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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있다

새 정부 ‘지역문화정책’이
기억해야 할 세 가지 이야기

정종은

2025년 6월 3일, 21대 대선이 끝이 났다. 하지만 2024년 12월 3일, 40여 년 만에 발동된 계엄이 초래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은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다. 탄핵 이후 급하게 치루어진 대선에서는 선거 이후 국정 운영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진영 간 대립과 다툼이 전체 구도를 강하게 지배한 까닭에 대한민국 정부를 구성하는 각각의 부·처·청을 아우르는 세세한 공약이 만들어질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일례로 <제21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업무 범위를 다루는 공약이 따로 없다. 여러 분야별로 조각조각난 형태로 몇몇 과제와 사업이 제시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정부 출범 이후의 국정과제 체계는 인수위의 역할을 맡고 있는 국정기획위원회(위원장 이한주)의 활동이 마무리되는 8월 중순에나 나름의 형태를 갖추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이러한 상황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새 정부 ‘지역문화정책’이 혹여나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는 것을 막기 위해 고민할 지점들을 제시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낡은 관습에 대한 염증을 느끼면서 새로운 시대를 갈구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지역문화정책의 설계 과정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교훈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

‘지역문화 분권’이라는 난해한 고차방정식:
문화예술교육정책의 사례

첫 번째로 기억할 것은 ‘지역문화 분권’이라는 의제가 얼마나 달성하기 어려운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5대 국정목표 중 하나였던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자치분권과 균형발전”에 근거한 “자치분권 로드맵(2017.10)”, “자치분권 종합계획(2018.09)” 등은 문화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문화정책 전반에서 중앙주도 성향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이에 따라 ‘지역 중심’ 문화정책으로의 선회가 주요한 의제로 부상했다. 그 과정에서 문화예술교육은 가장 대표적인 ‘문화 분권’ 영역 중 하나로 지목되었고, 지속적으로 약화되어온 광역 지역센터와의 관계성 재설정뿐만 아니라, 기초센터 지정 기반 마련 등을 통해 새로운 문화예술교육을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표명되었다.

이로써 2018년 1월 발표된 『제1차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은 “삶과 함께 하는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비전하에 ‘지역기반 생태계구축’을 3대 전략의 하나로 강조하게 된다. 그 결과, 중앙의 종합계획 수립에 따른 지역별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 수립(17개 시도 전체 완료)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계기로 시도별 문화예술교육 조례 제정 역시 확대되었다. 또한 지역화 이슈가 문화예술교육 현장에 안착될 수 있도록 문화체육관광부-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광역)지역센터 3자 참여가 전제된 ‘지역협력위원회’도 2018년 1월 발족되어 2024년까지 운영되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2019년부터 <지역센터 운영> 및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등 3개의 개별 지원사업을 묶어 지역센터로의 ‘포괄보조’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실질적 차원에서 문화예술교육 지역화의 첫 단계였다고 볼 수 있다.01

2022년 5월, 윤석열정부 집권 이후 문화예술교육정책은 급격한 쇠퇴를 경험하게 된다.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는 문재인정부 시기에 계획된 2단계 재정분권 정책에 따라 <지역 문화예술교육 기반 구축 사업>과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을 지방이양 사업으로 편성하였고, 이에 따라 각 지자체는 2021년 기준 예산을 전액 보존하고 국비, 지방비를 확보하여 2022년부터 문화예술교육 사업의 지방 주도 운영을 준비하고자 했다. 하지만 문화예술교육 사업의 지방이양이 지역의 주체성을 강화하고, 지역주도의 자율적인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결과적으로는 지역(지자체) 차원에서의 문화예술교육 예산 편성은 국비 매칭이 사라진 상황에서 급격히 축소되었고, 종국적으로는 문화예술교육 생태계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도래하게 된다. 실제로 17개 시도 지방비 편성 현황(센터지원, 현장역량 강화, 기반구축)에 따르면, 2023년 대비 2024년에는 총 10%가 감액되었고, 지역센터 지원의 경우는 40%가 감액되었다. 현재는 “지방 이양의 틈에 덩그러니 놓인 지역 문화예술교육”이 심각한 “균열”을 겪고 있기에, 어떻게든 안정적인 예산확보를 통해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정체성이 지역 내에서 존속될 수 있게 하는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전국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새 정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분명한 것은 지역문화 분권이란 ‘지방이양’이나 ‘포괄보조’, ‘협력위원회’와 같은 멋진 말을 순진하게 되뇌임으로써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무척이나 난해한 고차방정식이다. 중앙의 현실과 지역의 현실, 중앙의 관점과 지역의 관점, 중앙의 솔루션과 지역의 솔루션을 동시에 바라보면서 묶고, 자르고, 잇고, 창조하는 지난한 과정을 피할 도리가 없다는 말이다.

2.

