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람을 품는 연극 <품>

글. 옥순주

대한민국연극제가 7월 1일부터 26일까지 부산에서 열렸다. 전국 16개 도시의 대표작품들이 경연을 펼친 이 무대에서, 부산 대표로는 부산연극제작소 동녘의 <품>이 올랐다. 심사위원들은 심사평에서 무엇보다 동시대성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그 평가에 답하듯 <품>은 금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품에 안았고, 연출상(최용혁)과 연기상(박지현―차은미 역)도 함께 수상했다. 시상식을 지켜보며, 심사위원들이 던졌던 질문 “왜 지금, 이 이야기를 무대에 올려야 하는가?”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이 바로 <품>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확신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는, 이 작품이 그려낸 노동의 시간을 따라가 보면 알 수 있다.

조명이 켜지면 무대는 생각보다 단출하다. 사각의 프레임 안에 놓인 것은 책상과 의자뿐. 그 위로 2026년 어느 대기업 콜센터, 열두 명의 상담사가 일제히 전화를 받는 장면이 펼쳐진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담 도중 한 노동자의 사망사고가 긴급히 전해지고, 사망자는 생전에 근무환경 개선을 콜센터에 호소해왔던 김주학이다. 그의 호소를 상담 전화로 받았던 차은미가 이 극을 이끄는 서술자이자 관찰자다. 그의 죽음 앞에서 진상규명을 외치는 1인 시위자는 은미의 아버지 태상이다.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던 은미는 집 안에 숨겨져 있던 편지와 기록들을 발견하고, 그간 몰랐던 부모의 노동환경을 비로소 목도한다. 무대는 엄마의 노동 현장이었던 방직공장, 고모가 몸담았던 YH무역의 시위, 평화시장의 전태일, 아버지가 거쳤던 사북 탄광까지 차례로 비추었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1972년부터 2026년까지, 반세기가 넘는 노동의 시간을 한 편에 담아낸 것이야말로 이 극이 다른 작품들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불꽃>, <어머니>, <네 이름은 무엇이냐?> 등 노동을 다룬 공연들을 그동안 봐왔지만, 이토록 긴 시간의 노동사를 한 무대에 모두 담아낸 극은 처음이었다. 연극 공연은 태생적으로 장소의 제약을 안고 있다. <품>은 이 한계를 넘어서는 연출로, 다양한 장소와 시간을 넘나드는 동안 단 한 번의 암전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 말은 곧, 단출한 소품만으로 이루어지는 장면전환의 움직임조차 배우들의 쉼 없는 연기를 통해 가감 없이 관객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뜻이다. 이물감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출 방식도 놀라웠지만, 쉼 없이 이어지는 배우들의 노동 그 자체가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연극예술이 지닌 ‘일하는’ 면모를 함께 보여주는 장면으로 다가왔다.

짧은 시간 안에 노동 현장을 압축해 그려내는 대사 방식도 특별하다. 단어와 단어의 나열만으로 그 공간과 시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장면을 따라가는 관객에게도 쉼 없이 그 환경을 상상하도록 몫을 던져준다. 이를테면 은미의 엄마 춘애는 방직공장으로 출근하며 “기상, 찬물, 걷기, 출근, 파란 대문”을 외치고, 퇴근길에는 거꾸로 “파란 대문, 퇴근, 탈진, 기절”이라 되뇐다. 반면 중간관리자인 반장의 대사는 “기상, 뜨신 물, 출근, 호루라기, 농땡이, 낮술, 미스 김, 오빠 갈겨, 월급 텅텅, 미스 김 나쁜 년, 전체 조회”로 인물의 다른 성격을 보여준다. 이 인물별 리듬과 달리, 또 다른 장면에서는 배우들이 떼창하듯 한목소리로 외치는 대사가 등장한다.

“실패―페달―실꼬리 확인―누적―페달―졸음―알약―아악(누군가 다쳤다)―해고!”
“작업 시작―섭씨 32도―뜀박질―90데시벨―정비 압박―기름때―허리디스크―멈춤”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며 뱉어내는 이 집단의 발화는, 기계적인 단체노동의 현장과 그 열악한 환경을 눈앞에 물화된 장면으로 관객에게 그대로 와닿게 한다.

