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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잇다 | 예술가 인터뷰

공존과 환대를
공부하는 시간 김수우 백년어서원 대표

정재운

ⓒ 권순일

‘백년어서원-신선시사’를 찾다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참 너그럽고 따뜻합니다. 먼저, 공간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볼게요. 선생님께서는 부산 원도심에서 ‘백년어서원’이라는 공간을 십육 년간 운영해 오셨습니다. 대단한 세월인데요. ‘백년어서원’이란 어떤 공간인가요?
김수우 백년어서원은 많은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공부하는 곳이에요. 우리 문명이 전 지구적인 위기에 봉착한 이즈음에 문학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했고, 그 연장선에서 백년어서원을 열었습니다. 저는 ‘오밀조밀한 낮은 인문학을 나눈다’라고 표현 하는데요. 같은 고민을 가진 이들의 삶과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잊고 있거나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방향을 만들어 보고 싶은 공간으로 열었습니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을 것 같은데요.
김수우 많은 분들이 백년어서원을 오갔죠. 제 기억에 가장 인상 깊은 분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놓고 종일 책만 보다 가시는 분이었어요. 그분들은 미안해했지만, 저는 고마웠어요. 제가 만나길 바랐던 이들이죠. 그게 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고요. 한 번은 어떤 중학생이 왔는데, 아버지가 백년어서원에 가서 책 제목들을 적어 오랬다는 거예요. 이러이러한 책이 있다는 걸 아는 것만 해도 교육이라는 거죠. 외국의 큰 작가나 여느 높으신 분의 방문보다 이름 모를 이들이 오래 머무르면서 들여다 봐주는 것이 제겐 고맙고 영광이었죠.
네, 인문학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인문’과 ‘목적’이라는 말이 한 문장에 공존할 수 있는가 싶습니다만, ‘타자성의 회복’이 아닐까 합니다.
김수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게 타자성의 회복이라는 걸 느끼게 돼요. 인문학의 목적도 공감 능력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 시대가 공감 능력이 극도로 저하되어 있지 않은가 진단해 봅니다. 타자를 느끼지 못하니까 공감이 안 되고, 공존의 뿌리가 내리기 어렵죠. 내 것처럼 느낄 줄 알며, 스스로를 타자화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을 따뜻한 방 안에 놓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이방인이 될 수도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죠. 고대는 유목사회였기 때문에 환대란 인류가 생존하는 방식이었을 겁니다. 어떤 생명의 최소 요건을 보장해주는 방법이었죠. 한 나그네를 거두어 먹였을 때, 언젠가 나그네가 된 자신 또한 챙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인류공동체의 중요한 육체와 정신의 뿌리가 바로 환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존’과 ‘환대’라는 열쇳말을 널리 나누어왔던 백년어서원이 중앙동에서 영도로 이사했습니다.
김수우 영도로 이사 온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내 삶을 50%로 줄이자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서원의 규모도 그렇고, 집도, 차도 모두 다 줄였습니다. 자연히 세상을 떠날 준비도 되겠죠.
죽음에 대한 준비를 너무 서두르시는 것 같은데요?
김수우 아니에요. 죽음에 대한 연습, 훈련은 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많은 소유가 불행의 뿌리거든요. 그래서 나그네 의식을 지녀야 하며, 타자로서의 나그네 역시 어떻게 환대할 것인가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죠. 그런데 부자들일수록 환대를 행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가 가속화되면서 환대의 정신이 옅어지는 것 같습니다. 영도라는 공간은 이 같은 시대에서 탈세속화된 장소 같은 느낌도 듭니다. 선생님께 영도란 어떤 공간인지요?
김수우 제 문학의 출발지는 대전인데, 고향에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부산에 돌아와 보니 동서 간 문화 격차가 너무 심한 거예요. 그래서 원도심 운동에 동참하게 되었지요. 맡겨지는 책무가 쌓이고 이를 마다않고 수행해온 세월을 후회하진 않지만, 제가 백년어서원의 대표로만 소개되는 거예요. 이제 가깝지만 먼 영도로 옮기면서 반 은둔이 되었습니다. 여기 ‘신선시사’라 이름 붙인 것은 18세기 젊은 실학파 지식인들의 모임, ‘백탑시사(白塔詩社)’를 빌려온 것입니다. 거기에 신선동이라는 동네 이름을 붙였죠. 새로운 토양에서 문학 중심의 공부를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입니다.

