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2024 공감그리고 여름 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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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개항’과 ‘한국전쟁’이라는 근현대의 격변기를 통과하면서 원주민의 두세 배에
달하는 이주민이 모여들어 도시를 이룬다. 그들의 삶이야 전쟁의 명분과 이데올로기의
명령으로부터 멀찍이 이격돼 있었겠지만, 난리가 터지자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처지는 너나
할 것 없이 참으로 공평했다. 그렇게 부산은 임시(피란)수도가 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즈음
‘부산성(釜山性)’이라 불리는 근대의 풍경 가운데 실향과 이산의 아픔이 직간접적으로 얽혀있지
않은 것 어디 있으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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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피식민의 세월은 세계도시 부산을 수식하는 ‘Dynamic’이나 ‘Good’ 이라는
추상명사와는 그 거리가 가늠할 수 없이 먼 것만 같다. 글로벌과 쌍생아인 자본의 광풍은 그
모든 세월을 옛날 속으로 밀어 넣어버리고 싶어 하는 듯 보인다. 옛날이 어딘가? 미래와 대칭적
시간인 과거는 현재와 달리 광막한 시간이다. 한 번 그 속으로 편입되어버린 옛날들은, 그것들의
육신은 시시각각 훼손되고 현재에 짓눌리거나 매몰되고 종내 흩어져버리질 않나. 그렇게
잃어버린 인간적 자취 혹은 순간들은 초현실주의자 브르통이 생투앙 벼룩시장(한물간 것들이
종착하는)에서 고색창연한 것을 발견하듯, 찰나의 언캐니한 순간 속에서만 되살아날지 모를
운명에 처하곤 한다.
03
02
필자는 ‘수 년 전’이라는 과거 한때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위인동화를 썼다. <인물로 만나는
부산정신>이라는 시리즈의 대상 인물은 작가 섭외 전에 이미 정해져있었고, 나는 그제야 선생의
존함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시점으로부터 훌쩍 미래에 도착한 지금까지도 나는 나의
무지가 귀가 벌게지도록 부끄럽다. 먼구름 한형석은 국권피탈의 해, 경술국치에 나셔서 1996년
소천하셨다. 간단히 요약할 수 없는 선생의 생애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청년시절, 중국에서
벌였던 예술구국(藝術救國) 활동기였다. 덧붙여 귀국 후 해방공간에서 ‘자유아동극장’을 짓고,
‘색동야학원’을 열어 조국의 내일을 예비한 시기까지. 인생의 중반기부터 종반기까지는 통째로
누락된 셈인데, 이를 모두 담아내고픈 욕심을 깜냥이 따라가지 못했다. 부산 서구 해돋이로 297,
아직 개관하지 않은 어떤 극장 앞에서 나는 미망을 좀체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01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열었던 2002년, 그 이듬해부터 작년까지 부산광역시의 브랜드슬로건은 ‘Dynamic Busan’이었다.
그러던 것이 2023년부터 ‘Big’(Busan is good)으로 바뀐다.
02 하는 일마다 실속 없고, 앞으로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는
03 희망이 없는 자가 쓴 글이 읽을 가치가 있을 거라고는 아무래도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글줄을 기워나가며 소망하던
바는 있었다. 내가 쓴 글을 읽은 (청소년) 독자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적어도 저자보다는 훨씬 나은 사람이 되길
바랐다. 그 같은 허영 섞인 원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먼구름 한형석’ 선생의 생애에 기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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