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카이빙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실체가 없는 비가시적 수행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가?’인 것 같습니다. 처음 아카이브 작업을 해야겠다고 다짐하였을 때는 다른 작가와 협업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의미 있다고 생각되던 이야기들이 순간에만 머물고 휘발되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과 말들을 붙들고 싶어서 이후엔 무작정 영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단순히 결과로 향해가는 과정을 기록하는 작업이었지만, 나중에는 그 과정을 함께 다시 상영하는 방식으로 확장되었어요. 그리고 그때 깨달았어요. 이 아카이브 자체가 결과물과는 또 다른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을요.
2. 주로 어떤 방식으로 아카이빙 하시나요?
저는 영상, 사진, 텍스트를 중심으로 작업을 아카이빙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소아암 치료 당시 어머니가 남긴 병원일지의 텍스트를 영상 이미지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했어요. 초반부에는 의학용어와 수치 같은 ‘데이터화되는 몸의 언어’로 저의 몸이 설명되어 나가지만, 중반부를 향하며 어머니의 일지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돌봄과 감시, 사랑과 두려움의 감정이 드러납니다. 기계적인 기록이 점차 인간의 목소리로 전환되는 지점이 있죠. 이 일지는 처음에는 어머니가 아픈 자식을 돌보며 쓴 기록이지만, 그것을 영상으로 옮기며 부모의 주체가 해체되고 저의 시선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기록을 ‘돌봄’의 형태로 다시 바라보게 된 거예요. 그렇게 관계를 압축하고 다시 활성화시키는 과정이 저에게는 아카이빙의 본질처럼 느껴지면서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단순히 기록을 남기는 것을 넘어, 그 안에서 주체가 이동하고 관계가 재활성화되는 순간을 흥미롭게 바라봐요. 그런 이유로 타인의 기록 텍스트나 디지털 공간에 떠도는 영상 자료들을 작업에 자주 차용하는 것 같습니다.
3. 당신에게 아카이빙은 ‘기억’인가, ‘지속’인가?
깊이 생각해 보진 않았지만, ‘기억’과 ‘지속’ 중 하나를 고르라면 저는 ‘지속’에 더 가깝다고 느낍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기록의 행위로 시작하였지만 그 기록물이 가진 감각은 또 다르게 작동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기록으로만 머무를 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기록은 여러 관점을 재조명하고 작품의 생명력을 연장하는 계기가 됩니다. 다만 저는 아카이빙이 작품만을 위한 형식으로 환원되는 것을 지양합니다. 그래서 제게 아카이빙은 단순히 남겨둔 기억이 아니라 ‘작품을 넘어선 여러 접근을 지속하게 하는 행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