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익쉬익쉬익쉬익, 쇽쇽쇽쇽쇽쇽쇽쇽, 착착착착, 치이익 치이익 탁-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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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한 점망의 잉크가 종이 위에 흐르고, 레일을 따라 인쇄물은 빠르게 이동한다. 눈 깜짝할 사이 층층이 쌓여가는 종이 귀퉁이에는 날 선 쇠가 지나가며 고르지 않던 층을 매끈하게 다듬는다. 접히고, 엮이고, 오리고, 꿰매고, 붙이고, 자르고, 누르고, 박을 입히는 과정들. 골목에는 오늘도 인쇄기의 소리가 얽히고 겹쳐 일상 위에 차오른다.
부산 중구 동광동과 중앙동. 이곳에는 두 가지 정서가 공존한다. 하나는 골목마다 늘어선 인쇄소들이 만들어내는 인쇄 산업 고유의 리듬과 소리의 지형이다. 다른 하나는 2010년부터 일상 속에 예술의 실천을 일렁이게 만든 ‘또따또가’라는 예술 생태계의 물결이다.
‘또따또가’는 발음이 다소 낯설지만, 그 의미를 알게 되면 누구나 오래 기억하게 된다. ‘또’는 관용, 배려, 문화적 다양성을 뜻하는 프랑스어 ‘똘레랑스(Tolerance)’에서 따왔고, ‘따’는 예술가와 시민이 ‘따로’ 살아가면서도 ‘또’ 함께 문화 활동을 이어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마지막 ‘가(街)’는 예술이 활동하는 지역과 거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또따또가는 다양한 개인을 존중하고 예술로 함께 연결되는 곳이다. 그렇다면, 인쇄 골목 틈새로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는 어떻게 둥지를 틀게 되었을까?
1990년대 동광동과 중앙동은 점심시간이면 직장인들로 북적이며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시청, 방송국, 은행, 관공서 등 주요 기관들이 타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상권이 쇠퇴하고, 유휴 공간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도심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된 이곳에, 빈 사무실과 상가를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으로 바꾼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 상상은 원도심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생성과 소멸의 톱니바퀴처럼, 원도심의 변화가 또따또가라는 예술의 씨앗을 불러들였고, 골목마다 새로운 생기를 틔우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또따또가는 인쇄소 골목의 빈 상가 건물들을 임대해 작업실이 필요한 작가들에게 스튜디오를 제공하고, 워크숍룸, 전시실, 공연장 등 다양한 공유 공간을 조성했다. 이 공유 공간은 입주 예술가들에게는 창작을 지역과 나누는 소통의 창구가 되었고, 지역 시민, 상인,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이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을 접할 수 있는 일상 속 예술 활동이 되어주었다.
15년 동안 도심형 레지던시로 운영되며 약 1,500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또따또가를 거쳐 갔다. 이들은 문화예술의 매개자로서 인쇄 골목 곳곳에 예술의 씨앗을 퍼뜨리고, 서로 얽혀 공진화하는 예술 생태계를 일구었다. 그들의 행보는 부산 지역 예술 생태계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양질의 예술 토양을 만들어간 힘이 되어주었다. 그러므로 지역과 상생하는 또따또가의 예술 활동은 현재까지도 활발히 이어질 수 있었다. 2015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지역문화브랜드 대상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또따또가는 단순히 창작 공간을 제공하는 레지던시를 넘어, 예술가들이 지역과 소통하며 일상 가까이 예술을 퍼뜨리는 공공 예술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지역과 공간, 사람들과 촘촘히 얽히며, 삶 속에 예술을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해온 것이다.
