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2025년 6월 12일 저녁, 골목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비주류사진관에서
부산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음악가, 무용가, 사진가 세 분을 만나
서로의 땀을 한 땀 한 땀 나누었다. 땀은 여러 가지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들의 땀으로 젖은 노을이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공감 그리고』 편집위원 신용철
『공감 그리고』 여름호 주제는 ‘땀’입니다. 예술의 결과물이 곧 ‘땀’의 결과이며, 예술은 오랜 수련을 거치거나 끊임없이 사회와 교섭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이어가는 행위로 볼 수 있죠. 이를 바탕으로 ‘예술의 시작’, ‘예술을 대하는 태도’, ‘나의 작품이 세상에서 어떤 가치를 지녔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를 하나씩 순서대로 나눠보겠습니다.
정남준
사회 다큐 사진 집단 비주류사진관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1989년, 짱돌과 꽃병이 오갔던 시대에 사진을 접했고 교내 사진관 사장님께 인화를 배우며 사진에 푹 빠졌어요. 졸업 후에는 먹고살아야 하니 생업에 있다가 14년 전부터 다시 사진기를 들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눈에 보이는 현실 속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소외된 부분을 사실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게 사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상을 깊게 관찰하고 그와 소통함으로써 제3자로부터 공감을 얻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삶과 숨소리 자체를 담고 싶다 보니 예술을 하기 위해 사진을 한 적은 없어요. 예술에 객관적인 개념을 규정한다는 게 부자연스럽다 생각하기도 하고요.
사진가 정남준
아완
저희 세대가 학생이었을 때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는데, 당시 문화를 선도하는 곳이 교회였어요. 친구 손에 이끌려 간 교회에서 악기를 처음 잡았는데 연주 실력이 늘수록 음악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대학에 입학할 무렵에는 재즈를 처음 들었는데, 너무 좋아서 충격을 받았고 그때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어요. 음악에 대해 더 알아야 되겠다는 생각에 신학을 배우는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제 음악의 근원은 신학이었기 때문에 거기서 답을 찾으려 했던 거예요. 대중음악 등 여러 장르를 접하며 저한테 맞는 음악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즉흥적인 부분은 재즈에서 답을 얻었어요. 그렇게 제 음악을 찾기까지 10년 정도 걸렸습니다.
음악가 아완
이주호
중학교 3학년 때 발레를 시작했습니다. 부산예술고등학교 선생님과 제가 다닌 중학교의 선생님이 서로 친분이 있으셨고, 운동 잘하고 키 큰 친구를 추천해달라는 말에 저를 추천하신 거예요. 당시만 해도 남자가 타이즈를 입고 무용하는 걸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바로 입시 준비를 했고 부산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배워온 친구들과 수준 차이가 너무 나니 발레에 흥미를 못 느끼고 방황을 했어요. 그러던 찰나에 실력 좋고 성실한 친구 2명이 전학을 왔어요. 한 학년에 남학생이 3명뿐이라 항상 예쁨을 받았었는데, 어느 순간 그 친구들에게 관심을 뺏기니 승부욕이 생기더라고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발레를 했고, 예술의전당에서 <백조의 호수>를 관람하며 제가 생각했던 것과 차원이 다른 발레리노의 모습에 자극을 받아 더욱 치열하게 했습니다.
무용가 이주호
다들 출발이 달라요. 그만큼 생활세계와 예술세계가 짝으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그에 대한 시각, 태도도 조금씩 다를 것 같아요. 태도는 예술에서 굉장히 중요하죠. 태도가 어떠냐에 따라 그 예술이 지속 가능할 것인가, 가능하지 않을 것인가가 결정되니까요. 여러분은 예술을 어떤 태도로 하고 계신가요.
