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2024 공감그리고 여름 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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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그리고 , 지금
나의 예술창작 원천을 찾아서
글. 하경희
나는 진도전통민속음악을 연구하고자 2024년 4월 1일부터 진도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올 연말까지 살 예정이다. 나의 고향이자 대한민국 전통민속예술특구인 진도에서 예술
창작 원천을 찾고자 함이다. 연구 시작은 대금국수로서 대금산조 창시와 진도 아리랑
편·제작한 진도전통민속음악의 뿌리인 박종기 선생의 예술 생애에 대한 것이었다.
이에 연구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박종기(朴鍾基: 1879. 12.12 ~ 1941. 10. 30)선생
은 무정 정만조에 의해 당대의 최고의 예술인으로 칭송받은 아버지 박덕인의 예술 유
전자를 이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관료였던 무정 정만조는 47세 나이로 1896
년 팔월역변(八月逆變)과 시월무옥(十月誣獄)에 연루되어 진도(珍島)에 12년간 유배
되어 살았다. 당시 박덕인은 70세의 나이로 무속 활동을 하지 않은지 20여 년이 지났
지만 무정의 외롭고 고통스런 유배 생활을 위로하기 위해 음악과 춤과 시로써 아름다
운 두 예인(藝人) 간의 우정을 쌓았다. 이때 무정의 박덕인(朴德寅: 1827~1900)에게
바친 시를 인용하면 ‘아속청탁(雅俗淸濁) 완려애유 (緩麗衰愉)’ [이윤선 박사 해설: 고
결하고 속된 것을 넘나들고 맑고 탁한 것을 가로 지르며 순결하고 우아한 것을 더불어
보듬고 슬프고 기뻐하는 것을 한가락에 담아내는 예술이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박
종기선생의 가계는 세습무계인 박헌영의 둘째 아들 박덕인 그리고 박종기에 이르러 남
도음악 명가로 절정기에 이른다. 그 후 후손들은 전남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에서 1980
년대 말까지 씻김 굿 무속활동을 하다가 제주도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진다.
박종기선생은 산조(散調) 뿐 아니라 제례곡인 심방곡(⼼房曲)등 에도 능하였고 판소리
에도 조예가 깊어 대금산조에 판소리 기법을 도입하여 대금산조를 창시하였다. 그리고
효심이 지극하여 부모의 중병에 자기살을 도려 약에 쓴 효행이 널리 알려져 1909년에
조정에서 내린 효행 상을 받았다. 때문에 박종기는 평시의 모습은 삼배적삼에 갓을 쓰
고 다녔고, 다리를 절었다고 한다. 조선성악연구회(鮮聲樂硏究會)에서 활동으로는 기
악연주와 교육에 힘썼으며, 제자로는 한주환(韓周煥)과 이생강 명인으로 이어진다. 일
제강점기에 많이 취입한 80여 편의 음반과 270여 회의 경성음악방송 출연 등이 기록
으로 남아있다. 진도읍내 국악협회와 인류문화유산 무형문화유산 전수관 마당에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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