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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잇다 | 예술가 인터뷰

무대 안에서 인간을 감각하는
연출가, 김지원

옥순주 사진제공김지원

장애인문화예술이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계속 공연을 만들고 싶다고 소망하는
김지원 연출은 장애인 배우들의 날것 그대로의 진정성을 잘 발견해내는 남다른 ‘감’이 있는 사람이다.
경계와 다름을 넘어서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연극으로 담고자 하는
극단 다빈나오 김지원 연출을 만나 그의 연극 작업 안에서 감각되는 ‘감’을 함께 느껴 보고자 한다.
김지원은 어떤 ‘감’으로 살아가고 있는 분이실까요?
김지원 저는 ‘감각’의 ‘감’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장애와 비장애, 인간과 자연, 과거와 현재의 경계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느끼며, 다름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제가 예술 안에서 추구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다양한 공연에 연출과 배우로 출연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작품에 배우로, 연출로 참여하셨을까요?
김지원 배우로는 극단 현대극장에서 연극 <안테고네>로 데뷔했고, 뮤지컬 <에비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요셉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 <장보고> 등에 출연했습니다.
연출로는 극단 다빈나오의 <소리극 옥이>, <마치, 그라이아이>, 국립극장 무장애 음악극 <합★체>, 모두예술극장 개관작 뮤지컬 <푸른 나비의 숲>, 접근성 높은 연극 <해리엇> 등을 만들어왔습니다.
<합★체> 포스터 (사진출처. 국립극장)
국립극장 무장애 음악극 <합★체>와 모두 예술극장 개관작 뮤지컬 <푸른 나비의 숲>은 어떤 공연인지 소개해 주십시오.
김지원 음악극 <합★체>는 2022~23년 국립극장 기획 무장애 공연으로,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과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에서 공연된 창작 작품입니다.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각색했으며, 음성해설, 그림자 수어통역, 자막 등 다양한 접근성 요소를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습니다. 장애인 관객들도 편안히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작업이었습니다.
창작 뮤지컬 <푸른 나비의 숲>은 2023년 모두예술극장 개관 기념으로 제작되어 2024년 재공연까지 올린 창작 작품입니다. 모두예술극장과 어울리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고, 장애 예술인들이 다양한 역할로 노래하고 춤추며 무대를 채운 뮤지컬입니다. 접근성 요소는 물론, 극장 자체가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 누구나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합★체> 연습 사진 (사진출처. 국립극장)
김지원은 어떤 사람이고 연극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신걸까요?
김지원 저는 다양한 사람, 언어, 소통의 방식을 통해 공연 예술을 즐기고자 여러 감각으로 창작을 이어가는 사람입니다.
1993년 뮤지컬 <에비타>를 시작으로 극단 현대극장에서 배우로 첫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후 10년간 뮤지컬과 연극 배우로 활동했고, 우연히 봉사활동을 갔던 장애인 단체에서 연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만남이 계기가 되어 장애·비장애 예술인들과 함께 창작한 지도 어느덧 21년이 되었습니다.
연극이 독립된 예술가들이 협력해 완성하는 것처럼, 저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연극이 지향해야 할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네, 극단 다빈나오가 21년의 긴 역사가 있군요. 연극 작업을 해오면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을텐데 그중에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을까요?
김지원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배우들이 건강 문제로 더 이상 작업을 이어갈 수 없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긴 시간 함께하다 보니 저희도 나이를 먹고,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변화를 겪게 되니까요.