특히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오래도록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노동의 행렬을 떠난 은미는 마침내 부모 태상과 춘애의 품으로 돌아온다. 모든 배우―시대를 건너온 노동자들―는 ‘품’이라는 말의 여러 뜻을 하나씩 나직이 읊으며, 은미를 중심으로 서로를 끌어안는다. 이어지는 커튼콜에서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가 흘러나오고 배우들이 비를 맞으며 서로에게 물을 튀기기도 하고, 웃고 장난치며 논다. 이어 얼굴을 씻어 내고, 객석을 향해 인사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노동의 비극을 노동의 축제로 바꾸어 놓는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놀이가 되는 노동을, 대신할 기계는 없다!” 기계는 되풀이되는 일을 대신할 수 있을지언정, AI는 정답을 늘어놓을 수 있을지언정, 놀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함께 숨 쉬고 서로를 품으며 만들어 내는 노동까지는 결코 대신하지 못할 것이다. ‘연극’이란 존재의 생동을 발견해본다.

공연 내내 옆자리에서 소리 없이 울던 관객이 있었다. 리뷰어의 눈으로 객석을 살피던 터라, 공연이 끝난 뒤 어느 장면이 아팠는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노동의 비참한 현실이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이는 “그때랑 뭐가 다르노?”라던 태상의 대사와 그대로 공명하는 말이었다. 반면 한 어르신은 객석을 나서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 우리나라가 이런 노동으로 여기까지 왔지.” 한 사람은 오늘을 보았고, 한 사람은 지나온 역사를 기억했다. 같은 무대 아래 앉아 있었으나 두 사람의 삶은 저마다 다른 의미를 길어 올렸다. 아마 그것이 <품>이 지닌 힘일 것이다. 작품은 정답을 내어놓지 않는다. 다만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과 기억을 스스로 꺼내어 놓게 할 뿐이다. 다만 필자에게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얼굴을 씻어 내던 배우들의 커튼콜이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 회한을 씻겨주는 의식처럼, 그래서 또 다른 희망처럼 다가왔다. 노동자 행렬을 향해 절하던 은미의 마음 또한 우리 모두를 대신한 감사의 인사로 따뜻하게 전해졌다.

사람은 노동으로 살아가지만, 사람을 끝내 살아 있게 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서로를 품는 마음이다. <품>은 그 오래되고도 낡지 않는 진실을, 연극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언어로 들려준 작품이었다. 이 목소리를 무대 위로 불러낸 것은 결국 희곡을 쓴 사람의 시선이었다. 지난해 부산연극제 <하우스 오픈>으로 희곡상을 받은 이하슬 작가는 ‘사람이 살았고,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다’를 글에 담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무대 뒤에서 공연을 만들어 온 실무자의 감각과, 노동자의 삶을 바라보는 작가적 시선이 결합해, 무대 위에 쉽게 기록되지 않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불러냈다. 부산에서 주목할 만한 희곡작가를 만난 것 같아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연극은 결코 한 사람의 재능만으로 지어지지 않는다. 희곡을 쓰는 이, 연출하는 이, 무대에 서는 이, 무대 뒤에서 움직이는 이, 그리고 객석에서 조용히 자신의 삶을 떠올리는 관객까지―수많은 사람의 '품'이 모이고 포개져야 비로소 한 편의 공연이 완성된다. 결국 <품>은 노동을 이야기한 연극이면서, 동시에 연극인들의 노동으로 지어 올린 연극이었다.

부산연극제작소 동녘
1995년 창단한 부산연극제작소 동녘은 부산 최초의 연극 전공 졸업생 중심 극단으로 출발해, 현재는 전공과 비전공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예술가들이 함께 작업하는 열린 창작 시스템을 구축해 온 부산의 대표적인 공연예술단체다. 번역극과 창작극, 뮤지컬, 교육연극, 해외 교류 공연 등 폭넓은 장르의 작품을 제작해 왔으며, 전통 연희의 현대화와 시대 현실에 대한 예술적 발언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연극이 개인과 사회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지녔다는 믿음은 동녘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태도다.
글·사진. 옥순주
연극을 사랑하며 그 안에서 성장한 삶의 단상을 모아 <나의 페르소나 별이>라는 책을 썼다. 현재 연극을 활용한 치유적 작업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자기서사극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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