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2024 공감그리고 봄 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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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에서 대기하던 때가 있었는데, 갑자기 밤하늘 별을 찍으러 온 분들이 대거 몰려와서 작업에
애를 먹었던 적이 있거든요. 야외에서 작업할 때는 제가 임의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으니까 이런저런
헤프닝이 많아요. 대신 재미있는 일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제가 전북 부안에 있는
채석강 쪽으로 소리 채집을 나갔던 적이 있는데요, 그때 어디선가 자꾸 따닥따닥 소리가 나는 거예요.
고개를 기웃거리며 소리의 근원을 찾아보니 바위에 붙은 따개비들이 숨 쉬며 내는 소리였어요. 특이하지
않나요? 따개비가 내는 소리라니 예상치 못했던 발견이라 더 재밌었던 기억이 납니다.
작가님이 지금과 같은 작품세계를 확립하는 데에 일본 유학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어요.
당시 ‘선단미술’을 접하게 되면서 매체 중심의 실험적 작품활동을 본격화하셨다고요. 선단미술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만영 기존에 없던 새로운 예술 형태를 만들어내는 걸 말해요. 음악, 무용, 미술 같은 여러 장르의 예술을
융합해서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키는 거죠. 1960년대에 처음 등장한 개념입니다. 비디오 아티스트로 유명한
고(故) 백남준 선생님도 이 개념에 속하는 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플럭서스 운동(Fluxus)의 대표주자
중 한 분이잖아요.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서 예술의 정의와 표현 범위를 확대시키셨죠. 당시 비평가들도
백남준 선생님의 작품을 두고 어떤 장르라고 정의하기 어려워했다고 해요. 어떤 장르에도 속한다고 말하기
어려웠으니까요. 선단미술이 영어로 ‘Intermedia art’거든요. 마찬가지로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에 있는 개념이라는 의미로 접두사 Inter를 붙인 거죠. 이런 흐름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유학시절 작가님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장르를 허문 예술 분야인 만큼 다양한 분들을 만나셨을 것 같아요.
만영 제가 Intermedia art 학과를 다녔는데요, 교수님들부터 정말 다양했죠. 연극, 무용, 평론, 조각 등
여러 분야에 속한 전문가들이셨어요. 저는 그중에서도 작곡가로 활동하시던 교수님의 연구실에 있었는데요,
그 연구실에 있던 사람들의 구성도 참 독특했어요. 미술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연극, 무용, 연주자 심지어
게임 프로그래머도 있었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갈 함께 만드는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 됐고요.
인상적인 일도 있었습니다. 폭포를 그린 작품을 보고 마치 실제로 폭포를 마주한 듯 그 소리가 실제로
들리는 경험을 한 거죠. 이런 여러 가지 경험이 바탕이 되어 비로소 지금의 제 작품활동의 배경이
만들어진 게 아닌가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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