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2024 공감그리고 봄 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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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음을 다잡아 창단 공연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F.아라발의 <건축사와 앗씨리 황제>가
           선택되었다.
           배우 2명이 각각 10역 이상씩 변신하는 실험극이었다. ‘앗씨리 황제’로 상징되는

           문명인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아프리카 원시림에 추락하여 야성적인 자연인인 ‘건축사’와
           만나 일어나는 연극이었다. 무대는 건축사가 사는 움막 하나, 왕좌로 쓸 나무로 얼기설기
           짜맞춘 의자 하나였다. 폐목과 폐비닐, 그물 등을 길에서 주워다 세트로 꾸몄다.
           문제는 건축사가 앗씨리 황제를 잡아 먹었다는 설정의 해골이었다.
           해골을 구할 수 없어 개뼈다귀를 구해다 석고 붕대를 바르고 칠을 하여 그럴듯하게 조명을
           비추어 처리하였다.

           이 야만적인 행위는 그 뒤에 두고두고 단원들의 가십거리가 되었다. 유럽 문명의 절망과
           우울이란 거대 담론의 이야기를 쓰레기와 개뼈다귀로 해결한 기가 막힌 공연이었다.
           이 이상한 공연에 관객들이 희한하게도 솔솔찮게 입장하였다. 그 원인은 극장 간판에 있었다.
           아버지 밑에서 극장 간판 일을 거들었던 단원이 페인트로 칠한 연극 홍보용 간판을 극장
           외벽에 붙인 것이다. 여기에 영화관이 있었나? 하고 호기심이 인 관객들이

           연극? 연극이 뭐꼬? 하면서 몰려들었던 것이다. 관객의 반응도 괜찮고 관객 수입도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문제가 발생하였다. 기획을 맡았던 단원이 도서관에서 가방 안에 돈을 넣어
           두었는데 가방까지 몽땅 분실했다는 것이다.


           빚을 내어 마임 공연 등 몇 번의 작은 공연이 이어지다 단원들이 늘어나자
           좀 더 큰 작품을 공연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선택한 작품이 <에쿠우스>였다.
           석달을 열심히 준비하여 막을 올렸는데 관객이 터져 나가 ‘대박’이었다. 한 달을 공연하고 난 뒤

           또 한 달을 더 앵콜공연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었다. 부산 지하철 공사로 인하여
           중앙동 대로변 일부 건물들을 철거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공연소식과 폐관 소식이 알려지자 KBS에서 아침 9시, 저녁 7시 뉴스에
           일주일 이상 계속해서 안타깝다는 멘트를 덧붙여 방송을 내보냈다.
           화면에는 회전 무대를 쌩쌩 돌리는 건장한 말들과 말의 등에 올라 탄 알런이 강렬한 조명과

           함께 절규하는 장면이 곁들여졌다.
           극장 개관 땐 취급 않던 ‘문화뉴스’가 폐관소식을 동네방네에 울려 퍼뜨린 것이다.


           이후 나는 가마골소극장(1986), 연당소극장(1995)을 거쳐 2005년부터 액터스소극장에서
           작업하고 있다. 이후 1984(실천무대), 1986(열린무대, 자갈치) 등과 함께 성격과 방향이
           분명한 소극장시대가 열렸고 그때가 부산연극의 부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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