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2024 공감그리고 여름 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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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21세기 전통음악의 한 측면은 전통에 바탕을 둔 현대적 재해석과 다양한 장르와의 융합적 수용을
통해 새로운 시대 흐름과 함께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은 이러한 음악의 실험적 또는 과도기적 경향을
더 이상 낯설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만큼 음악에 대한 이해와 폭이 넓어졌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음악적 발전과 수용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국악사를 통해 엿볼 수 있다.
필자가 전공한 피리라는 악기는 서역 지역의 피리가 실크로드를 따라 고구려에 전해지며 토착화되고
향악화된 국악기다. 피리는 전통음악에서 주선율을 담당하며 1,500년을 걸쳐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1,500년의 역사를 품은 피리는 오랜 역사 속에서 전통을 오롯이 지켜가는 가운데 그 바탕을 뿌리 삼아
시대에 따라 새로운 음악 사조가 생겨나 융성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회적 변화로 인한 단절의 위기도
맞으면서 변화를 거듭해왔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예술의 변화와 발전이 컸던 시기인 고구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거문고로 대표되는 당시 음악은 인근 국가인 한나라와의 교류로 문화를 비롯한 서역의 문명이 대륙을 통한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 전해졌고, 당시 한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에 집결되었다.
이렇게 모인 독특한 각 민족의 음악은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피리 역시 이 당시 서역에서 두루 통용되던 관악기로 고구려시대에 한반도로 전해진 서역 음악은
기존의 고구려음악 바탕 아래 향악화되었다. 7세기에는 수나라 궁중 연회에 중앙아시아 및 인도 등
주변국의 음악 사절단으로 고구려악이 초청될 만큼 고구려의 융성한 음악 문화로서 꽃피웠다.
이러한 고구려악은 이후 당나라의 ‘십부기’에도 포함되어 주변 나라와 교류할 만큼 높은 수준이었음을
‘수서’, ‘구당서’ 등에 전하고 있다. 외래 문화를 수용하여 더욱 발전된 음악으로 정착시킨 고구려악이
우리나라 융합예술의 시초가 아닐까 한다.
이러한 고구려악은 7세기 무렵 일본의 음악에도 영향을 주어 일본 궁중음악인 가가쿠(雅樂)의
큰 축을 이루는 우방악인 고마가쿠(高麗樂)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그 음악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전공 악기인 피리로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학기마다 아악, 정악, 민속악 독주회를
개최하고 3년간 18세기 선비들이 향유했던 성악 장르인 가곡 중 남창 가곡의 피리선율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필자가 연구했던 가곡은 18세기 실학자들이 신분 차이를 넘어 사대부, 중인, 악공들로 구성된
새로운 풍류방 문화를 이끌며 정악(正樂)이라 부르는 장르를 생겨나게 하는 동시에 조선 전기의 음악과는
다른 민간 주도의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꽃피게 하는 단초를 열었던 음악 장르다. 필자는 조선 후기 가곡의
반주 선율이 기악화되며 파생된 ‘자진한잎’이라는 방대한 기악곡과 영산회상 중 ‘평조회상’ 전곡을 담은
음반을 발매하였다. 학업을 하는 동안 전통에 충실한 연구와 연주를 해오며 이를 바탕으로 새롭게 대중과
소통하는 음악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이때부터 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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