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1 - 2024 공감그리고 겨울 55호
P. 71

덜 무섭다는 건 취소다. 침대에 눕자마자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좀비 꿈을 꾼다면, 날 쫓아오는 건 뭘까? 수정이는 발레복을 입은
                     곰이 쫓아왔다고 했다. 발레복을 입은 곰이라니, 웃길 것 같은데 그게 날

                     잡아먹는다고 생각하면 무섭기도 했다. 갑자기 발이 시린 것 같아서 이불
                     안에 발을 꼭꼭 숨기고 억지로 눈을 감았다. 잠들고 싶었지만 잠들 수가

                     없었다. 한참을 뒤척이다 벌떡 일어나 가방에서 필통을 꺼냈다. 푹신한
                     필통을 손에 꽉 쥐자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나는 필통을 쥔 채로

                     침대에 누웠다.

                     눈을 떴는데도 세상이 어두컴컴했다. 여기가 내 방이 아니라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내 눈앞에 행굴 씨가 나타났다. 나만큼, 아니 나보다 큰

                     행굴 씨였다. 행굴 씨는 웃지 않았다. 웃지 않는 행굴 씨가 나에게로 달려와
                     내가 왼손에 쥔 필통을 뺏으려고 했다.

                     “싫어! 저리 가!” 나는 필통을 꼭 끌어안았다. 행굴 씨는 나를 할퀴기
                     시작했다. 발톱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물갈퀴가 달린 발가락이 내 팔을

                     스치자 팔뚝이 움푹 파이며 상처가 났다. 피는 나지 않았지만, 구멍이

                     날 것처럼 깊게 파인 게 무서웠다. 번뜩 김승준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떠오르는 대로 아무나 부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저멀리 잠옷 차림의 엄마가

                     나타났다. 뒤이어 잠옷 차림의 김승준과 연우도 나타났다. 모두 내 쪽으로
                     달려왔지만, 우리 사이에 유리 벽이 있는 것처럼 가로막혀 다가갈 수가

                     없었다. 나랑 행굴 씨만 이 안에 있는 거였다. 나는 있는 힘껏 도망쳤다.


















                                                                                          69
   66   67   68   69   70   71   72   73   74   75   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