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2024 공감그리고 여름 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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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立春)과 우수(雨水) 사이쯤으로 기억한다. 절기상으론 완연한 봄의 진입을 알리지만
           게으른 피부는 겨울을 벗지 못하던 그즈음, <‘한형석 자유아동극장’ 부민동에 복원 개관>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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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의 기사를 접했다. 기사에선 사월쯤 공사를 완료하고, 임시개장을 거쳐 칠월 개관하기로
           목표했다고 했으나, 이 잡문을 쓰고 있는 칠월 중순까지도 일부 공사는 진행 중이었다. 애초
           2015년 극장 복원 완료를 목표로 추진했던 사업임을 떠올리면 며칠 더 기다리는 게 대수랴.
           누가 부른 것도 아닌 걸음을 번번이 물리면서 하는 생각이란, 옛날에 내가 썼던 「먼구름 한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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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을 노래한 예술가」 의 도입부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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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소설(동화) 속에선 선생보다 백 년 뒤인 이천십 년에 태어난 유안이 가 등장한다.
           아이는 아빠 손에 이끌려 부산 서구의 ‘먼구름 한형석 길’을 올라 자유아동극장 터에 당도한다.
           극장이라고 해놓고, 잡풀만 무성한 폐가 앞에 선 유안이는 소략한 안내문을 만난다. ‘독립운동가’,
           ‘한국 최초의 오페라’ 같은 거대한 명명들도 아이에겐 그저 까마득한 말들일 뿐이다. 막대하게
           자란 풀 무덤처럼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시간 때문. 물론 제아무리 시간의 힘이 세도 있었던 일을
           없던 것으로 만들거나, 없었던 일을 새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렇게 이미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과거는 필연이고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이를 놓고 기억하고 해석하는 현재는 불확실로
           가득한 가능태인 미래를 향해 언제까지나 개방되어 있다. 잠긴 문, 재탄생을 기다리는 극장
           터에서 유안이의 귀에 어떤 노래가 들려온다. ‘우리 국기 높이 날리는 곳에’ 유안이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다정한 아빠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 같다. 바람에 실린 노래의 정체는 한형석 선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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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곡한 「국기가」 . 노래와 함께 시간이 멈추고, 잠긴 문을 열고 극장에 들어선 유안이의 눈앞엔
           인형극이 한창인 무대가 나타난다.









           04  손희문 기자, ≪부산일보≫ 2024년 2월 15일 기사
           05  「먼구름 한형석-희망을 노래한 예술가」(호밀밭, 2020)
           06   유안이란 이름은 청년기의 한형석 선생이 개명하였던 ‘한유한’에서 따왔다. 1933년, 산둥성 당읍현 소재 무훈중학교에서
             예술 및 영어교사로 근무하였던 선생은 윤봉길의사 의거 이후 일제수사대의 압박이 심해지면서 이후 산둥성 각지를
             전전하며 발표하는 작품마다 한서, 한희 등의 여러 이름을 사용한다. 그 무렵, 창작한 「신혁명군가」는 중국 전군에
             보급되기도 하였다. 훗날, 이 다른 이름들에 의해 선생의 활동은 가리어지고 하마터면 묻힐 뻔 했으나, 중국의 한 교수의
             발굴을 통해 한형석이란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07   「국기가」는 이범석 글, 한형석 곡으로 광복군 제2지대에서 애국가처럼 불리었다. 「국기가」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우리
             국기 높이 날리는 곳에 / 삼천만의 정성 쇠같이 뭉쳐 / 맹세하네 굳게 태극기 앞에 / 빛내려고 길게 배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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