이주호
발레는 철저한 훈련에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클래식 발레는 규율이 매우 엄격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이루어지는 훈련을 통해 몸을 기계처럼 만들어요.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라인을 만들어야 하니, 마치 다이아몬드를 세공하듯 근육 하나하나를 깎아내는 것 같죠. 그렇게 만든 아름다운 몸으로 단순히 동작을 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담아 표현합니다. 발레는 극도로 절제된 예술이고, 무대에서는 감정과 기술이 철저히 통제되었을 때 진정성이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일 스스로를 조율하고 낮추는 훈련을 해요. 발레리나, 발레리노의 동작 하나에 또 어떨 때는 등장만 했을 뿐인데 그 순간 많은 사람이 감동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 거울을 1시간 이상 보는 사람은 없잖아요. 저희는 8~10시간 이상 거울을 봐야 하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몸과 동작을 보는 게 고통스러우면서도 계속 마주합니다. 그러다 상상했던 몸이 거울에 보였을 때의 기쁨과 성취감은 말로 표현이 안 돼요. 어느 분이 ‘내가 절대 발레를 가질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런데 그게 매력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공감되더라고요. ‘못 하겠다’, ‘그만 해야겠다’ 하다가도 그 고비만 버텨내면 카타르시스가 올라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발레단에 있을 때는 주연이 되고 싶고, 더 위로 올라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힘든 발레를 왜 하는 건지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최근에 연습했던 걸 온전히 해내고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고 ‘이게 내가 발레를 하는 원동력이었구나’ 깨달았어요.
정남준
조금 과할 수 있지만, ‘예술’이라는 글자를 물건 이름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노동자가 생산한 상품에 이름을 붙이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예술은 자본주의의 중심인 노동자에게 제한적이고 폐쇄적인 것 같아요. 노동자가 일하지 않으면 우리의 하루는 굴러가지 않는데도 너무 소외시킨다는 느낌을 받아요. 저는 ‘노동’이라는 행위를 존중하고 ‘노동자’를 존경합니다. 여태 제가 찍은 사진의 주제 대부분이 드러나지 않은 노동자의 모습이었어요. 아마 제가 카메라를 붙잡고 있는 평생 이 주제에서 벗어날 것 같지 않은데, 사진이 단시간에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피사체가 되는 인물과 관계를 맺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오랜 시간 소통이 이루어지면 그제야 ‘선생님,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습니까?’ 여쭤볼 수 있고 사진이라는 결과물이 나오는 거예요. 얼마 전 작고하신 세바스티앙 살가도 사진작가께서 ‘당신이 편하게 사진을 찍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은 일을 하고 있고, 지금 당신이 그 지점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어떤 사람에게는 고통과 연결된 것일 수 있다. 그걸 모르겠다면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만 움직이면 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저는 이 말씀을 교과서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인물을 사진에 담을 때 ‘존경’과 ‘존중’이 없으면 인물 사진이 나올 수 없거든요. 또, 피사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귀한 사진이 나와요. 그런 부분이 발산되어 혼자가 아닌, 둘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아완
정남준 선생님 말씀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요. 어머니가 공장 노동자셨고, 저도 2015년까지 10년 정도 공장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음악 활동을 시작한 시기와 겹치는 때도 있는데, 제 음악이 2015년 이후 바뀐 것 같다는 반응은 아무래도 그때의 경험이 영향을 끼친 거겠죠.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예술’, ‘예술가’는 사회적 용어이고, 현대 사회에서 예술이라 함은 사회적 매개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제 음악의 사운드만 듣고는 어디서 사회를 느낄 수 있는지 의문이 드실 텐데요. 음악이 탄생하기까지는 텍스트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사운드로 표현하는 것이고, 메시지의 키워드는 ‘존재’와 ‘사회’입니다. 앞서 제 음악의 근원은 신학이라고 말씀드렸지만, 교회의 폐쇄적인 문화가 저와 맞지 않았고 그 반발심에 교회 안에서는 절대로 음악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교회에서는 예배 음악이 아니면 바깥 음악이라는 표현을 썼거든요. 저는 ‘내가 하는 음악이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는 음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제가 연주 음악을 고집하는 이유는 청자 입장에서 가사가 있는 음악보다 연주 음악이 주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영역이 넓기 때문이에요. 물론 생소하고 다가가기 힘든 음악이라 느껴지실 수 있어요. 하지만 모두가 다르게 생기고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듯 모두 같은 음악을 할 수는 없어요. 제 음악이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매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세 분 다 자신을 너무 낮추시는 것 같네요. 내가 하는 행위가 예술이든 아니든 예술을 하고 계신 거잖아요. 실은 예술의 본령은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예술을 통해 어떤 열매를 따고 싶다, 사회 또는 자신에게 뭔가 주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덧붙여 부산 문화예술계에 바라는 점도 함께 말씀해주십시오.