복수 개로 존재하는 정체성

선생님께서는 ‘서원지기’라는 정체성 외에도 ‘인문학연구자’, ‘에세이스트’, ‘번역가’, ‘시인’이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베케트도 아일랜드인이면서 불어로 창작을 했고, 일제강점기의 우리 문학인들도 이중어 글쓰기를 수행했습니다. 시인으로서의 번역 작업은 어쩐지 다를 것 같은데요.
김수우 스페인 문화권에서 십 년 동안 거주한 적이 있어서 그쪽 언어를 조금 아는 정도죠. 저는 시는 시인이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구자들이나 교수님들의 번역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소명에 관해 당신 영혼의 말을 받아 적고, 저 역시 영향을 받게 되죠. ‘복수 개의 정체성’이라고 하셨는데, 우리 삶 속에는 모든 존재의 겹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 시에도 많은 겹이 들어있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무수한 지층으로 형성되어 있잖아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내가 갖고 있는 기억들이죠. 번역이란, 타국에서 만난 한 시인의 개인적인 기억을 모국어라는 공통의 기억을 공유하는 한국이라는 집단의 기억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께서는 쿠바를 다섯 번이나 다녀오시면서, 문학의 소명을 일깨워준 호세 마르티의 평전 집필과 시 전집 번역 작업을 하셨는데요. 『공감 그리고』를 펼쳐 읽고 계실 분들께 호세 마르티의 시 한 편도 꼽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수우 호세 마르티의 작품들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되어 있습니다. 그에게서 배운 것은 문학이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 같은 소명에 관한 것들이었어요. 시인의 번역은 누군가에게 닿기를 기도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소박한 시 37
가슴이 여기 있으니, 여인이여, / 당신이 상처 입힐 것을 이미 알고 있다네. /
더 많은 상처를 입기 위하여 / 더 큰 사람이 되어야 하리라! //
기적적인 내 가슴 속 / 일그러진 영혼을 알아차렸으므로, /
상처에 더 깊어지는 동안에도, / 내 노래는 더 아름다워지리니.

우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여쭤봅니다. 선생님께서 가장 애정하는, 가장 ‘나다운’ 정체성은 어느 것입니까?
김수우 만법일여(萬法一如)라는 말이 있는데요, 만 가지 법이 한결같다는 뜻입니다. 시를 쓰는 것이 곧 백년어를 운영하는 것이고, 이 서원을 운영하는 것이 곧 환대의 철학을 실천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로 생각하고, 일을 한다면 마음이 바쁘지가 않잖아요? 번역, 강의, 여행도 마찬가지죠. 그렇게 마음먹는 순간, 불안으로부터 놓여날 수 있습니다. 이걸 더 잘해야 하고 저걸 더 잘해야 되고 이런 게 아니라 똑같다는 거죠. 그런데, 시는 못해도 되는 게 아닌 거예요. 시만큼은 영성의 세계로 생각하니까 아주 깊이 들어가고 싶은 거죠. 그러니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고요.

시인 金守愚에 대하여

선생님께서는 첫 시집 『길의 길』을 발표하실 때만 해도 김경복이라는 본명을 쓰셨습니다. 두 번째 시집부터 ‘金守愚(지킬 수, 어리석을 우)’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계시죠. 필명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김수우 아시는 대로 ‘수우’란, 어리석음을 지킨다는 뜻이에요. 손해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손해를 보고도 손해 본 줄 몰라야 하거든요. 우리 시대가 너무 영악한 시대가 아닌가 해요. 그 같은 시대에서 어리석음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과 태도가 갈마들어 있는 이름이 ‘수우’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시집마다 시적 대상으로 몸이 불편한 존재들을 많이 불러오고 있습니다. 첫 시집 『길의 길』의 발제문에 언급했던 「껌 다섯 통」(42쪽)에는 허리가 85도로 구부러진 노인이 나오고, 「생략·생략·생략」(21쪽)에는 장님 걸인 노인이 등장합니다. 『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의 「광장 밖」(80쪽)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여자가 나오고, 「아침 창가」(94쪽)에는 ‘하반신이 마비된 오라비’를 언급합니다. 『붉은 사하라』의 2부에 실린 「폐어(肺魚)」(40쪽)에서는 ‘혼자 돌아눕지 못하는 근육병 중증장애인’이 나오죠. 시집에 나오는 타자들의 모습은 상징일 수도 있겠고, 타자의 모습을 통해 성찰의 기회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타자의 고통을 대상화하지 않느냐는 혐의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아픈 존재들을 시를 통해 형상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으실까요?
김수우 제가 사진도 오랫동안 찍어왔거든요. 그때도 낡고 쇠락한 것만 찍으러 다녔어요. 오래된 골목, 소외된 이들… 한동안은 근육병 환자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러 다니기도 했고요. 그들이야말로 우리가 환대하고 껴안아야 하는 대상이 아닐까요? 제겐 그런 이들이 타자의 얼굴입니다. 레비나스나 데리다를 통해 만나는 공부는 우리 삶이 도구화, 기계화, 물질화되면서 잃어버린 환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저 존재들은 인류가 잃어버린 오래된 원형을 회복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죠. 저는 책임감이 없는 시가 나쁘다 생각해요. 언어와 사유에 책임감이 없고, 공동체에 책임감이 없는 작품. 우리 자신은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그렇게나 많은 에너지를 쓰면서 에너지를 쓰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왜 책임을 지지 않지? 그렇게 하다 보니까 자꾸 소외되고 잊히고 버려지고 시간이 묻어 있는 것에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것 같아요.

