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길이 닿은 그곳에서 시선을 머무르고,
내 삶의 통증을 사유하여 예술로 이야기하는, 경험을 통한 성장.
현재를 생생하게 살아내고 있는 예술쟁이들.
타자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내면의 소리를 따라 솔직하게 예술하기를 멈추지 않는
부산 중견 청년 예술가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예술로 싹 틔우는 삶이야기를 만나봅니다.
『공감 그리고』 편집위원 옥순주
보통 예술로 성공하려면 서울로 상경해야 한다, 대학로나 홍대에 가야 된다고들 하지만, 네 분은 부산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고 계십니다. 각자 부산에서 예술가로서 생존할 수 있었던 비기(祕技)와 더불어 ‘우리는 왜 예술을 하는지’ 근본적인 이야기도 나눠볼까 하는데요. 다양한 분야에서 모이신 만큼 본인 소개와 근황을 먼저 나눴으면 합니다.
장예림
2023년에 단편 다큐멘터리를 처음 만들어서 부산독립영화제에 냈습니다. 그 후로 만들었던 작품을 확장시키며 다른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다큐멘터리 작업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영상도 만들면서 어느 한 쪽으로 일이 치우치지 않게끔 균형을 맞추며 작업하고 있어요. 현재 장편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는데, 올해 완성하는 게 목표에요.
다큐멘터리 감독 장예림
김유하
올해 또따또가 입주 작가 팀으로 입주했고, ‘시어터-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전에 하야로비무용단에서 활동했고, 그 경험 때문에 지금까지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월 22, 23일에 선보일 ‘중력의 무게’라는 작품에 무용수로 참여하게 되어 준비하고 있어요.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지만, 무대 영상 편집을 하거나 오퍼레이터, 스태프로도 일하고 있어서 과연 한 가지 장르로 제 정체성을 표현하는 게 맞는 걸까 항상 고민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시어터-아’ 단원 김유하
윤도경
작년에 낸 정규 3집 앨범 ‘쟁글쟁글’로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나갔고 현수막도 걸렸어요. 기대했던 것보다 앨범이 잘돼서 행복의 최정점에 있었는데 연초에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을 겪으며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저는 노래를 만들어서 부르는 사람이니까 이야기가 있어야 하잖아요. 계속해서 노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가 쌓이고 있어요.
가수 윤도경
김인하
연출가, 연극배우로 작업하고 있었어요. 최근에 배우로 참여했던 일본 공연은 연습과정이 다소 힘들었습니다. 힘든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답답한 경우는 오랜만이었어요.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여러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공연 때문에 일본과 대만에서 한 달 동안 있었는데, 당시에 구상했던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연극인 김인하
다큐멘터리 감독 장예림‘시어터-아’ 단원 김유하가수 윤도경연극인 김인하
다들 바쁘게 지내고 계시네요. 그럼 다음으로 우리가 예술하기를 놓지 않는 이유, 도대체 나에게 예술이 무엇이기에 다들 힘들다고 하는 예술을 놓지 않고 있는지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하필이면 ‘그’ 장르가 나에게 온 거잖아요. 도경 님은 자신의 삶을 노래로 기록하시나요?
윤도경
네. 기본적으로 제가 겪은 시간을 기록합니다. 삶을 기록하고 애정하는 만큼 제가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노래를 만드는 과정은 너무 지난하고 몸살을 앓는 것처럼 힘들지만, 삶에 대한 결핍을 노래로 표현하는 거죠. 또 하나는 노래라는 조그마한 재주로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때 정말 기쁘고 그런 순간이 원동력이 돼요.
김인하
예전에는 그냥 재밌어서였는데 어느 순간 스스로 굴레를 만든 것 같아요. 20대 초반에 연극인이 되겠다고 말해버려서 그걸 지키기 위해 제 삶을 갈아 넣고 있는 거랄까요. 제가 얘기한 걸 지키지 않으면 못 견디거든요.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후회될 때도 있지만 나쁘지 않아요. 여전히 연극이 재밌거든요. 지금은 연극 마을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또다시 스스로 만든 굴레에서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어요.
장예림
저는 여수가 고향이고 대학 때문에 부산으로 오게 됐어요.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는데 3학년 때쯤 영상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교수님께서 놓기 전에 한 번만 더 해보라며 저를 잡아주셨고 그때 배우고 느낀 게 많아요.
이후에 운이 좋게도 졸업을 앞두고 ‘탁주조합’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공동체에 합류하게 되면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어요. 영화를 만들면서 세상을 알아가는 게 즐거워졌고, 지금 제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공간인 여수와 부산에 대한 이야기를 다큐로 만들면서 새롭게 재인식되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김유하
무용을 전공했고 20대에 작업을 아주 많이 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너무 힘들어서 20대 중후반쯤 작업을 중단하게 됐고 오로지 돈만 생각하고 3년 정도 다양한 일을 했어요. 돈을 많이 벌면 좋아하는 작가를 후원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마음속 창작 욕구가 사라진 건 아니라 회의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죽었다 깨어났다 생각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려 마음먹었을 때 하야로비무용단이 제 손을 잡아줬어요. 그때 동료의식이 제겐 큰 힘이 되고 원동력이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무엇보다 예술을 한다는 게 가장 인간다운 일이라 생각해요.
