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8일, 조선통신사선이 부산을 떠나 쓰시마, 이키, 쿠레, 도모노우라를 거쳐 5월 11일 오사카에 입항했다. 이번 항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과 2025 오사카·간사이 세계박람회 ‘한국의 날’을 기념해 추진되었으며, 261년 전 마지막으로 일본에 도착했던 조선통신사선의 역사적 항로를 재현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과연 수백 년의 세월을 넘어 이 여정을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떤 모습일까?
조선통신사선 항해단을 만나 이번 항해의 의미와 그 속에 담긴 감동을 들어보았다.
ⓒ 하영문
“나는 통통이(조선통신사선의 애칭) 언니다”
- 김효정 부산문화재단 글로벌문화팀 과장
많은 분들이 조선통신사선에 대해 가장 궁금해하시는 몇 가지를 먼저 설명드릴게요.
통신사선은 길이 34m, 무게 149톤의 목조선으로, 평균 8노트(시속 약 16km) 속도로 항해합니다. “그렇게 큰 배면 안 흔들리죠?”라고들 물으시는데요, 사실 나무로 만든 배는 바람에 매우 민감합니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꽤 출렁이기도 해요. 하지만 맑은 날, 잔잔한 바다를 가르며 항해할 땐 이 사업에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짜릿한 감동을 느낍니다.
2023년에는 일본 쓰시마에 첫 입항했고, 2024년엔 조선통신사의 일본 본토 첫 기항지인 시모노세키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통신사선의 해로를 완전히 복원하는 의미로 오사카까지의 긴 여정을 떠났습니다.
선내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갑니다. 하루 평균 6시간 이상 항해를 하며, 해수 뿌리기부터 나무 선체 관리, 조리, 청소, 손님 응대까지 모두가 쉼 없이 움직입니다. 목조선이다 보니 손이 많이 가는 건 물론이고, 체력 소모도 상당해요.
그런 와중에도 항해단은 늘 같은 말을 합니다.
“우리는 선조들의 명을 받은 것 같다.”
저에겐 항해를 마칠 때마다 꼭 하는 작은 의식이 있어요.
배를 한 바퀴 돌며 쓰다듬고, 선내 기둥을 꼭 안아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제일 고생했다.”
이 말을 할 때면 울컥하기도 해요.
결국 이 배가, 이 여정이,
많은 사람들의 손과 마음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단순한 항해가 아니었습니다. 260년의 시간을 실은 긴 여정이었죠.”
- 홍순재 국립해양유산연구소 해양유물연구과 학예연구사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번 항해 전체가 저에겐 정말 깊은 인상을 남겼어요. 그런데 그 감상이 꼭 낭만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정말 많이 고생했다는 거예요. (웃음)
사실 이 프로젝트는 제가 참여하기까지 준비 기간만 10년이 걸렸습니다. 말이 10년이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도 끝에 겨우 이 뱃길이 열렸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출항을 앞뒀을 때는 설렘보다는 ‘내가 이 260년의 무게를 짊어지는 건가’ 하는 부담이 더 컸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출발했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예요. 걱정도 컸고요.
하지만 항해가 진행되면서,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 같은 것들이 하나하나 풀려 나가는 느낌이었어요. 기항지를 돌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조선통신사선을 소개하고, 공연을 선보이면서... ‘아, 이게 진짜 조선통신사가 했던 일이겠구나’ 싶은 순간들이 찾아왔습니다. 마음이 가벼워졌고, 점점 기쁨도 커졌죠.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조선시대 통신사들도 수많은 사건 사고를 겪었다는 기록이 있잖아요. 이번 항해도 마찬가지였어요. 시모노세키에서 카미노세키로 출항하던 날엔 바람이 너무 세게 불고, 파도는 3미터가 넘었습니다. 원래 같으면 항해 자체가 불가였을 텐데, 희한하게도 배 뒤쪽에서 바람이 밀어주는 거예요. 마치 “어서 가라”는 것처럼요. 전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이 배는 정말 아름답고, 품격이 있는 배입니다.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 조선기술과 정신을 담고 있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니까요.
현지에서 배를 처음 마주한 시민들의 표정을 저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신기함과 감동이 담긴 그 눈빛이요. 결국 이 항해는 한 명 한 명의 노력이 모여 완성된 여정이었습니다. 그 감동은 오래도록 제 안에 남아 있을 거예요.
한 척의 배가 만든 인연과 성장의 항해
- 강원춘 국립해양유산연구소 해양유물연구과 학예연구사
배를 기술적으로만 보면 조선공학은 이공계 분야이고, 숫자와 값이 정확한 학문입니다. 하지만 인문학은 다르죠. 명확히 계산된 값보다는 조율하고 맞춰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저는 통신사선 사업도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정밀하게 만들어진 배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을 맞춰가며 항해하는 여정. 그 안에서 저도 작지만 의미 있는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 무척 기쁩니다.
이 배와 본격적으로 함께한 시간이 어느덧 7년이 되어가고 있어요. 2018년 진수식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진 여정이니까요. 그동안 갈등도 있었고, 의견 충돌도 있었지만, 단 한 가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바로, 모두의 목표가 같았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 배에 ‘통통이’라는 애칭도 붙여줬고, 가끔은 장난처럼 ‘요물’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신기하게도, 뜻이 안 맞거나 마음이 불순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고, 결국 같은 마음을 오래 품은 사람들만이 끝까지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이 배가 이뤄낸 꿈같은 일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프로젝트를 또 준비하려고 해요. 항해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는데요. 저는 공감 능력이나 사람 마음을 잘 읽는 능력이 좀 떨어지는 편이에요.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통통아, 사랑해.”
현대 항해사의 전통선 도전기
- 김성원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조선통신사선 선장
전통 한선을 복원해 운항하는 일은 현대 선박과는 전혀 다른 도전이에요. 요즘 선박은 대부분 기계식 추진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통신사선은 구조적으로 그와 잘 맞지 않는 점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선체가 가볍기 때문에 바람, 파도, 조류의 영향을 훨씬 많이 받아요. 그래서 조정 방식도 완전히 다르고, 확실히 더 어렵죠.
기상이 나빠지면 배를 조정하는 일이 훨씬 더 까다로워집니다. 특히 부두에 접안할 때는 매 순간 긴장의 연속이에요. 선체의 ‘멍에’ 부위가 암벽에 닿기라도 하면 큰 손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럴 때는 감각을 최대한 곤두세우고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비행기처럼 배도 출항과 정박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기 때문에 매번 신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번 항해에서 제가 직접 키를 잡고 조정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고, 걱정도 많았습니다. 어떤 일이 생기면 내 잘못이 가장 크다는 생각이 늘 따라다녔죠.
하지만 그만큼 자부심도 큽니다. 통신사선이라는 특별한 배의 선장으로 이 여정에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제 인생에서 큰 영광이자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여정을 함께해 준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끝까지 저를 믿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