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2024 공감그리고 봄 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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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면서 느낀 것들
위 대화는 내가 어느 주말에 취미미술 수업을 막 듣고 나서, 할머니를 뵈러 간 김에
자랑스럽게 꺼낸 그림을 앞에 두고 얘기 나눈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할머니께서는 그림
같은 거 말고 차라리 영어나 회사 다닐 때 필요한 걸 배워보라는 충언도 곁들이셨다.
수많은 취미 생활 중 나는 왜 미술이었을까? 그 시작은 나의 직업의 변화에서부터였다.
프리랜서로 지낼 때는 불규칙한 생활로 가벼운 운동을 하러 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는데, 직장인이 되고 나니 나름의 경제적인 안정감을 얻어 매달 나가는 회비를
부담할 만했다. 하지만 그런 평화도 잠시, 회사에서 아무 영혼 없이 여덟아홉 시간을
보내는 일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온전히 나로 누릴 수 있는 나의 시간이라고는
고작 퇴근하고 나서의 몇 시간이었고, 그마저도 저녁밥 차려 먹을 체력도 안 되어서
허구한 날 배달 앱을 열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 찾게 된 취미미술.
지난날에 일일 수업으로 들어봤던 경험과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없다는
콤플렉스가 더해져 수업을 찾게 되었다.
처음 간 수업시간에 연필로 선 긋기를 하는데 그 일이 너무 즐거웠다. 근래에 한 일
중에서 가장 무용(無用)한 것이었는데, 이 ‘쓸모없음’이 주는 기쁨이 컸다.
그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긴 선을 반복해서 그리는 일을 하면서도 ‘잘’하려고 하는
내 모습에 대한 알아차림 등은 나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게 했다. 그림을 그리러 가면
내 영혼이 충만해지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이 회사 생활을 하는 데에도 알게 모르게
좋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친구와도 함께 그리면서 그림에서나 인생에서나 틀린 것
없이 그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배웠고, 일상에 활기를 더했다.
예술 아닌 것은 무엇인가
사실, 할머니께서는 모르시지만 나는 이외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을 많이 하고
있다. 어느 주말이면 집 근처 카페에 들러 창밖 풍경을 멍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계획도
없이 무작정 걷기도 한다. 꽃 피는 계절에는 꽃내음을 맡으러 나들이도 가고, 햇살
좋은 여름날이면 바다 수영도 즐긴다. 또한, 지난 애인이 그리운 어느 새벽에는 그가
좋아하던 음악을 찾아 듣기도 하고, 그걸로도 안되면 시를 읊기도 한다. 이렇게 나의
일상은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눈 감을 때까지 예술 아닌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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