “공간 안에 장은수가 묻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 말을 들으며 저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오붓한이 이 공간에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움직이고 활동하는 방식 자체가 오붓한이 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중이에요.

앞으로는 오붓한을 더 열린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음식과 차, 팝업, 대관, 소셜 다이닝, 런치 클럽 같은 다양한 형태를 생각하고 있어요. 누군가가 요리를 해보고 싶을 때 시도할 수 있는 공간, 여러 활동이 시작되고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지금은 망양로 책방, 마켓, 외부 협업 등을 통해 오붓한을 만날 수 있고, 앞으로도 그런 방식으로 조금씩 이어가려고 해요.

오붓한 내부 전경
인터뷰. 장은수
음식을 매개로 취향을 나누고 사람들을 만나며 함께 작업하는 공간을 운영 중이다.
글. 박보은
로컬 생산자.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부산에 대한 이야기와 연구를 기록하며 써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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