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유난히 뜨거웠던 부산의 여름, 바다가 품은 예술교육

글. 이민경

2026년 부산은 유난히 ‘해양’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고 있다. 부산항 개항 150주년을 계기로 도시 곳곳에서 해양의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고 있으며, 나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바다가 가진 또 다른 가능성에 주목하게 됐다. 지금까지 바다가 관광과 산업의 공간으로 주로 활용되어 왔다면, 이제는 문화와 예술, 교육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확장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이 질문에서 2026년 부산문화재단의 해양문화예술교육이 시작됐다.

처음 ‘해양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을 마주했을 때, ‘해양’이라는 두 글자가 품은 규모와 범위는 무척 거대하게 느껴졌다. 마치 바다의 깊이와 넓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낯설었기에 오히려 더 궁금했고, 그 안에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은 영역을 이해하기 위해 새로운 영역을 찾아 나섰고, 그 과정에서 역사와 과학, 예술과 해양을 연결하는 다양한 만남과 시도가 이어졌다. 그렇게 부산문화재단이라는 배는 익숙한 항로를 벗어나,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영역을 향해 해양문화예술교육이라는 항해를 시작했다.

첫 번째 항로, 지역의 역사와 미래세대의 만남

부산의 바다는 지금 관광과 휴식의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그 이전의 바다는 부산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산업과 교역의 중심지였다. 바다를 오가며 일하고, 살아가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오늘날의 부산을 만들었다. 결국 부산의 바다를 이해하는 일은 그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과 지역의 변화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부산항 개항 150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부산의 근현대사를 미래 세대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특히 피란 수도 부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시점에서,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일은 더욱 뜻깊다. 중요한 것은 역사를 과거의 사건으로만 기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지역의 이야기를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만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어린이들이 부산의 근현대사를 어렵고 딱딱한 지식으로 배우기보다,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을 직접 탐험하고 그곳에 남겨진 사람들의 흔적과 이야기를 예술을 통해 경험할 수 있도록 부산근현대역사관과 함께 첫 번째 항로를 기획했다. 역사적 공간을 걷고, 과거의 흔적을 예술적 재료로 만나며, 부산의 산업과 삶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표현하는 과정이다.

첫 번째로 만난 곳은 부산근현대역사관이었다. 옛 한국은행 건물을 활용하고 있는 역사관의 공간적 특성을 살려, 아이들은 화폐에 담긴 시대의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역사관에서 후원받은 폐지폐(廢紙幣)는 과거의 흔적을 새로운 예술의 재료로 바꾸는 매개가 되었다. 아이들은 화폐가 사용되던 시대의 부산을 상상하고, 부산항 개항 150주년을 기념하는 자신만의 기념주화를 만들었다. 화폐의 형태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부산의 역사와 자신이 바라본 부산의 모습을 하나의 작품에 담아 보는 시간이었다.

두 번째로는 부산의 산업과 사람들의 삶을 만났다. 한때 부산의 대표적인 산업이었던 신발 산업이 어떻게 성장했고, 지역의 경제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산업의 흔적을 오늘날의 감각으로 다시 바라보며 ‘아트슈즈’를 만들었다. 한때 부산의 경제를 이끌었던 산업의 이야기가 아이들의 상상력과 손끝을 거쳐 새로운 예술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과거를 거쳐 현재를 바라볼 세 번째는 자갈치 크루즈였다. 배에 올라 현재의 부산항을 바라보았다. 육지에서 바라보던 부산을 바다 위에서 다시 바라보며, 과거의 부산항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하고 지금의 부산과 비교해 보았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미래의 부산’, ‘내가 살고 싶은 부산’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그려 보았다.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는 일이 현재의 부산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어지고, 다시 미래를 상상하는 질문으로 확장되는 시간이었다.

부산항을 바라보고 지역 산업을 예술로 풀어내며 부산의 과거와 미래를 상상한 시간

이렇게 아이들은 부산의 역사를 단순히 배우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역사적 공간을 직접 만나고,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산업의 흔적을 살펴보며, 과거의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와 예술로 다시 표현했다. 과거에서 출발해 현재를 지나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부산은 아이들에게 ‘배워야 할 역사’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지역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부산의 역사와 현재가 박물관이나 책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화폐 한 장에도, 신발 한 켤레에도, 부산항을 오가는 배와 그곳을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들의 삶에도 부산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흔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해석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이번 항해의 목적지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부산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견하며, 내가 살아가는 지역의 오늘을 바라보고 앞으로의 부산을 상상하는 것이었다. 역사와 예술, 지역과 사람이 만나는 이 시간이 부산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연결하는 새로운 항해가 되었기를 바란다.