바보야, 문제는 시민 거버넌스야:
‘도시 3.0’ 모델이 들려주는 교훈

창조도시의 주창자인 찰스 랜드리는 『Cities of Ambition』02이라는 책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도시들의 발전을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한다. 도시를 기계로 바라본 ‘도시 1.0’ 모델은 “대규모 공장들과 대량 생산”, “위계적이고 탑다운 방식”의 관리 시스템, 고립된 강력한 부서들에 의한 수직화 구조, “기계적인 암기”를 통한 학습, 분리된 도시 기능, “토지 이용”에 집중된 도시 계획 등으로 구성된다. “미학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성적이고 질서 정연하며, 기술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격리된 도시, 그곳은 ‘도시 공학(urban engineering) 패러다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하드웨어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시 2.0’은 어떨까?

도시 2.0의 “산업적 상징은 과학 단지(sicence park)와 하이테크 산업이다; 그 관리 에토스는 보다 평면적인 구조를 갖추며, 협력 작업의 중요성이 증가한다; 학습 시스템이 확대된다. 학문 분야들의 통합에 대한 인식도 더 높아진다. 이슈들은 더 연결되며, 도시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에 대한 인식도 강화된다. 지속가능성이 하나의 주문(mantra)이 된다. 도시 디자인과 감성적인 느낌이 더 높은 우선순위가 된다. 도시는 보다 스펙터클하게 만들어진다. 빛나는 유리 타워들이 번성한다. 거대한 소매업, 엔터테인먼트 또는 문화 센터들이 사람들을 매혹하기 위해 노력한다. 도시는 이제 활동을 위한 캔버스와 무대가 된다. 계획은 보다 협의적(consultative)이고 도시를 보다 통합적인 방식으로 바라본다. 교통은 이동성과 연결성으로 재정의된다. 걷기 쉬운 보행자 친화적인 거리들이 늘어난다. 혼합 사용과 다양성이 더욱 중요해진다. 생태학에 대한 존중과 창조경제 부문의 중요성이 증가하며, 문화는 경쟁의 도구가 된다. 독창성, 미학, 인간적인 편안함, 그리고 장소감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더 많은 강조가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도시 3.0’은 ‘도시 2.0’을 기반으로 하되 시민들의 집단 상상력과 지성을 활용하여 그들의 도시를 만들고, 형태 짓고, 함께 창조하는 데 관심을 더하는 곳이다. IT 기업들이 정의한 전략들보다 시민 참여를 더 중요시하는 스마트 시티라는 의제, 스마트 그리드와 센서, 개방적 참여 및 개방형 데이터 플랫폼, 도시 서비스용 앱 등이 잘 개발되어 있으며, “사물의 도시(city of things)”가 진지한 가능성으로 부상하는 곳이다. 찰스 랜드리는 이를 “소프트 어바니즘”이라고 정의하는데, 이는 모든 감각을 통해 이루어지는 도시 경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단조로움을 반대하는바, 도시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구상된다. 그것은 회복탄력성(resilient)을 갖기 위한 기회를 증가시키기 위해 적응력을 발휘하며,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관한 논의를 실천한다(walk the talk). “기업가정신, 창조성 및 혁신 의제의 중요성이 더욱 증가하고, 개방형 혁신 시스템이 협력적인 경쟁(collaborative competition)을 추동하며, 소규모 사업체와 중소기업들이 더 큰 역할을 맡게 된다. 도시 형태는 창조성을 장려하기 위한 문화적 그리고 물리적 환경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요약하자면, 우리의 지역문화정책 역시 ‘도시 3.0’ 모델을 진지하게 고려할 시점에 다다랐다. 산업화 시대의 압축적 성장 모델에 근거한 ‘1.0’ 모델이나 탈산업사회로의 전환기에 출현한 ‘2.0’ 모델을 넘어서 시민 거버넌스에 토대를 두고 도시의 “경제적, 문화적, 물리적 및 사회적 관심들을 통합적으로 결합”하는 도시! 이러한 목표 아래서 지역문화정책은 더 이상 지역민을 수동적인 소비자 또는 향유자로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감각을 표현하고, 고유한 문화를 만들고, 도시의 감각 풍경을 빚어내는 창조자로서 이해해야 한다. 기존의 문화예술교육 정책은 물론 문화도시 정책, 생활문화 정책, 예술지원 정책 등은 이와 같은 인식 전환을 바탕으로 총체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3.

