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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봄,
그리하여 싹들

신용철

겨울

그렇게 겨울이 왔다. 긴 겨울이 될지 몰랐다. 지리멸렬했다. 겨울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갈가리 찢어진 사람들은 눈을 홉뜨고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대기는 불온했다. 떠난 마음들이 집 잃은 개들 마냥 추레한 몰골로 거리를 떠돌았다. 통과의례를 하듯이 날마다 반찬을 했다. 머리가 어지럽고 마음이 출렁이면 입을 다물고 반찬 궁리를 했다. 어지러운 생각은 또 생각을 불렀다. 출렁이는 마음은 또 마음을 불렀다. 냉동실을 냉장실을 가만히 들여다 들었다. 차분하게 몸을 씻고, 음악을 나직하게 틀었다. 맨발에 헐렁한 잠옷을 입으면 몸이 자유로웠다. 오늘도 술 생각은 나지 않았다. 홀로 반찬을 만들어 먹으면 술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제 술도 지리멸렬했다. 지리멸렬한 저녁이었다.
날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소리에서 미역국 끓는 소리를 들었다. 미역국을 끓이고 있으면 마음도 보골보골 차분하게 끓었다. 바닷속에서 일렁이던 소리가 마른 미역에 담겨 있다가 국물을 만나 서서히 배어나와 조용히 보골거리면 몸에 잠자던 옛 마음 옛 이야기가 새록새록 새어나왔다. 보골보골이랑 새록새록이 만나는 사이에 몸이 끼어 있었다. 미역국으로 몸이 노골노골해지면 미역국이랑 몸은 어느새 서로 온데간데없어졌다.

서사가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서정이 더 출렁일 때가 있다. 걷는 수밖에. 길 위에 출렁이는 서정을 풀어 다시 서사로 돌아올 때까지 걷는 수밖에. 다시 눈발이다. 봄이 올 때까지 걷는 수밖에.
밤마다 꿈속에서 새 눈길을 만났다. 지쳐서 일찍 잠들면 똑 새벽에 깼다. 늙은 시궁쥐처럼 뽀시락 뽀시락 책도 뜯어 먹고 도시락도 싸고 빨래도 개다가 다시 잠들었다. 실존은 중세의 숲에서 피어났다. 광복 80년을 맞은 해인데, 우리는 아직 중세를 헤매고 있다. 우리의 과거라고 알고 있었던 것들이 현재에 다시 나타나 부르짖는 비동시성의 동시성 시대. 망령으로 떠돌던 존재가 나타나 제 존재를 과시하는 망령의 광장. 어떤 실존이 다른 실존을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두 실존은 서로 등을 맞대고 있고, 과거와 현재의 실존은 여전히 이어져 있는 것이었다. 우리 안엔 여러 실존의 목소리가 늘 함께 출렁 일렁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악이며 선이며 그 사이에 사는 도깨비며 귀신이다.
무너진 말들 사이를 떠돌며 새 말들을 궁리했다. 예술을 꿈속에서 만났다. 중세 교실에서 현대 아이들이 예술을 배우는 수업시간이다. 사방이 칠판이고, 배 모양으로 생긴 탁자 여기저기에 아이들이 꽃처럼 피었다. 아르케(Arche)를 들먹이며 테크네(Techne)로 넘어가면서 곰브리치 쌈 싸 먹는 예술사를 시작하려고 했다. 교실 언저리에 걸터앉아 있던 사자머리 철학자가 갑자기 내 앞으로 뛰어들어 분필로 칠판을 황칠하고 노래 부르며 서까래 위로 올라가 가늠하기 힘든 노래를 부르며 수업을 했다. 아이들이 재밌어했다. 나도 서서히 물들어갔다. 미학이든 예술사학이든 놀고 자빠지며 타고 넘는 것이었다.

싹들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으려고 한다. 긴 겨울이었다. 겨울 꼬리가 갈 듯 말 듯 주춤거려 봄마저 흐릿했다. 봄물할미 아랫도리에 지난겨울 자국이 자욱하다. 민들레 홀씨 활개를 펴고 날아오를 채비하고 있다. 나도 겨드랑이 돋는 날개를 펴고 따라가련다. 다시 골짜기를 훑으며 언덕 너머를 바라보며 네 틈으로 날아가련다.
락밴드 Eels의 ‘You Rock My W어서이다. 틈이 있어 서로 흔들리는 것이다. 서로 틈을 들여다 들어 불러일으키는 것이다.틈 사이 내린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 피우는 동안 우주가 가만히 숨 쉬는 소리를 들어볼까. 슬프고 아름답지 않아?

그리하여 우리는 비로소 문득 새로운 싹을 뿌릴 것이다. 싹들이 뿌려진 땅을 뒹굴어 싹들을 기어이 불러일으킬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어떤 싹들이며 모든 싹들이다.

신용철

시골큐레이터. 15년 동안 민주공원 학예실장으로 있었다. 올해 5월 거리로 돌아왔다. 큐레이터는 사라짐으로 살아가는 목숨이다. 아나키 히피 집시 예술가들이랑 사이좋게 지구의 회전축이 기우는 소리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