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2024 공감그리고 여름 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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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감이라는 이름으로
회사 생활을 한 단어로 표현해보라고 나에게 질문한다면 주저 없이 ‘사명감’이라고 답할 것이다.
재난관리를 주 업무로 하는 조직에서는 ‘퇴톡금지’(퇴근 후 카톡 금지)’라는 단어는 금기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을 제1의 가치로 여기는 우리 조직은 지금과 같은
장마철에는 초비상상태를 유지한다. 24시간 깨어있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지금도 내 휴대폰은 끊임없는 카톡 단톡방 알림으로 존재가치를 뽐내고 있다.
나는 이 조직의 일원이 된 후부터 내 모든 영혼을 회사에 갈아 넣었다. 생체리듬, 생활패턴,
심지어 취미까지 모든 생활의 중심을 회사에 맞추었다. 결혼 후에는 육아와 회사생활을
병행하기 위한 나만의 시간관리 노하우(?)를 개발했다. 아이와 함께 9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회사에 다시 출근하는 말도 안되는 생활을 수년간 이어 나갔다.
단지 사명감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친 사명감은 우월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 도덕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그의 책
『바른 마음』을 통해 개인이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타인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도덕적 우월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나의 사명감도 극단적으로 발전하여
도덕적 우월주의로 변질되었다. 나의 워크에식과 업무 방식만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며,
진정한 삶의 가치는 사명감과 희생정신에 있다고 여겼다. 이는 불건전한 집단주의와
자기중심적 이기주의로 발전했다. 나와 동일한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는 동료들에게
불만을 느끼며 때로는 그들을 힐난했다. 삐뚤어진 권력욕과 성취욕에 나의 자아는 상처받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위축되었다.
독서라는 이름의 치유법
나를 돌아보기 시작한 것은 ‘할세권’으로 이사가고 난 후 부터이다. 아내가 복직하면서
장모님께 아이들의 어린이집 등하원을 부탁하기 위해 처가 근처로 이사할 수 밖에
없었는데,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에 최소 한시간이 걸리는 거리었다. 지하철 이용의 장점은
불가항력적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빨리 출근하고 싶어도 지하철의 속도는 정해져 있다.
출퇴근 시간은 내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급함을 느껴봐야 스트레스만 받는다.
강박적 불안을 버리니 마음의 평온이 찾아왔다.
강제적으로 얻게 된 출퇴근길 2시간을 의미 있게 쓰기로 했다. 휴대폰에 내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집어 들었다. 그전부터 책 욕심은 많아서 누가 좋다고 하는
책들은 책장에 충분히 쌓아 두었기 때문에 책을 고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취미가 ‘책 수집’에서 독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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