두 번째 항로, 100년 뒤 부산을 상상하다 <해양도시 상상단-부산 2126!>

첫 번째 항로에서 과거와 현재의 부산을 살펴보았다면, 다음 항로의 방향은 미래를 향했다. 우리가 살아갈 부산은 어떤 모습일까. 이 질문을 따라 아이들의 상상력을 싣고 100년 뒤의 부산으로 향하는 두 번째 항로에 올랐다. <해양도시 상상단-부산 2126!>은 부산문화재단과 국립부산과학관이 오랜 시간 이어온 예술과 과학의 융합 교육에 ‘해양’이라는 주제를 더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한 프로그램이다.

“지금처럼 지구의 온도가 계속 올라가고 해수면이 상승한다면, 100년 뒤 부산은 물속에 잠기게 되지 않을까?”

아이들은 이 질문을 출발점으로 100년 뒤 부산을 상상하고, 물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해저 도시를 직접 설계했다. 축구장, 산소 충전소, 아파트, 해양 생물 병원 등 아이들의 상상으로 탄생한 도시들은 부산항만공사가 운영하는 북항 마리나 다이빙풀 수심 5m에서 실제 실험으로 이어졌다. 부울경 지역에서 최대 수심과 시설을 갖춘 북항 마리나 다이빙풀은 아이들의 상상을 실제로 구현해 볼 수 있는 실험의 장이 되었고, 부산문화재단과 국립부산과학관, 부산항만공사가 함께 아이들의 상상과 실험을 현실로 옮기는 새로운 항로를 만들어 갔다.

이 과정에서 과학은 교과서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은 물속에서 작품이 뜨고 가라앉는 현상을 직접 경험하며 부력과 수압을 이해했고, 국립부산과학관 연구진과 예술가의 도움을 받아 작품을 수정하고 다시 실험했다. 지상에서는 잘 작동하던 작품이 5m 깊이의 물속에서는 무너지고, 떠오르고, 가라앉기도 했다. 아이들은 전문 프리다이버들과 함께 물속에 들어가 작품을 확인하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문제를 찾았다. 실패하고, 고치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반복하며 해저 도시는 조금씩 완성되어 갔다.

마지막 날 열린 수중전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실험이자 공연이었다. 모든 작품이 처음 계획한 위치에 완벽하게 자리 잡지는 않았지만, 그 모습 역시 수많은 시도와 실패가 만들어 낸 결과였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아이들에게 남긴 것은 어쩌면 완벽하게 성공한 결과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실험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에서 발전한다.”

물속에서 무너진 작품을 다시 건져 올리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고민하고, 또 다른 방법을 시도했던 시간. 아이들은 그 과정을 통해 과학은 정답을 찾아가는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실패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해양도시 상상단-부산 2126!>이라는 먼 미래를 상상하며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결국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을 돌아보게 했다. 바다가 어디까지 변할지, 미래의 부산은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도시를 만들어 가야 할지. 아이들의 해저 도시는 물속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졌지만, 그들이 물속에서 건져 올린 상상과 질문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해저 도시를 물속에서 실험하며 바다와 예술을 함께 경험하는 시간

마지막 항로를 향해, 선상에서 만나는 새로운 감각

미래를 향한 항해는 상상의 바다를 넘어, 직접 바다 위에 올라 몸으로 항해를 경험하는 여정이다. 오는 9월 8일, 부산 시민 80명이 팬스타 크루즈 ‘미라클’에 몸을 싣고 부산에서 오사카로 향한다.

<항해력: 선상 감각 지도>는 부산문화재단과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팬스타라인닷컴이 협력하고, 부산을 대표하는 작가 강은경, 김은경, 이재은, 장두루, 정만영, 실험실C가 함께 만들어 가는 선상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들은 크루즈가 출항하는 순간부터 육지에서는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이동과 흔들림, 부유감 등 몸의 감각을 직접 탐색한다. 그리고 항해 과정에서 마주하는 낯선 감각과 순간들을 예술적 언어로 기록하며 자신만의 ‘선상 감각 지도’를 완성해 갈 예정이다.

이번 항해에서 바다는 더 이상 바라보는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육지를 벗어나 바다 위에 몸을 싣고, 움직임과 흔들림을 온몸으로 느끼며 바다를 새로운 감각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을 예술로 표현하며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감각과 바다의 모습을 새롭게 마주하게 된다.

이 경험의 여정을 통해 단순한 이동을 넘어 몸의 감각으로 바다를 경험하고, 그 감각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해양 도시 부산을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문화예술교육의 시간이 될 것이다.

글. 이민경 / 부산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팀 차장
아직은 북극항로를 개척하기보다, 북극이 온전히 북극으로서 보호받기를 간절히 바라며, 바다와 인간이 영원히 공존하는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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