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5 - 2024 공감그리고 겨울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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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부류의 직장인이 있다. 회사의 비밀을 아는 직장인과 모르는 직장인. 나는 그 비
                         밀을 아는 직장인이다.


                         처음 그 존재와 마주친 건 며칠 전이었다. 야근 중 잠깐 눈을 붙였다가 어렴풋이 인기척에 눈
                         을 떴을 때 그는 조용히 나에게 다가와 옷을 덮어주려 하고 있었다. 손에 들려 있던 옷은 고

                         운 광택이 흐르는 새빨간 비단에 정교한 용 문양이 금실로 수놓아져 있는... 틀림없는 곤룡포
                         였다.
                         흐트러짐 없는 눈빛, 고요한 표정, 하지만 그 속에 깊이 서린 강렬한 기운. 평온하면서도 위엄
                         있는 모습. 나는 첫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세종...대왕...?”
                         “내가 단잠을 깨워버렸구나. 집현전에서 책을 읽다 잠든 신숙주가 떠올라 옷만 덮어주려 했네.”
                         “대왕님이... 어떻게 여기...?”


                         대왕님은 창밖을 가리켰다. 나는 그 손끝을 따라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 동상! 세종대왕 동상이 보이지 않았다! 원래 회사 건물 앞에 늘 있던 그 동상이.
                         우리 회사는 폐교를 리모델링한 곳이다. 옛 학교의 모습을 그대로 살린 건물 앞, 운동장이었
                         던 자리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항상 있었는데, 그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세종대왕이 전해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어렸을 때 학교마다 그런 괴담 있지 않은가. 매일 밤 운동장의 세종대왕 동상에 있는 책이 한
                         페이지씩 넘어가는데 페이지가 다 넘어가는 날 학교 건물이 무너진다든가 하는 그런 괴담
                         들. 그런데 괴담인줄만 알았던 이 이야기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했다.

                         페이지는 1월 1일 밤에 넘어가는데 모든 페이지가 넘어가면 동상이 있는 장소 중 한 곳을 선
                         택해 세종대왕의 영혼이 찾아갈 수 있고 영혼이 깃든 동상은 그날부터 매일 밤 움직일 수 있
                         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세종대왕이 선택한 장소가 바로 내가 다니는 회사 부산문화재단
                         이었다.


                         “왜 이곳으로 오셨어요? 동상은 광화문에도 있고 다른 좋은 곳들이 더 많을 텐데요.”


                         세종대왕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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