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로 다른 목소리 사이에서:
2026 부산비엔날레 《불협하는 합창》

글. 임영매

가을, 전국 곳곳에서 비엔날레가 잇달아 막을 올린다. 각 도시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는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조망하는 동시에, 전시가 ‘도시’라는 공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는 장이기도 하다. 미술관을 넘어 도시의 다양한 공간이 전시장으로 확장될 때 작품은 그곳의 역사와 현재 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얻는다.

부산에서도 ‘2026 부산비엔날레’가 막을 올렸다. 올해의 주제는 《불협하는 합창(Dissident Chorus)》이다. 하나의 화음을 떠올리게 하는 ‘합창’ 앞에 ‘불협’이라는 말이 놓였다. 함께하지만 하나가 되지는 않는 목소리들. 이번 전시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기보다 각각의 차이를 유지한 채 함께 존재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전시 전반에 걸쳐 ‘소리’가 중요한 매개로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과 맞닿아 있다. 전시장을 거닐다 보면 노래와 말소리, 노동의 리듬과 구술로 전해지는 기억, 자연과 신체의 움직임에서 비롯된 소리 등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만나게 된다. 이 소리들은 개인과 공동체의 기억을 불러내고,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를 연결한다. 눈으로 작품을 보는 데 익숙한 관람객이라면 잠시 멈추어 작품 속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좋다. 누가 말하고 있는지, 그 목소리가 어떤 장소와 경험에서 출발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불협하는 합창》을 따라가는 또 하나의 실마리가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제가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펼쳐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산은 바다를 향해 열린 항구도시로, 오랜 시간 사람과 물자가 오가며 이동과 이주, 산업과 노동의 역사가 쌓여왔다. 한국전쟁과 피란의 기억도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바다는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떠나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오가고 머물며 여러 삶의 시간이 겹쳐온 부산의 모습은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를 생각해보게 한다.

올해 비엔날레는 부산현대미술관, 영도의 스페이스 원지, 그리고 (구)부산남고등학교 등 세 곳에서 펼쳐진다. 부산현대미술관이 자리한 을숙도는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생태적 환경을 품고 있고, 스페이스 원지에는 항구와 산업의 흔적이 남아 있다. (구)부산남고등학교의 교실과 복도에는 학생들이 머물렀던 흔적이 남아 있다. 생태, 바다와 노동, 학교와 기억이라는 서로 다른 장소의 이야기는 작품과 만나며 전시의 또 다른 맥락을 만들어낸다.

을숙도의 부산현대미술관에서는 사진과 영상, 설치와 사운드 등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통해 이번 비엔날레가 펼쳐놓은 여러 이야기를 폭넓게 살펴볼 수 있다.

출처: 부산문화재단

이곳에서 만나는 이동근의 《아리랑 예술단》은 탈북민 공연단과 오랜 시간 함께하며 그들의 무대와 일상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한 작업이다. 화려한 의상과 공연 장면이 먼저 시선을 끌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무대 밖에서 각자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전쟁과 피란의 기억이 남아 있는 부산에서 이 작품을 마주하면,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부산이 지나온 시간과 겹쳐 다가온다.

영도의 스페이스 원지로 발걸음을 옮기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과거 선박 장비를 임대·보관하던 공간에는 오래된 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고,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와 항구의 풍경도 작품을 바라보는 배경이 된다. 이곳에서 만나는 조아르 송쿠야의 《선원직 프로젝트》는 실제 선원으로 일했던 작가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배 위의 일상과 선원들의 노동을 회화와 드로잉으로 기록한 작품에는 바다에서 보낸 시간과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작품 속 바다는 부산의 바다와 다른 곳이지만, 항해와 노동이라는 경험은 영도라는 장소와 맞닿는다. 전시장을 나서 실제 항구를 바라보는 순간, 작품 속 바다와 눈앞의 바다가 잠시 나란히 놓인다.

출처: 임영매

마지막 전시장인 (구)부산남고등학교로 향하면 분위기는 다시 달라진다. 학교가 이전한 뒤 비워진 교실과 복도에는 학생들이 머물렀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한때 수업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오가던 공간에 작품이 들어서면서 익숙했던 학교의 풍경도 새롭게 다가온다.몽골 작가 얀찬호롤 에르데네바야르의 《토착성의 공명》은 교실에 여러 개의 의자를 배치하고 울란바토르의 시장에서 채집한 소리를 들려주는 설치작품이다. 익숙한 교실과 의자 사이로 멀리 떨어진 몽골의 일상이 소리를 통해 들어온다. 한때 부산의 학생들이 생활했던 공간에서 다른 도시의 사람들과 시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하나의 교실 안에 서로 다른 지역의 시간과 일상이 겹쳐진다.

세 개의 전시장을 차례로 지나오다 보면 작품만큼이나 그것이 놓인 ‘장소’가 중요하게 다가온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을숙도, 항만과 노동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영도, 학생들의 시간이 머물렀던 학교는 저마다 다른 역사와 환경을 품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작품과 만나면서 각기 다른 경험을 만들어낸다. 세 전시장은 단순히 작품이 놓이는 공간에 머물지 않고, 각자의 시간과 기억을 더하며 《불협하는 합창》을 이루는 또 하나의 목소리가 된다.

전시장 사이를 이동하는 시간 역시 비엔날레의 경험을 확장한다. 을숙도에서 영도의 항구로, 다시 (구)부산남고등학교로 향하는 동안 관람객은 실제 부산의 풍경 속을 지난다. 전시장에서 만난 이동과 노동, 기억에 관한 이야기가 어느 순간 눈앞의 도시와 나란히 놓이기도 한다. 서로 다른 목소리를 하나의 이야기로 모으기보다 그 차이와 간격을 따라가 보는 것. 그 사이에서 작품과 공간, 그리고 부산이라는 도시를 각자의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도 이번 비엔날레를 만나는 한 방법일 것이다.

글. 임영매
대학에서 강의하며 미술과 인문학을 중심으로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빛나는 시간』이 있으며, 다수의 공저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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