2025년, 또따또가는 6기 출범과 함께 새로운 공진화를 준비하고 있다. ‘얽힘(Entangle-ment)’이란 낱낱의 존재들이 긴밀히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변화가 다른 존재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의미한다. 또따또가는 인쇄 골목의 역사적 흐름과 도심 속에 남겨진 흔적들을 예술의 창의적 표현으로 되살리고, 복병산과 용두산이라는 생태 공간이 뒤에 자리하고, 북항이라는 항구를 앞에 둔 특별한 장소성 속에서 미래를 꿈꾼다. 이곳에는 또따또가를 운영하는 센터,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치는 예술가들, 원도심 문화를 지켜온 시민들이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 각자 다른 꿈을 품고 살아가지만, 또따또가라는 토대 위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방향을 다듬어 나가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얽히며 공진화를 도모하고 있다. 끊이지 않는 창의성과 관용의 힘으로 15년 동안 일궈 온 또따또가의 예술 생태계는 수많은 예술인과 운영지원센터의 의지 덕분이다.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 선 또따또가 6기는 지역과 함께 다시 직조하고, 더욱 깊게 얽혀나갈 것이다.
이번 또따또가 6기에는 18명의 개인 예술가와 7개의 예술단체 총 25팀이 입주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만큼, 입주 예술가들의 면면은 다채롭다. 시각예술 부문에서는 회화, 설치, 미디어아트, 다원예술 등이, 비시각예술 부문에서는 음악, 영화, 무용, 연극, 리서치 및 기획, 소설, 영화평론까지 다양한 장르가 포진해 있다.
입주 작가 중에는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전시(2023)>에 참여하고 하정웅청년작가상을 수상한 현대미술 작가 김덕희, 2025년 하와이트리엔날레에도 참여 중이며 ‘사회적 발효’라는 개념을 확장해 퍼포먼스와 글쓰기, 구술사를 아우르는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즈 클럽, 영화문화예술 커뮤니티 운동을 실천해 온 파도씨네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신진 청년 작가와 경력 예술가가 고르게 선정되어, 세대 간의 네트워크와 상호작용을 적극 도모하고 있다. 또따또가를 거쳐 자립한 60여 팀의 예술가들도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활발히 활동 중이다.
6기 운영지원센터는 입주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보다 깊이 있게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예술가 간 협업 연구를 장려하고, 전시·워크숍·강연을 위한 라운지 공유 공간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또한, 1~5기 자립예술가들과의 긴밀한 네트워킹을 통해 예술적 교류를 활성화하고, 전문 멘토링과 컨설팅을 통한 역량 강화 프로그램도 추진한다. 상반기에는 지역성과 연계한 창작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역연계형 역량강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개인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팀 단위 협업 프로젝트도 지원한다.
<또따또가 워크 앤 워크(Totatoga Walk and Work)> 프로그램을 통해 원도심을 직접 걸으며 ‘자연환경, 기술, 지역사’를 주제로 전문가와 함께 리서치하며 예술가의 창작이 지역과 밀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창작력을 강화하도록 지원한다.
새롭게 조성된 라운지 ‘스페이스 돛’에서는 <릴레이 쇼케이스 슬라이딩> 이 펼쳐진다. 여기서는 입주 예술가의 작품과 창작 과정이 유연하게 관객을 마주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스튜디오에서 흘러나온 예술이 일상 속으로 미끄러지듯 스며들어 주민과 만난다. 5월 8일까지는 김근예 작가의 ‘일렁임의 찰나’가 첫 번째 슬라이딩으로 진행 중이다. 서로 다른 성질의 주체들이 조우하는 순간을 회화로 탐구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9월에는 또따또가 전체를 개방하는 오픈스튜디오와 축제가 예정되어 있어 더욱 활발한 교류가 기대된다.
또따또가는 그동안 동광동과 중앙동 골목 곳곳에 예술의 씨앗을 심고, 예술적 상상력을 피우며 지역과 함께 자라왔다. 예술은 쉽게 눈에 보이거나 경제적 효과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삶 깊숙이 스며들어 지역을 풍요롭게 만든다. 얽힘의 예술, 하나의 움직임이 다른 존재에 진동을 전하는 영향력 속에서, 우리는 지역과 공진화를 이루며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지속적으로 허물어 갈 것이다. 그동안의 발자취를 소중히 새기고, 다음 세대를 위해 단단한 토대를 쌓아 원도심에 예술의 물결이 계속 흐를 수 있도록 더욱 친밀하고 다정한 또따또가가 되길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