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 - 2024 공감그리고 봄 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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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난 유진-오닐의 부두창고극장(프로빈스타운)을 꿈꾸었다.
                         부둣가를 몇 년간 헤매고 다녔지만 부둣가 창고는 대부분 보세창고라 임대료가 비싸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하였다.


                         1983년 후배들이 중앙동 대로변 맞은 편(당시 KAL빌딩)에 빈 창고가 하나 나왔다고 해서

                         가보았다. 삐걱거리는 삭은 철계단이 있는 2층 목조건물이었다. 극장공사가 시작되어
                         건물 천장을 해체하는데 위에 한 층이 더 있는 것 아닌가? 유리창에 ‘직업소개소’란
                         글이 있는 걸 보니 불법 직업소개나 인신매매하는 곳이 아닌지 의심되어 찝찝했다. 하지만
                         공사가 완성되고 보니 6.5m의 천장 높이에 단원용 숙소가 있는 멋진 극장이 되었다.



                         당시 돈 안 되는 연극 활동에 반대가 심했던 부모들을 피해 극장 골방에서 숙식하는
                         단원들이 몇 있었다. 그들에게 용돈을 주면 금방 다 써버리기 때문에(술) 나는 식권을
                         구입해 굶지 말라고 나눠주었다. 그런데 며칠만 지나면 또 굶고 있는 단원이 있어 채근을
                         하니 식권을 바꿔 막걸리를 마셨다는 것이다. 창단 공연은 내가 1979년(29살 나이)에
                         시민회관에서 ‘대박’을 쳤던 <고도를 기다리며>로 결정되었다. 연습 한 달쯤 되었을 때
                         MBC TV에서 연락이 와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촬영해서 방송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30분 분량으로. 의상에다 분장을 하고 소품을 들고 극장에서 MBC까지
                         (MBC는 중앙동에 있어 그리 멀지 않았다) 도보로 갔다.
                         중앙동에 웬 거지떼냐 사람들이 쳐다보았지만, 연극 신인인 우리가 TV에 나온다니
                         신이 났다. 촬영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갑자기 저 높은 곳에서 우레같은 고함 소리가 들리더니 “스톱,스톱 촬영중지”

                         시뻘개진 얼굴로 식식거리며 제작부장이 들이닥쳤다.
                         저 높은 곳, 밀실에서 모니터하고 있던 제작부장의 뇌리에 꽂힌 건, 한 인간(럭키)의
                         목에 밧줄을 칭칭 감고 채찍을 휘두르는 ‘포죠’의 장면이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독재 정권을
                         풍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였다. “도대체 이건 무얼 상징하는 거야? 불온한 의도가
                         있는 것 아니야?” ‘고고’와 ‘디디’가 제작부장에게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부장님”하고 싹싹 빌었다. 재수가 없었던지

                         그 공연은 ‘고고’가 다리에 화상을 입어 결국 취소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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