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나고 자란 탓에 자이언츠의 팬이 되었다는 한 사내가 있다.
30년 넘게 우승하지 못한 팀을 응원하는 한 많은 생이지만,
그는 여전히 야구를 사랑한다.
야구만큼이나 사랑하는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끊임없이 고향을 담아내고 있는 소설가 배길남. 근작 『마마마, 부산』을 통해 도시 부산의 구석구석을 담아냈다는데…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를 좇아가보자.
한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할 때, 우리는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을 텐데요. 부산이라는 도시에 관하여 가장 다채로운 시선으로, 누구보다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는 이가 바로 배길남 작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워낙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지만,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배길남
안녕하세요. 소설가 배길남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부산에 대해 많이 안다 말하기엔 쑥스러운데요. 저는 장편소설 『두모포왜관 수사록』이라는 작품을 12년 동안 집필했습니다. 부산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소설이기에 부산의 여러 곳을 취재하면서 자연히 주워들은 것이 조금 있습니다. 그렇게 모은 자료들과 제가 태어나 자라고 활동하고 있는 도시에 대한 생각들을 담아 로컬 에세이집 『하하하, 부산』에 실었고, 근작 『마마마, 부산』에도 담았습니다. 제가 작가로 데뷔한 것은 「사라지는 것들」이라는 단편소설로 2011년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면서였는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부산에서 글을 쓰고 있는 소설가입니다.
작가님께서 들려주신 소개말 속에서도 활동의 방점에 ‘부산’이 찍혀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에 관해 제가 설명을 조금 덧붙이겠습니다. 배길남 작가는 소설집 『자살관리사』, 『짬뽕 끓이다 갈분 넣으면 사천짜장』, 장편소설 『두모포왜관 수사록』, 로컬에세이집 『하하하 부산』, 『마마마, 부산』을 집필하셨습니다. 펴내신 책마다 책날개에 실은 작가 소개말이 인상적입니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살았다. 덕분에 자이언츠 팬으로서 한 많은 인생을 살고 있다.’ 이 첫 문구에서 이미 “나는 뼛속 깊이 부산 사람이오!” 하는 선언이 느껴집니다. 고향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당신의 고향을 끊임없이 무대화하고 질료화하는 전업작가로서의 도시 부산은 좀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배길남
제가 태어나고 살고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부산은 제 삶에서 가장 특별한 공간입니다. 30년 넘게 우승 못한 자이언츠의 피가 당연히 흐르고 있구요. 그렇기 때문에 한이 쌓여있지요. 하지만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부산이라는 소재에만 갇혀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 상상은 부산이라는 공간과 현재라는 시간을 훨씬 뛰어넘으니까요. 그래서 우주를 무대로 하는 SF부터 무협, 바다 속 침몰선, 18세기 런던을 배경으로 하는 추리물, 가상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활극의 장르물까지, 소설의 배경은 너무나 다양합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제 소설의 원류는 부산이죠. 저는 글쓰기 강의를 할 때에도 자신이 잘 아는 것을 쓰는 것이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이라고 얘기하거든요? 최소 서너 작품 중 하나는 부산을 배경으로 하거나, 등장인물이 부산 사투리를 쓴다거나, 역사적 소재를 쓰려고 합니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좋아하기도 하구요.
작가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부산이라는 도시 자체가 작가님에게 단순히 배경요소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영감의 원천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포커스를 작가님 내부로 좀 옮겨볼게요. 작가님께서는 ‘국민서관 어린이 세계문학전집 60권을 최애 보물’이라고, 본인소개를 할 때 빠뜨리지 않으신데요. 또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마지막 문장,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라는 대목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시죠. 작가님에게 가장 영향을 준 작가나 작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배길남
어머니께서 사주셨던 ‘국민서관 어린이 세계문학전집 60권’은 사실 일곱 살짜리에겐 힘든 책이었어요. 삽화는 많았지만, 그게 글밥도 많고, 당대의 유명한 문인들이 직접 번역에 참여해 자신들의 문체로 바꿔서 다듬어낸 책이었거든요. 학년을 거듭할수록 점점 이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는데,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보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가 바로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마지막 문장이죠. 『몽테크리스도 백작』을 썼던 뒤마뿐 아니라 그 안에 수많은 작가들이 있죠. 『로빈슨 크루소』를 썼던 디포라든지, 『십오 소년 표류기』, 『해저2만리』 등을 썼던 베른도 있고요. 우리에게 『우주전쟁』, 『타임머신』으로 잘 알려진 허버트 조지 웰스 같은 SF작가들도 제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성장해서는 김유정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웃음 속에 눈물 참기’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의 익살, 그리고 익살 속에서 고뇌하고 있는 부분을 거리두기를 통해 그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한편, 한창 멋을 부리고 싶을 때,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이름으로 이상만 한 자가 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이상과 김유정은 가장 깊은 우정을 나눈 사이라는 걸 떠올릴 때 한 극점은 다른 극점과도 만나는 것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근작 『마마마, 부산』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볼게요. 책을 펼쳐 목차를 보면요, ‘마, 거가 거가?’, ‘마! 고마 치아라’, ‘마… 함 댕기보입시더’, ‘부산에 가면’ 이렇게 구성이 되어 있거든요. 부산사람이라면 낄낄거리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아직 이 책을 접하시지 못한 분들을 위해 『마마마, 부산』이란 어떤 책이다, 하고 소개 부탁드립니다.