아완
사회적 열매라고 하면, 제 음악이 조금 더 많은 사람에게 닿았으면 합니다. 낭만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현실적인 부분도 포함입니다. 그래야 선순환이 가능하거든요. 언젠가 음악 작업에 흥미가 떨어지고 감각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만두겠죠. 아직까지는 이런 감각을 사랑하고, 개인적인 열매도 얻고 있기 때문에 행복하게 생활을 이어가고 있어요. 다만, 제 음악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재즈도 예전에는 마니아적인 음악에 속했지만 지금은 대중화가 되었듯이 제 음악도 대중적으로 사회적인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습니다.
문화예술도 사회 안에서 형성되는 것인 만큼 정부나 지방의 관계자들이 조금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관심과 지원이 시작인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이 새로운 문화예술을 접하고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면 좋겠습니다. 문화예술이 없다면 삶은 너무 퍽퍽하고 무미건조할 거예요.
이주호
발레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감’이라고 생각해요. 언어는 없지만 그 안에는 분명 아주 깊은 감정과 서사가 흐르고 있거든요. 관객분들이 제 움직임을 통해 자신의 기억이나 감정을 떠올릴 때 저는 행복을 느껴요. AI가 많은 것을 대체한다고 하는데, 과연 발레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움직임은 기계적으로 더 완벽할 수 있을지라도 표정은 또 너무 완벽하면 마음에 와 닿지 않아요. 톨스토이가 ‘예술은 손으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 예술가의 경험을 전달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어요. 발레를 오랫동안 좋아하신 분들 중에는 옛날과 비교했을 때 신체적인 조건은 현대의 무용수들이 훨씬 좋지만, 투박스러운 동작에도 마음에 와닿던 감성이나 낭만은 옛날에 비해 덜하다고 하시는 분도 계세요. 그만큼 현시대에서 할 수 있는 표현으로 공감을 얻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부산에 청년 인구가 계속 빠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지만, 제 주변만 봐도 문화예술계에 청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물론 청년 문화예술인을 위한 지원도 있고요. 하지만 크게 와닿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실력이 검증된다면 제도적으로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정남준
사진을 드린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고요. 사람들 사이에 언어, 몸짓이 있듯이 사진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관계를 얼마만큼 확연히 다졌을 때 마음이 드러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가 평생의 숙제입니다. 다큐멘터리의 기본은 기록이라서 현장을 많이 담으려고 해요. 노동자 농성 현장, 구룡마을 등 관심이 필요한 현장을 촬영했는데, 그럴 땐 그분들의 상황과 심리를 최대한 임팩트 있게 드러내려고 했어요. 누군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사회적인 문제를 그분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되는 거라서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싶었어요. 강에 주류와 비주류가 있으면 비주류는 숲을 키우고 온갖 생명을 키워요. 사진이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비주류사진관을 열었고, 앞으로도 그런 사진을 찍으면서 함께 웃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문화예술 기관 대부분이 저녁 일찍 문을 닫습니다. 그러면 노동자분들은 관람을 할 수 없어요. 주말에는 집안 행사가 많기도 하고요.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이 개선되어 누구나 쉽게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보통 다양한 생명체가 공존하고 있을 때 숲이 건강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문화예술도 편중되면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입니다. 좋은 말씀을 함께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서로에게 공감의 박수를 보내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아완, 이주호, 정남준
감사합니다.
신용철
시골큐레이터. 15년 동안 민주공원 학예실장으로 있었다. 올해 5월 거리로 돌아왔다. 큐레이터는 사라짐으로 살아가는 목숨이다.
아나키 히피 집시 예술가들이랑 사이좋게 지구의 회전축이 기우는 소리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