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2024 공감그리고 여름 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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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그리고 , 시선


           저기 저 설원 위에


           선처럼 선 채로




            글. 오성은



















           사는 건 자국을 남기는 일이라고 시인이 내게 말했을 때 나는 소주를 삼키고 있었다. 더는 그게 달지 않았다.
           글이 마음 자국이라고. 우린 취했지만 더 취하고 싶어 했고 끝까지 서로를 말리지 못했다. 젓가락이 휘어졌고
           보도블록은 일렁였고 또 뭐가 있었지, 나는 부끄러웠다. 글을 쓴다는 게 과연 무엇인가 싶었다. 나는 왜
           마음이 다치면 시인을 찾는 건가. 밤은 여태 캄캄해 아침이 오길 기다리는 동안 이젠 무얼 써야 좋을까
           헛숨만 쉬었다.


           시인이 가고 나면 나는 다시 아픈 몸이 된다.


           글씨를 다시 배워볼까 고심해 본 건 단지 어떤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악필이라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고 그게 또 개성이라며 나를 달래보던 시절도 저만치 멀어졌다. 컴퓨터로 글을 쓰고, 스마트폰으로
           업무를 보는 세상에서 하필이면 왜 글씨에 대한 갈증이 생겨난 걸까.
           그러던 중에 만난 사람이 도홍 김상지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출타 후 고향으로 돌아와 서예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영광도서 건너편에 자리한 서예원으로 직접 찾아갔을 때 마침 그는 수업을 진행하는
           중이었고, 그건 그의 일상을 엿보는 일처럼 흥미로웠다. 그는 나이 많은 제자들의 훈장님이 되어 종이 앞에
           선 자세와 붓이 흘러가는 방향과 팔의 기울기와 먹의 흐름 같은 걸 이르고 있었다. 그를 만나러 온 목적을
           뒤로 한 채 한지 앞에서 붓을 들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는 꾸밈이
           없었고 맑았고 대차 보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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