배길남
부산은 산복도로로 시작하지만, 산복도로 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바다가 보이는 망양로만 떠올리게 되거든요? 남구에서 진구를 잇는 진남로라든지, 구포에도 산복도로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부산은 모든 지역이 산복도로로 이루어진 도시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세세하게 알지 못하면 한 부분만 떠올리게 되죠. 이처럼 『마마마, 부산』은 익숙한 부산을 다양한 시선으로 보면 어떨까 하고 써내려간 책입니다. 이전에 내놓은 『하하하 부산』의 시리즈를 잇는 기획이죠.
제목의 ‘마’는 부산사람들의 입에 떼려야 뗄 수 없는 말입니다. 먼저, 사직야구장에서 울려 퍼지는 응원 ‘마’가 있습니다. 상대 투수의 견제구에 윽박지르듯 함성으로 돌려주는 그런 ‘마’가 있고요. 故 최동원 선수가 1984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 등판할 때, “마 한번 해보입시다” 했던 웅숭깊은 그 결심의 ‘마’도 있습니다. 그 같은 부산사람들의 마음, 그 결을 한 단어에 응축시켜서 제목을 지었습니다.
책을 펼쳐보면요, 부산의 여러 공간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부산진시장부터 증산공원, 남포동, 부산대학교, 소막마을, 안창마을 등이 있는데요. 책 속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장소 한 곳을 꼽자면 어디일까요? 그리고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배길남
책에 있는 어느 장소 하나 마음에 안 들어오는 곳이 없죠. 그중 부산진시장이 제일 먼저 나오는데요. 그 이유는 부산이 크게 두 군데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행정의 중심이었던 동래,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부산이라는 신도시가 다시 탄생할 때 주축이었던 부산포지역, 그리고 그 지역을 중간으로 나누는 부분이 서면에서 부산진시장 그 부근이거든요. 그래서 부산진시장을 중심으로 부산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또 한 군데 소개해드리고 싶은 곳이 있는데, 우암동 소막마을이라는 곳입니다. 말 그대로 부산에서 일본으로 소를 반출하기 위해서 소를 갖다 모아놓곤 했던 곳입니다. 거기에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돌아온 동포들이 살았고, 그 다음엔 전쟁이 나면서 수많은 피난민들이 자리했던 곳이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고향이랄 수 있겠습니다. 그런 애환이 있는 곳인데 지금은 재개발로 거의 사라지고 있죠. 그밖에 여러 좋은 곳, 나쁜 곳이 있겠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과 과거를 기억하는 어르신들의 삶,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의 부산을 그리고자 여러 곳의 이야기를 풀어놓았으니 『마마마, 부산』 찾아보시고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남포동 고갈비 골목 전경, 한때 수많은 이가 찾은 골목이지만 이제 노포는 한 군데만 남아있다.
소막마을 입구
『마마마, 부산』은 2024년 부산문화재단에서 시행하는 부산문화예술지원사업 <올해의 포커스온-문학> 분야에도 선정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이었고, 작가님께서는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배길남
한 작가의 책이라든지, 작품 세계를 가지고 많은 독자와 만나고, 그걸 어떻게 좀 더 독자들하고 깊이 만날 수 있게 할 것인가, 그걸 고민하는 사업이 ‘포커스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마마마, 부산』이라는 책이 단순히 우리 부산 지역이라는 로컬 하나로 머물러서는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고, 마침 이 책을 펴냈던 호밀밭 출판사와 생각의 궤를 같이 해서 장현정 대표와 함께 전국의 독립 서점을 다니면서 독자들과 만나는 전국 투어 북 콘서트를 계획했습니다.
먼저 경남과 전남을 오고 가는 구례에 가서 독자들을 만났고요. 충북 괴산과 대전에 가서 독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와 망원동을 비롯해 세 군데 독립 서점을 다녔습니다. 각 도시마다 지역마다 그 나름의 특별함을 어떻게 이야기할까 고민하는 많은 독자들을 만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출판 사업을 하시는 분들도 만났고, 로컬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더 사람들에게 알리고 자신들의 활동을 특수화할 수 있는가에 관한 많은 고민을 안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고요.
작가님께서는 작품 창작 외에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나 여러 글쓰기 프로그램, 고정출연하고 계신 라디오 프로그램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 독자와의 소통을 넓혀가는 활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 인터뷰를 접하실 분들께 책 밖에서 배길남 작가를 만나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시죠.
배길남
현재 저는 <길 위의 인문학>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유월부터 금정도서관에서 12주차의 강좌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신간 『마마마, 부산』을 기본 텍스트로 삼아 부산의 역사와 부산 지역에 대한 이야기로 독자분들을 만납니다. 고현학적 방법론으로 부산을 바라보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이런 데였어?’ 하는 일종의 재인식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현재는 <자갈치 아지매>라는 프로그램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부산을 소개하는 코너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소설가로서의 계획은 장편소설 『두모포왜관 수사록』의 개정판을 만들고 있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군상에 대해 더 세밀하게, 그리고 더 깊은 층위의 이야기, 더 재밌는 에피소드를 추가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로서 궁극적으로 닿고자 하는 바람,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배길남
제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초등학교 시절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제 속에 있는 상상을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흘러온 것 같습니다. 작가로서 궁극적으로 담고자 하는 바람은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정말 원 없이 쓰고 훗날, 이 정도면 만족한다, 하는 그런 선이 있을 텐데 그 선까지 다가가고자 하는 게 언제나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도대체 어디까지가 선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뜬구름만 좇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게 소설가의 본령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제게 다가오는 것들을 제 안으로 받아들인 다음에 다시 제 세계 안에서 재창작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이 작업을 끊임없이 계속해서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현재는 목표입니다. 그 과정에서 독자와 소통하고 만남을 갈구하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저의 목표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정재운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고, 다다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설집 『경이로운 동그라미』(강, 2024)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