지역소멸에 대응하는 지방의 자세:
소용돌이(vortex)와 저장고(silo) 이야기

마지막으로 기억할 것은 서울 중심의 일극체제 속에서 지난 30~40년간 대한민국의 ‘지방’이 황폐화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거대한 도시들이 주변의 자원과 인프라를 빨아들이는 소용돌이 효과(vortex effect)는 모든 대륙, 모든 국가에서 발생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몇몇 도시가 해당 국가의 주요 인프라를 독점하며 그 외의 모든 도시를 자신들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아들이는 현상! 그 결과 일부 도시들이 해당 국가의 정치권력과 법조권력, 언론권력은 물론 생산과 무역 등 경제 활동, 은행, 보험 및 관련 금융서비스, 의료와 교육, 기술 등 전문 활동, 정보 수집 및 확산, 지식 창출과 재생산, 문화와 엔터테인먼트 등, 나열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독점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최종적인 단계는 우수한 인프라를 매개로 전국의 인재들마저 남김없이 빨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특이성은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이 소용돌이에 빨려들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인구 절벽과 수도권 과밀화 문제로 부산이 어떻게 시달리고 있는지 살펴보자. 부산의 인구는 1995년 389만 명이었지만, 이후 지속해서 줄어들다가 2023년에는 급기야 330만 명 선이 무너졌다. 지난 10년간 부산에서 수도권으로 순유출된 청년인구는 십만 천명 가량으로 파악되는데, 특히 25~29세 청년층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대로라면 향후 10년 안에 인구 300만 명 선이 붕괴되면서 ‘제2의 도시’ 타이틀을 인천에 넘겨줄 가능성이 높다. 부산과 인천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 아마도 서울과의 물리적 거리가 아닐까? 최근 점화되고 있는 대구-경북 통합시, 부산-경남 통합시 등의 논의는 이러한 소용돌이 효과가 얼마나 위협적인지를 방증하는 것이다.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소용돌이에 맞서 각성하고 혁신해야 할 지방도시들이 스스로를 저장고(Silo)에 가둬두는 현상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시는 고정된 정태적 공간이나 존재가 아니다.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적응하는 유기체로서 동태적인 성격을 갖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래가 깊은 도시들은 시대의 변화와 도전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혁신한 결과로 오늘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위대한 대한민국의 많은 도시들이, 도시 1.0 패러다임, 즉 개발국가(developmental state) 시대의 압축적 산업화의 기억 또는 관성에 따라 1960~1990년대의 성공방정식을 큰 고민 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가령 대규모 택지 개발이나 원도심 재개발을 통해 인구와 세수의 급증세를 경험했던 도시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환을 고민하지 않고 있다. 과거의 달콤한 성공 기억을 곱씹으면서 새로운 환경에는 눈을 감고,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낡은 개발 의제를 되풀이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대규모 개발이나 행사를 추진할 여력조차 없는 도시들은 중앙 정부의 자애로운 시혜를 기다리며, 소소한 문화행사들만 상호복제하는 가운데, 어느 날 우연히 대운이 몰려오기를 바라고 있을 수도 있다.

이처럼 과거의 성공 기억에 매몰된 많은 도시들은 골든 타임을 낭비하면서 서서히 저장고(silo)로 화석화되고 있는 중이다. 저장고의 미덕은 가만히 있는 것,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다. ‘좋았던’ 개발시대의 관성을 좇아 ‘문화’를 생산과는 거리가 먼 ‘장식품’ 정도로 치부하면서, 부드러운 검열과 줄 세우기를 통해 ‘상징 폭력’의 기제로 활용하는 경우가 여전히 적지 않다. 이러한 도시에서 관료들은 빠른 시간에 거대한 경제적 자원을 동원하는 비법에만 관심이 있으며, 기존의 법칙을 준용한 낡은 성과주의 문화는 부서 간 교류를 억제하고 독자적·분산적 사업 추진 방식을 재생산한다. 시민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억누르는 탑다운 방식과 칸막이 방식의 도시 정책은 다양한 주체들 간의 상호자극과 협력이 부족한 상황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러한 관성을 부수지 않는 이상, 희망은 없다고 믿는다. 회색빛 깊은 저장고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이상, 일극적 소용돌이는 전국 곳곳의 자원과 인재를 끊임없이 빨아들이게 될 것이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다. 알을 깨고 나오는 천지개벽의 순간은 어미닭과 병아리가 안팎에서 동시에 알을 쪼아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 행정과 시민, 중앙과 지역의 ‘동시적인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의 지역문화정책은 줄탁동시를 현실화하기 위한 철저한 고민과 계산 위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과거 문화예술교육정책의 성급한 지방이양은 큰 후과를 낳았다. 도시 3.0 시대, 문화정책의 성공은 전적으로 시민 거버넌스에 의존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극적 소용돌이와 회색빛 저장고를 깨트릴 수 있는 복안이 없다면, 그것은 임계점을 넘지 못한 뻔한 지역문화정책으로 기록되고 말 것임을 두려운 마음으로 되뇌어야 할 것이다.

  • 01) ‘포괄보조’란 기존에 단위사업별 개별적으로 지원하던 방식에서 예산을 통합·지원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2022년으로 예정된 본격적인 문화예술교육 정책사업 지방이양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 02) Landry, C (2015) Cities of Ambition, Comedia: Bournes Green Near Stroud, UK

정종은

부산대학교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미학을, 영국 글래스고대학교에서 문화정책학을 공부했다. ㈜메타기획컨설팅에서 부소장으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부연구위원으로, 상지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에서 조교수로 재직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자체평가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품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