맞아요. 예술을 통해서 나를 발견하고 예술 안에서 성장하기도 하니까요. 이어서 부산에서 예술을 하며 생존할 수 있었던 비기, 자신만의 무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윤도경
부산이 아무리 일자리가 없다 해도 비영리 부분에 일자리는 항상 있거든요. 저는 장애인 활동 지원 사업에 함께하고 있어요. 30대 중반까지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다가 가수 일에 더 집중하기 위해 그만두었는데, 장애인 활동 지원 사업은 하루 일하면 하루는 쉬는 식이라 두 가지 일을 병행할 수 있겠더라고요. 저는 베짱이처럼 노래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앨범을 낼 수 있었던 것도 계속 일을 했기 때문이에요. 물론, 지원을 받거나 하는 좋은 기회를 만나기도 했죠. 하지만 그것 역시 꾸준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기에 얻은 기회였어요.
김인하
비장의 무기. 참을성인 것 같아요. 힘든 순간에 이를 악물지 않아도 잘 이겨내더라고요. 다른 하나는 수용? 누군가 제 작품에 대해 욕을 하면 고맙고 칭찬하면 기분이 나빠요. 진짜로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칭찬에 갇혀 썩어 들어갈까 무섭더라고요. 일부러 비판을 들으러 찾아가기도 해요. 그런 게 쌓이고 다듬어져서 어느 순간 작품에 묻어나더라고요. 아직 빛을 발한 작품은 몇 없지만 제겐 저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로 이야기가 나왔었는데요. 서울에 있다고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거나 진리를 얻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디에서든 가능성과 기회는 충분히 있어요. 서울만 생각하고 보고 있으면 옆에 있는 것조차 보지 못하니 얻을 수 없는 거죠.
장예림
아직 비장의 무기를 발견하지 못했어요. 일을 한 기간도 그렇게 길지 않다 보니 찾아가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대신 그런 건 있어요.
이걸 시작하게 만든 처음 그 느낌만 가지고 가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걸 왜 계속하고 있지, 나중에는 어떡하지’ 이렇게 너무 깊게 들어가면 마음이 힘들어질 것 같은 거예요. 그러다 그만둘 수도 있고요. 저는 작업을 하며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이 즐거워요. 그래서 그냥 이걸 왜 시작했는지 ‘처음’만 가지고 계속하자는 마음이에요.
김유하
그냥 버티기. 이유 없음. 그냥 하고 있음. 예술이라는 게 비교가 될 수밖에 없잖아요. 누구는 무슨 상을 받았더라. 누구는, 누구는. 보다 높게 보다 멀리 누구보다도 훨씬 잘해야 살아남았어요. 저희 세대는 춤이 그랬거든요. 잣대가 너무 많았어요. 저는 일찌감치 제가 그런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요. 다만, 이 일이 저를 인간다울 수 있게 만들어요. 좋은 인간이 되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할 때의 제가 가장 인간 같아요.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후배 또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와 향후 진행될 작업 혹은 공연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김유하
시어터-아’에서 제작한 ‘중력의 무게’라는 공연을 5월에 금정문화회관 소극장에서 진행해요. 올해가 광복 80주년이라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뤄요. 8월에는 여러 단체가 협업하여 공연을 하나 제작하려고 합니다. 9월에는 무용단 공연이 있고요.
“쓸데없는 생각할 시간에 방 청소를 하면 방이라도 깨끗하지”라는 말을 좋아하는데요.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냥 하면 돼요! 혼자 있으면 생각이 더 많아질 텐데 그럴 때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도 들어보고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그랬거든요.
장예림
저는 일단 해보는 게 좋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두렵고 큰 도전일 수 있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해봤기 때문에 후회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독립영화제에 출품했던 건 ‘시월’이라는 작품이었어요. 여수 ‘여순사건’과 부산 ‘부마민주항쟁’을 다룬 작품인데 연도는 다르지만 모두 10월에 있었던 일이라 제목을 직관적으로 지었어요. 이 작품의 연장선으로 장편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어요. 국가폭력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이 늘 그 자리에 있듯 시간이 흘러도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작업하고 있습니다.
김인하
8월에 ‘스파클링 개구리’라는 제목의 가족 뮤지컬을 김해서부문화센터에서 올릴 예정입니다. 스파클링 개구리는 세계관을 넓혀 연작으로 기획하고 있고, ‘마지막 신문’을 소재로 연극 작품을 하나 구상하고 있어요.
솔직히 연극인들은 벌이도 참 시원찮고 힘들어요. 다들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많고요. 저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드리고 싶은 건, 무엇이 됐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확신을 가지고 뻔뻔하게 해나가면 행복할 거라는 거예요.
윤도경
4집 앨범을 준비하고 있고, 7월에는 부산근현대역사관과 경기도 의정부 빼뻘마을에서 공연을 하게 됐어요. 제 노래에 바다, 원도심 이야기가 스며있다 보니 그와 관련된 공연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초대해 주셨어요. 특히, 빼뻘마을에서의 공연은 소외된 마을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활동의 일환으로 참여하는 거라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저는 영도에서 자랐고 지금까지 영도에서 살고 있어요. 사람들이 떠나가는 동네에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저는 불행하지 않고, 우리 동네에서 내가 재미있는 걸 하자고 생각해요. 모두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자신이 재미있는 걸 했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세속의 잣대로 봤을 때 여기 계신 분들이 세상 무용한 것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일 수 있겠지만, 여러분에게서 예술을 빼앗아버리면 진짜 무용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가 예술을 한다는 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부터 시작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가시는 여러분의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유하, 김인하, 윤도경, 장예림
감사합니다.
옥순주
연극을 사랑하며 그 안에서 성장한 삶의 단상을 모아 『나의 페르소나 별이』라는 책을 냈다. 현재 심리극역할극전문상담사로 연극을 활용한 치유적 작업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자기서사극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