처음 창단은 연출님이 대표셨고 지금은 상임연출만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극단의 운영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김지원 네, 맞습니다. 창단 당시에는 제가 대표였지만, 이후 극단의 취지에 맞게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뇌병변 장애인 황철호 배우님이 대표를 하셨고, 지금은 시각장애인 전인옥 배우님이 대표직을 겸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밀도있는 베리어프리 연극 공연을 만드시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 어떤 계기로 무장애연극을 생각하게 되셨나요? 더불어 극단 다빈나오는 어떻게 창단하게 되셨을까요? 다빈나오의 작품들도 소개해주십시오.
김지원 장애 예술인들과 오래 함께하다 보니, 저에겐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습니다.
공연 현장에는 물리적, 심리적 장벽이 많습니다. 장애 유형에 따라 무대의 조건이 달라지고, 함께 창작하려면 그에 맞는 소통 방식을 새로 배워야 했습니다.
이런 과정이 자연스럽게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연’으로 발전했습니다.
극단 다빈나오는 “모두 다 빈 마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오시오. 세상 밖으로 나온 그대들 모두 다 빛나오”라는 의미로 창단했습니다. 장애, 비장애 예술인이 함께 각자의 개성으로 공연을 만들어가며, 단순한 ‘함께하기’를 넘어 모두가 창작의 주체로 참여합니다. 다름이 힘이 되는 극단이지요.
대표작으로는 연극 <가족>, <아주 특별한 우리 형>, <마치, 그라이아이>, 그리고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신 <소리극 옥이>가 있습니다.
연극이라는 공연장르가 인간의 “감각”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면이 있다고 보는데 어떤 한 감각을 상실한 장애의 연기가 연극 안에서 잘 부각되는 작품들을 많이 만드셨습니다. 대표님께서 생각하는 인간의 감각에 대한 생각이 듣고 싶습니다.
김지원 연극은 감각의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 감각의 결핍이 다른 감각을 어떻게 확장시키는지에 주목합니다. 무대 위 모든 요소―음성, 자막, 수어, 움직임, 음악과 음향―는 관객에게 직접 다가와 예술의 언어가 됩니다.
특히 접근성 높은 연극에서는 ‘감각의 상실이 곧 감각의 확장’이라는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다양한 감각의 공존 자체를 무대 형식으로 삼는 것이 제 예술적 선택입니다.
장애와 비장애 배우들과 함께 작품을 만드시는 과정에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김지원 초반에는 웃지 못할 상황도 많았습니다. 한 번은 암전 뒤 조명이 켜지자 시각장애인 배우들은 모두 퇴장했는데, 비장애 배우들이 무대에 남아 “우리도 야광 마킹 좀 해달라”고 불평하던 일이 있었지요.
이처럼 서로의 차이를 통해 배움을 얻습니다. 다른 감각으로 소통하는 배우들이 함께할 때, 그 차이가 장벽이 아니라 창작의 자원이 된다는 것을 매 순간 확인합니다.
다빈나오의 대표 작품은 단연 <소리극 옥이>가 아닐까 싶은데요, 부산에서도 공연이 되었습니다. 초연부터 지금까지 몇 번, 어디서 공연을 했고, 초연 배우가 바뀌지 않고 계속 공연을 했나요?
김지원 소리극 옥이는 초연 이후 국립중앙극장,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립부산국악원 등에서 공연되었고, 올해는 프랑스 플래토우 이마고에 초청되어 해외 쇼케이스도 준비 중입니다.
2017~2018년까지는 초연 배우들이 공연했고, 2019년부터는 초연 배우와 새로 합류한 배우들이 함께 무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옥이’는 이 작품의 출발점이 된 배우님이 맡고 있는데, 2년간의 설득 끝에 무대에 서시게 되었고 지금까지 계속 함께하고 있습니다.
<소리극 옥이>가 프랑스 플래토우 이마고에 초청되어 간다고 하니 반갑고,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향후 다빈나오의 공연 계획은 어떻게 될까요? 프랑스 초청 이후로 계속해서 해외 공연 계획도 있을까요?
김지원 올해는 프랑스 플래토 이마고에서 <소리극 옥이> 쇼케이스를 선보이고, 2026년 이마고 페스티벌에서 정식 공연을 올릴 예정입니다. 또 다빈나오 배우들과 프랑스 극단 크리스탈 배우들이 함께하는 소규모 창작 워크숍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소리극 옥이> 공연 장면 (사진출처. 극단 다빈나오)
제가 서울 올라가서 봤던 공연은 <소리극 옥이>와 <마치, 그라이아이>인데 두 작품 다 시각장애인들이 주인공입니다. 특별히 이유가 있을까요?
