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우동준
부산문화재단은 의료 현장에서 예술의 치유 잠재력을 탐색하기 위해 ‘2024 예술로 풀어가는 마음치유-<마음을 담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의 비전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Hospital Art’ 개념을 부산 지역 의료 환경에 적용하는 것, 다른 하나는 지역예술인이 의료 현장에 진출하고, 예술을 통해 시민의 심리적, 관계적, 사회적 문제를 완화하는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부산문화재단은 다움병원, 좋은부산요양병원과 협력하고, 김옥련, 방도용, 서혜인, 김화진 작가와 함께 예술의 본질적 변화를 모색했다. 이들은 무용, 음악, 창작공예, 표현치료 등 다양한 예술장르를 활용하여 환자의 사회적 연결과 자존감 회복을 강화했고, 예술가와 참여자가 함께하는 자발적 활동을 설계했다.
프로젝트는 병원별 환자 특성에 맞춰 차별화된 접근법을 선택했다. 예술인들은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암 환자에게는 신체와 감정 표현의 연결성을, 정신질환자에게는 상호연결과 자존감 회복을 우선했다. 우선 암 환자의 특성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몸에 대한 태도였다. 대부분의 환자가 질병으로 인해 자신의 몸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갖고 있었고, 이는 신체 활동에 대한 두려움과 저항으로 이어졌다. 예술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통증’이라는 수동적 경험을 ‘감각’이라는 능동적 경험으로 전환하는 접근법을 취했다.
세 명의 예술가는 각자의 전문 분야를 환자의 상황에 맞춰 재해석했다. 김옥련 발레리나는 자신의 암 투병 경험을 바탕으로 몸의 움직임과 자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안했고, 마임이스트 방도용은 일상적 움직임에 숨은 회복적 의미를, 표현예술가 서혜인은 다양한 음악과 도구를 활용하여 자아의 의미를 깊이 있게 탐색했다. 이들은 신체와의 회복, 기억과의 회복, 병원 내 관계 회복에 초점을 맞추었다.
김화진 대표 역시 다움병원의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자연을 통한 자존감 회복을 진행했다. 다움병원 이용자들은 특히 자기표현과 감정노출에 저항감을 보였고, 새로운 경험과 자극에 어려움을 느꼈다. 김 대표는 환자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꽃, 풀, 나무 등의 자연물을 제공하고 직접 감각을 일깨울 수 있도록 안내했다. 특히 나보다 연약한 식물을 지키는 활동은 서툴렀던 내면의 돌봄 감각을 섬세하게 키워주었다. 김 대표가 설계한 공감각적 경험은 정신질환 환자에게 일상의 감각을 회복하고, 자연과 연결되며,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안전한 시공간을 제공했다.
<마음을 담다> 프로젝트는 획일화된 정답과 표준화된 예술행위를 강요하지 않았다. 모든 참여자는 자신만의 고유한 색을 찾고 정의하는 과정이 허용되고 존중받았으며, 개별적 해석과 표현의 자유가 프로그램의 본질적 가치를 형성했다. 다양한 꽃잎의 혼합이 새로운 향을 만들어내듯, 누구의 의견도 배제하지 않는 예술 환경이 포용적인 치유로 확장되었다.
치료가 의료진이 주도하는 수동적 과정이라면, 치유는 환자 스스로 주체가 되는 능동적 과정이다. 환자의 의지가 없어도 치료는 가능하지만, 환자의 의지가 없다면 치유는 불가하다. 그렇기에 예술의 목적은 분명하다. 아무리 신체가 회복되어도 문화예술을 통해 타인과의 호혜적 연결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치유와 회복은 무용하기 때문이다.
부산문화재단의 <마음을 담다> 프로젝트는 지역 의료 환경 내 예술의 역할과 쓸모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환자가 사회적 역할과 정체성의 상실을 고백할 때, 자신의 감각을 능동적으로 재해석하는 예술 활동은 환자의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형성하는 치유 경험을 제시했다.
부산은 전국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도시 중 하나로, 1인 가구 증가와 고독사 위험, 돌봄 공백 등의 사회문제에 직면해 있다. 무엇보다 현대 시민의 사회적 고립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져 의학적 진단만으로는 분명한 대상자 발굴과 대안 모색이 요원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음을 담다> 프로젝트가 보여준 예술치유의 가능성은 부산시 문화정책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치료적 행위가 포착하지 못하는 사회적 공백을 발견하고, 사회적 돌봄 영역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
부산이 진정한 ‘문화예술의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화려한 문화 행사나 대형 축제의 패러다임을 넘어서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시민 중심 문화정책’을 위해서는 시민의 삶과 내밀하게 연결되는 문화예술의 치유적 가치를 정책적으로 인식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의료기관과 문화예술 기관 간의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다움병원, 좋은부산요양병원과 협력했던 <마음을 담다> 프로젝트처럼 도시 전체에 치유예술의 생태계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구·군별 요양시설과 연계하는 지역 기반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노년 대상 접근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문화와 의료는 별개의 정책 영역으로 다루어지고 있으나, <마음을 담다> 프로젝트가 보여준 바와 같이 두 영역의 통합적 접근은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문화복지와 의료복지를 연계하는 통합적 체계가 구축된다면 초고령화 도시 부산의 전인적 웰빙을 지원하는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마음을 담다> 프로젝트 역시 참여자 수의 제한, 단기적 프로그램 운영, 치유 효과의 지속성 등의 과제가 남아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예술치유의 가능성은 부산시 문화정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이제 우리는 문화예술에 대한 편협한 상상을 넘어 한 개인과 집단의 전인적 치유 가능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마음을 담다> 프로젝트가 진행한 작은 실험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더 많은 시민이 예술을 통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동준
도시와 사람을 관찰하고, 격차와 갈등을 연구한다.
서로를 향한 격려가 사회를 바꾼다고 믿고 있으며, 매년 절판 위험을 마주하지만 꾸준히 책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