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2024 공감그리고 겨울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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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울음이나 웃음소리가 들리면 기분이 좋다. 높고 길게 울려 퍼지는 소리가 생명
                      그 자체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여기는 울산 바닷가 앞에 있는 대형 카페. 작은 발로 종종 걸어
                      다니던 아이가 내 가방에 달린 여우 인형이 마음에 드는지 곁으로 다가온다. 아이 엄마가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재빨리 작은 팔 사이에 손을 끼워 아이를 데려간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나도 저 아이처럼 작고 말랑한 시절이 있었겠지.



                      갓 태어난 내가 여물지 않은 성대로 울음을 터뜨렸을 때 엄마는 어떤 눈을 하고 있었을까?
                      어떤 삶을 살든 그저 행복하기만 하라고 조용히 속삭여줬을까. 지금 엄마에게 연락해서
                      이십여 년 전 기억을 묻기엔 부끄럽다. 대신 상상으로 찡해진 코끝을 느끼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양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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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전공은 환경공학과.  환경을 지키겠다는 큰 꿈을 품고 학교에 입학했다가 환경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대학교 3학년에 환경 단체 활동가로 일을
                      시작했다. 졸업 후에는 환경을 주제로 문화 기획을 해왔다. 올해 초에는 중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자유학기제 환경 강사로 일했고, 내년 모집 공고를 기다리는 중이다. 지금은 주말 저녁에
                      편의점에서 일하고, 주말 낮과 평일에는 예술 단체 ‘지구숨숨’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재택
                      근무하고 있다. 주로 해양 쓰레기를 주제로 예술과 접목한 환경 교육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한다. 지원사업 증빙 서류도 만들고, 회계도 한다. 아주 가끔, 원고 요청을 받아 글도 쓰고 있다.


                      내가 일하는 방식을 정확히 설명할 단어는 없다. 제일 가까운 단어로 프리랜서를 떠올리지만
                      거창한 느낌이다. 프리랜서도 분야가 있고, 직업이니까. 취미나 문화생활을 즐기고, 저축이나
                      투자도 하면서 생활을 유지할 만큼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분야가 정해져 있지 않아서
                      스스로 프리랜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놀고먹기만 하는 백수는 아니니 나를

                      ‘비정규직 단기 노동자’라고 표현하는 게 가장 적당하겠다. 아침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할
                      필요가 없으니 대학생 애인을 오전 수업에 데려다 줄 수 있어 기쁘고, 오전 열한 시의 햇살을
                      집에서 보고 만질 수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실컷 늦잠 잘 수 있어서 좋다. 부유하진 않지만
                      여유롭고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순간도 있다. 소중한
                      친구가 취업 소식을 알려오면 진심으로 기쁘면서 마음 한구석이 철렁 내려앉는다. 부르면
                      나가고, 부르지 않으면 뭐 해 먹고 살지 또 고민하는 나, 진짜 괜찮은 걸까.






                      01    대기·수질·폐기물·토양·해양 등의 오염 예방과 소음 및 진동공해 방지 등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학문적인 연구를
                        하는 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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