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고통의 자리에서 피어난 나숨의 예술 _이현정 작가

글. 신용철

세계 내 작가

신용철: 부산문화재단 <웹진 공감 그리고>의 이번 호 주제는 ‘지역과 사람’입니다. 지역은 세계의 일부인 동시에, 그 자체로 온전한 하나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그 안에서 ‘예술가라는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작가 이현정은 어떤 사람인지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현정: 안녕하세요. 홍티아트센터 입주작가 이현정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술적 재능이 조금 있긴 했지만, 본격적인 예술 작업은 살기 위한 작업으로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죽을 것 같은 어떤 고립의 상태에서 정말 숨 쉬기 위해서 작업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숨-쉬기, 숨-하기, 숨-잇기

신용철: 〈숨(Breath)〉시리즈(2018–), 〈김치(Kimchi)〉(2019–), 〈이씨! 표류기(The Drifting of Family Lee)〉(2023–)로 이어지는 선생님의 작품은 굉장히 실존적이고 독특한 작업입니다. 실존적 개인 서사로부터 가족사, 역사로 확장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예술가로서 작업이 시작된 과정과 현재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현정: 먼저 <숨> 시리즈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 하나의 단독적인 작업이라기보다 작업을 하면서 살아오던 일련의 긴 여정에서 파생된 어떤 꼭지들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애초에 단지 숨을 쉬기 위해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어떤 계기로 야외 설치 미술에 참여하게 되었고, 바깥에서 몸을 쓰는 작업을 하게 된 첫 번째 순간에 저도 몰랐던 억눌렸던 자아와 무의식이 폭발하듯이 터졌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의 행위가 제 안에 가둬 있던 내면이 폭발하듯이 터진 시기가 아니었을까 추측합니다. 슬픈 저의 내면의 기저에 깔려 있던 아버지, 더 나아가 할아버지가 있었다는 것을 40대가 넘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알았던 게 아니라 하나씩 길어 올려지는 것 같습니다. 우물에서 단서들을 건져 올려 씨줄과 날줄을 엮어 직조하는 느낌으로 방향성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야외 설치 미술 참여 중인 이현정 작가

개인 서사, 가족 서사, 역사 서사

신용철: 작가님의 작업은 본인의 서사, 가족 서사, 역사 서사들이 일렁, 출렁,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기 서사를 조금씩은 녹여내는데, 본격적으로 자기 서사 뒤에 잠복해 있는 가족 서사를 현대사와 엮어서 형상화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또한 그것을 설치 작업으로 구현하는 경우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관련 작품인 <이씨! 표류기>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이현정: 처음에 저는 자아 찾기부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쭉 이어져서 오다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왜 이렇게 표류하고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내가 계속 표류하고 있다는 물리적인 상태에서부터 출발을 했는데, 더 깊이 들어가 보니 ‘내가 필요한 이유가 뭘까, 인간 이현정이라는 개인이 필요한 이유가 뭘까’를 궁리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제 가족과 아버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유복자로 태어난 아버지 아래에서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 뿌리에는 한국전쟁 전후기에 한국 군경에 의해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그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이씨! 표류기> 작업을 하던 전후 과정에서 제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일상의 시간을 거의 작업에 쏟아부었습니다. 그때 작업을 하면서 속으로 ‘할아버지, 저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으면 책임지세요!’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작업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사실 그 작업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이씨! 표류기(The Drifting of Family Lee)〉(2023–)

자기 치유의 예술

신용철: 예술가는 보통 변별성을 통해 자기 예술을 주장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작가님의 작업은 통상적인 예술 개념과 많이 다릅니다. 보통의 설치 미술과도 다르고 아카이브 아트(Archive Art)와도 다릅니다. 그래서 예술가는 자신을 뽐내면서도 돈을 버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독창적인 예술가 이현정은 예술을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본인의 예술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으신가요?
이현정: 저는 예술을 하기 위해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살기 위해 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어떤 것들을 기록하고 남기기도 하고 돈을 버는 것처럼, 저 역시 제 스스로의 재능으로 열심히 물을 길어 올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작은 소망이 있다면, 제가 작업을 통해 자아를 찾고 스스로 치유받았던 것처럼, 저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분들도 제 과정을 공유하며 작게나마 치유를 경험하셨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이 경험을 저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도 함께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에게 드러낼 수 없었던 아픔의 시간들을 제가 용기 내어 보여주고 들려준 것처럼, 누군가 제 과정을 공유하며 조금이나마 치유를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홍티아트센터, 형제복지원, 물집 프로젝트

신용철: 제가 듣기로는 홍티아트센터가 선생님의 첫 레지던시 프로젝트이고, 선생님도 본디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생활하신 것으로 압니다. 아무 연고가 없는 부산 맨 남쪽 끄트머리 홍티항구까지 오게 된 것이지 않습니까? 작업을 하기 위해 부산에 올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곡절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부산에 오게 된 계기, 그리고 ‘물집’이라는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이현정: <이씨! 표류기>가 아직 마무리가 된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떤 것도 해결된 건 없습니다. 서로 한 번도 화해해 본 적 없는 가족 사이의 끊어진 듯한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무의식이 작동한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작품 <이씨! 표류기>에 등장하는 인물 중 마지막 인물이 75년생 남동생입니다. 동생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집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곤 했는데, 그 당시에는 이를 무심코 지나쳤습니다. 훗날 찾아보니 동생의 실종 기간이 부산 ‘형제복지원’ 및 유사 강제수용시설 사건의 시기와 겹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이 기억하는 장면과 남동생이 기억하는 장면이 달랐습니다. 동일한 사건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지점들, 무엇이 진실인지, 남동생이 당시 어떤 심리 상태였으며 이후에는 어떠했는지 등에 대해 깊이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해 막연함이 컸습니다. 그러다 문득 그 사건의 장소에 직접 가야겠다는 제 몸의 이끌림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치(Kimchi)〉(2019–)

예술생활공간 홍티

신용철: 어쨌든 이제 부산에 오셨습니다. 아직 부산을 잘 모르실 텐데, 홍티는 부산 시내로부터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작업 환경과 생활 환경은 어떤지요? 그리고 그동안 부산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부산 문화예술에 대해 느끼신 점이 있다면 간단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현정: 건물 자체의 시스템은 제가 생활하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장기 입주다 보니 첫 몇 달은 적응하는 시간이었고, 그냥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채로 지나갔습니다. 최근에 제가 느끼는 건, 작가가 작업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은 물리적인 조건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편안한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간을 운영하기 위한 행정적인 시스템이 바탕이 되어야겠지만, 예술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예술가가 가장 작업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이 어떤 것인지 재단 측에서 깊이 고민해 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 이현정
〈숨(Breath)〉 시리즈(2018–), 〈김치(Kimchi)〉(2019–), 〈이씨! 표류기(The Drifting of Family Lee)〉(2023–)를 통해 몸의 감각, 호흡, 기억, 그리고 가족이 지나온 경로를 예술의 언어로 기록하고 있다. 2026년 홍티아트센터에 머물며 <물:집> 프로젝트 작업을 하고 있다.
글. 신용철
땅, 집, 차 없는 상위 1%의 삶을 살며 히피, 집시, 아나키 동무들과 외롭고 높고 슬프고 싶다. 『시골큐레이터 표류기』(2023)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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