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2024 공감그리고 여름 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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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다. 이보형,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7) (서울: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에 박종기
                         유적조사 보고에 따르면 당시 사람들은 그를 “박젓대”라고 부르는데 이는 박종기가 대금의
                         불세출의 명인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가 태어난 주변의 풍수는 반경 10리를 기준으로 산
                         세와 지형을 보면 왼편으로 여귀산(⼥貴⼭)은 탄금산으로 선녀가 가야금를 타는 모습이며,
                         삼막리 뒷산이 안금산(按禁⼭)으로 신선이 거문고를 탄다는 산이요 앞 벌판으로 마주보는
                         고산리는 북매산 북형이고, 중매리는 쟁형으로 징의 모습이다. 장구포리는 뒷산이 장구형
                         태 산이다. 그리고 1943년도에 개교한 광석국민학교 자리는 삼현취(三絃吹)자리이다. 박
                         종기 명인 생가의 풍수지리로 보아도 국악과의 인연을 쉽사리 짐작케 한다. 경성방송국에

                         서 1930년대 중반 국악방송을 담당하였던 이혜구는 박종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갓을 쓴 박종기가 대금 독주를 방송하러 방송국에 오면 의레 술에 취하여 얼굴이 불그스레
                         했다. 일본인 직원이 박종기를 가리키고, 저렇게 술 취한 사람을 방송실에 들어 보내도 좋
                         으냐고 하였는데, 저 사람은 술 안 마시면 방송을 못한다고 설명했더니 그 말에 그는 고개
                         를 갸우뚱거리고 다시 말이 없었다고. 진도 아리랑이 작곡된 경위는 김소희 명창과 김득수
                         명인 등의 증언에 의하면 유성기 음반 취입차 일본으로 가는 배위에서 박종기가 기존의 통
                         속 민요 산아지 타령 등을 즉흥적으로 편곡하여 창작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박종기의 타
                         계에 대해 판소리 고법의 인간 문화재였던 김득수는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16) 판소리 고
                         법에 증언한 바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박종기 죽음은 김득수가 송만갑을 모시고 판소리
                         공부를 하는 동안에 완도 구경 갔다가 완도유지 잔치 집에 초대되어 연주를 하다가 타계 하
                         였는데, 진도군 장례로 김득수가 진도읍 포산리 산에 모셨다고 한다.


                         아주 짧지만 진정한 예술인 박종기 선생 예술생애를 연구하면서 전통민속음악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부산문화재단에서 부산전통민속예술 악가
                         무를 어린이무형문화재 교실로 개발한 일화가 생각났다. 2010년 부산광역문화예술교육지
                         원센터가 지정되고 당시 박소윤 부장과 나는 어린이무형문화재교실 첫 단계로 어린이 무
                         형문화재 체험단을 운영하였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에 부산문화재단이 창립
                         된 지가 얼마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재단 설립에 중요한 목적에 지역문화정체성 정립이

                         라는 것을 실천하는 사업으로 인식하였던 기억이 난다. 난 지금도 새로운 예술의 원천은 지
                         역민속문화예술에 있다는 믿음은 그대로이다. 지역민속문화는 단순한 역사가 아니라 오늘
                         날 우리에게 살아 있는 전통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부산문화재단 출신으로 부산문화
                         재단이 예술가와 시민과 함께 항상 활기차게 정진하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하경희
                      2009년 재단창립과 함께 초대사무처장으로 입사, 부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장 등을 역임하였다.
                    2022년 정년퇴직 후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분야 전담심의위원, 글로벌 按琴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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