이방인 정서와 이상주의자는
동음이의어

선생님의 생의 이력을 들여다보면 ‘이방인’ 정서가 되게 짙어요. 재작년 출간하신 산문집의 제목도 『이방인의 춤』(걷는사람, 2023)이고요. 선생님께서는 서부아프리카의 사하라, 스페인 카나리아 섬에서 십여 년을 머무셨고, 지금도 끊임없이 외국으로 나가시잖아요? 이 같은 경험들이 시인이자 번역가로서 정체성의 확장, 인식과 시선의 확장으로 연결되었다고 사료되는데요. 이 같은 타국에서의 생활이 선생님의 생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김수우 이방인으로서 경험한 것들은 제게 환대의 철학을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낯선 곳에서 환대를 받거나 낯선 자들을 환대하는 방식에 대하여 백년어서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나누고 싶단 생각도 들었고요. 한편, 이 이방인 의식의 중추에는 가난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아요.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빈 마음으로 삶의 본 모습을 관찰하기 용이해집니다. 지금 우리 문명이 처한 어려움은 끝 모를 욕망 때문이 아닌가요? 이방인 의식이 욕망을 줄이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시사(詩史)에서 이방인 정서를 가장 깊이 체화했던 인물로 보들레르가 떠오릅니다.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권태’였습니다. 일상이 가져다주는 반복과 단조로움에 의해 활짝 열린 근대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 새로움, 긴장, 자극으로부터 무뎌진 상태를 시인은 경계했던 것 같습니다. 권태의 다른 말은 시간이죠. 인생은 유한한데, 그 유한함을 자각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 시인에겐 가장 큰 적이자 실존의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당신을 소개하는 말 중에서 ‘이상주의자’라는 단어를 발견합니다. “이상이 현실을 바꾼다고 끝까지 믿는다.”는 말씀에서 특정한 고정점에 붙들리지 않으려는 이방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김수우 흔히 이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우리의 현실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이상이 없기 때문이에요. 이상이 있어야 현실을 바꿀 수가 있는데, 이상이 없는 현실에서 현실을 아무리 바꿔 봤자 결국 현실에 갇히거든요. 예전에는 위대한 선생들이 이상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법정 스님은 우리에게 ‘무소유’라는 이상을 주었잖아요? 보이는 것을 보는 게 비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게 이상이자 비전이거든요. 비전이 합의를 만드는데, 사람들은 합의가 비전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선생님께서 그 비전을 제시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김수우 저는 생명윤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를 떠올려보죠. 우리 모두는 제각각의 논리로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하잖아요? 그러려면 저 사람이 존재하는 방식도 인정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갈등과 불안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믿게 되나요? 극단적인 물질에만 매달리죠. 이 같은 사회는 생명윤리를 배격합니다. 생명의 가치 속에서 공존과 타자성 회복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말이죠. 저는 이 같은 주장을 책을 통해서, 문학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런 저를 이상주의자처럼 생각합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이상이 있어야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나가며

이상은 현실에서 그것을 꿈꾸는 주체와 상존하지만, 우리는 현실과 이상을 임의로 분리하여 받아들이곤 한다. 선생은 그 둘을 바투 붙여놓았다. 생각할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상은 현실 속에서, 현실의 옆자리에 있기 마련이니까. 초봄의 여린 잎에서 한여름의 녹음을 떠올리듯, 어린 아들의 얼굴에서 아비의 얼굴을 발견하듯이. 그래서 이상은 현실의 존재 형식이라는 다른 이름을 갖는 것이 아닐까. 현실은 우리의 인식 속에서 쉼 없이 이상화되고, 반대로 이상은 현실화의 도정을 멈추지 않는다.

정재운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고, 다다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설집 『경이로운 동그라미』(강, 2024)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