김지원 극단 다빈나오에는 여러 유형의 장애 예술인들이 함께합니다.
아마 관람하신 작품이 시각장애인 배우분들이 주인공인 경우였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한 유형만을 중심에 두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에 공연된 <해리엇>은 접근성 높은 공연으로 직접 각색, 극작, 연출까지 하셨는데 어떻게 이 공연을 구상하게 되셨을까요?
김지원 해리엇은 한윤섭 작가의 동화를 각색한 작품입니다. 원작에 담긴 따뜻한 시선에서, 서로 다름을 존중하며 함께 존재하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옮기고 싶었습니다.
겉모습이나 언어, 감각이 달라도 함께 즐기기 위해선 어떤 방식이 필요할까? 이 질문에서 공연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다양한 예술의 언어로 관객의 감각을 두드리고 싶었습니다.
연출님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싶은 연극은 어떤 것일까요?
김지원 저는 모든 감각이 평등한 언어라고 믿습니다. 무대에서는 자막, 음성, 수어, 움직임, 소리 등 각각의 방식이 고유하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장치를 넘어, 감각 자체가 예술 언어로 공존하는 무대. 누구나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무대.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제안하는 연극. 그것이 제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모습입니다.
<마치, 그라이아이> 공연 사진 (사진출처. 극단 다빈나오)
혹시 부산에도 공연 소식이 있을까요?
김지원 극단 다빈나오 자체의 부산 공연 계획은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연출한 뮤지컬 <푸른 나비의 숲>과 접근성 높은 연극 <해리엇>이 순회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초청해 주신다면 언제든지 달려가고 싶습니다.
끝으로 부산의 관객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지원 예전에 부산에서 <소리극 옥이>를 공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 앞자리에 앉으신 80세 이상 어르신 세 분이 저신장 배우를 보시고 “쟤가 난쟁이지? 잘하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순간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배우가 인사를 나오자, 세 분은 누구보다 큰 박수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배우는 무대 위에서 당당한 배우로 인정받고 있었고, 오랜 편견과 시선이 큰 박수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장애와 비장애, 세대와 지역을 넘어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이야말로 진짜 연극이라고 믿습니다. 부산 관객분들과도 자주 만나 뵙길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지원 연출의 무대는 경계를 해체하고 감각을 확장하는 예술적 실천이다. 그의 연극은 장애와 비장애, 인간과 자연,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모든 존재가 서로의 감각을 통해 연결되는 순간을 탐구한다. 자막, 음성, 수어, 움직임, 소리와 침묵이 동등한 예술 언어로 공존하는 그의 무대는, 단지 ‘배려의 장치’를 넘어 예술의 본질적 확장성을 증명한다. 그의 연극은 다름을 소거하지 않고, 다름과 함께 호흡한다. 김지원 연출이 지향하는 세계는 모든 감각이 평등하게 존재하는 공간, 즉 서로 다른 존재들이 예술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그의 무대 위에서 우리는 인간을 이해하기보다, 인간을 ‘감각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가 만드는 무장애 공연은 그 어떤 공연보다 섬세하게 모두가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살피고 또 살피는 모두의 예술공연으로 만들어진다. 향후 우리의 모든 예술이 지향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생각된다.

※ 이 글은 인터뷰이와의 전화 및 서면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옥순주

연극을 사랑하며 그 안에서 성장한 삶의 단상을 모아 「나의 페르소나 별이」라는 책을 냈다.
현재 심리극역할극전문상담사로 연극을 활용한 치유적 직업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자기서사극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