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2024 공감그리고 여름 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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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이 지나면서 부산에서도 비로소 대학 내에 음악과가 신설되기 시작했다.
           지금의 경성대학교의 전신인 한성여자초급대학에 음악과가 설립되었고, 동아대학교에,
           그리고 신라대학교의 전신인 부산여자대학에 음악과가 신설되었다. 이 시절에 내가 부산에
           와서 서양음악의 선구자 자리에 계셨던 부산 교수님들과 함께 일하면서 대학교수가 될 수 있는

           행운도 따라 주었다. 1970년에서 2000년까지 근 30년간 국내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이
           급격하게 많아지면서 국산 피아노 유통이 매우 활발해졌다. 외국으로 유학 가는 전공학생도
           많아졌고 한국 내에서의 피아노 음악에 대한 열풍이 대단하였었다. 2000년 후 아파트 생활이
           시작되면서 피아노는 가정집에서 점차 사라지게 되고 피아노 학원이 점점 활성화되어갔다.


           부산에는 지금의 시민회관이 1973년에 건립되기 전에는 공연장다운 공연장은 없었다.
           모든 공연은 극장 혹은 학교 강당에서 열리고 있었다. 부산시립교향악단까지도 극장에서
           연주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1965년 내가 부산에서 첫 독주회를 할때도 부산일보(옛 건물) 4층
           강당에서 업라이트 피아노로 연주했다. 그리고 1976년 부산 시립교향악단과 시민회관에서
           연주할 때 그랜드 피아노가 없어서 제자가 가지고 있던 그랜드 피아노를 빌려다 놓고 연주했다.
           현재 세계적 지휘자 정명훈 씨가 1974년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준우승을 했을 때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개선 연주회를 시민회관에서 하게 되었는데 연주용 피아노가 없어
           어느 종교 단체의 피아노를 빌려다 놓고 연주한 기억도 있다. 이런저런 사연 끝에 드디어
           시민회관에도 연주용 그랜드 피아노가 들어왔고, 홀 콘서트형 슈타인웨이 피아노가 비치되었다.


           나는 이즈음 가은 아트홀이라는 이름으로 자그마한 연주홀을 만들었다. 1988년 남편이
           상속받은 돈으로 남천동에 4층 건물을 사게 되었다. 그 건물 전체를 음악 시설로 바꾸기로
           했다. 일본 동경 시내에 있는 야마하 건물처럼 꾸미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상가 건물이라

           이미 들어와 있던 상인들을 모두 내보내고, 술집으로 쓰던 지하를 연주홀로 꾸미었다.
           슈타인웨이 피아노를 들여놓았더니 그럴듯한 연주홀이 탄생되었다. 그리고 사무실, 연습실,
           강의실 등으로 4층 건물을 모두 채웠다. 국산 그랜드 피아노 4대, 업라이트 피아노 10대, 그 외
           부대시설 등 내 재산을 다 털어 넣다시피 하였다. 이렇게 개관한 가은 아트홀에서 주로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들의 연주를 꾸준히 열어주었다. 피아노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상당히 많았던
           시절이었지만 연주할 공간은 거의 없었다. 이런 실정이 안타까워 자비를 털어 만든 비록 작은
           연주홀이었지만 그 시절 요긴하게 사용된 연주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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