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2024 공감그리고 여름 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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밟는 동안, 잔가지를 뻗치는 잡념이 유난하다. 이즈음의 부산광역시라는 도시도 근현대사의 특정
국면 속 부산이란 공간과 이름만 같지, 짧은 시간에 이룬 큰 폭의 변화는 그 연속성을 지워버리지
않았나. 허나, 앞선 세대가 닦아놓은 물적-정신적 토대 없이 벼락처럼 오늘이 활짝 열린 것은
결코 아니리라.
졸문을 보완할 요량으로 준비한 자료사진은 한형석 선생의 아드님인 한종수 님께서 보여주셨다.
선친의 삶과 높은 뜻이 시간 속에 부스러지지 않도록 혼신을 다하시던 선생의 모습이 선하다.
소설 집필 당시에 뵈었으니 그때도 이젠 옛날이 되었다. 모든 현재는 옛날로의 편입을 막아
세울 수 없다. 어떤 강렬한 기억도 당랑거철을 면치 못하지만, 그렇다 해도 밀려드는 부끄러움을
외면할 길 요원하다. 갚지 않아도 되는 빚은 애초에 빚이라 부르지도 않았을 터. 상환 방법에
대해 생각하다 다소 엉뚱한 발상으로 귀착한다. 자유아동극장의 개관 날, 꼭 우리 집의 아동을
데리고 극장을 찾아야겠다. 이전 세대가 그랬듯 다음 세대를 위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 말고
다른 수가 있으랴. 다만, 이타의 질서와 예를 갖춘 성숙한 사회를 향유할 때에야 비로소 이자까지
쳐서 갚아드리는 게 아닐까. 멀리 구름이 떠간다.
정재운
2022년 단편소설 「레이니데이」가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청소년소설 「먼구름 한형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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