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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다 ②

눈으로 보고, 귀로 먹는 감 - 자장가프로젝트

한영신

반갑습니다. 이번 자장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예술을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임산부 한영신입니다. 저를 한 문장으로 소개해 본적은 오랜만이라 어떻게 적을까 고민이 되었는데요. 이 프로젝트의 취지처럼 ‘노래를 사랑하는 임산부’라면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담백히 적어보았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 가을, 자장가 프로젝트를 통해 무엇을 이루었는지 그것이 저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차근차근 풀어나가 볼까요?

태몽에서 시작된 노래, 황금이와의 첫 여정

저는 좋은문화병원에 진료를 다니기에 자연주의 출산센터(LTC) 담당자님께 소식을 전해 듣고 병원추천으로 거의 막차를 타고 지원하게 되었어요. 노래를 평소 듣는 것도, 부르는 것도 무척 좋아했지만 한 번도 ‘직접 만들어볼까?’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기에 가보지 않은 길이 꽤나 어렵거나 복잡할까 살짝 망설여졌던 것도 사실이에요. 프로젝트의 규모도 상당히 커보였거든요. 근데 그래서였을까요 이런 걸 지금 안해보면 언제 해봐? 라는 마음과 결정적으로 황금빛 새들이 온 집에 둥지를 틀고 노래를 부르던 배 속 아이의 태몽에 이끌려 운명인가보다! 하고 짧은 망설임에 마침표를 찍었답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황금이와 함께 노래를 만들고 느낀다면 무척 행복할 것 같다는 확신이 차올랐거든요

엄마와 아기가 함께한 자장가 창작의 기록

그렇게 참여하게 된 멋진 프로젝트! 저에겐 설레는 낯선 기분이 열정으로 다가왔는데요.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9월, 매주 화요일)
1차: 참가자들 자기소개와 인사를 통한 마음열기, 전반적인 일정 소개
2차: 배 속 아기에게 적어 온 편지 낭독, 이를 기반으로 작사 노트를 활용한 가사 추출
3차: 만들 노래의 전체적인 가사 틀 확정, 정해온 대중음악 가이드곡을 기반으로 SUNO를 활용해 AI 곡 뽑아보기 연습
4차: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쇼케이스에 전시될 ‘기쁜 눈물’ 책 제출, 제작될 앨범 구성 소개 및 CANVA를 활용한 포토카드 디자인 연습
5차: 작곡가 및 예술인 분들과 함께 확정받은 본인 노래 전원 가창 연습, 주제곡 불러보기 및 파트 나누기
10월 1~10일: 가족별 녹음실에서 1차 리허설 (기기사용법, 노래연습 등)
10월 12일, 19일: 팀 별 스케줄에 따라 실제 녹음 진행
이후: 앨범제작 + 쇼케이스 개최

각 차시별 황금이와 맛있게 먹은 감 - 아이랑

임신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사실 비슷한 주수의 산모들끼리 한자리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요. 그래서 온라인으로 많이들 소통하곤 합니다. 저 역시 그랬고요.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1차]부터 저와 비슷한 주수의 산모분들과 유머러스하신 ‘조용한 수다’ 김석휘 감독님, 유쾌하게 AI를 설명해주신 최윤정 예술 강사님 등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따뜻한 분위기를 타고 큰 시너지와 감정적 감화가 일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더불어 눈앞에서 생생하고 로맨틱했던 산부인과 전문의 부문현 과장님의 기타연주와 노래공연, 임산부들이 궁금해하던 Q&A 시간까지 정말 알차고 또 알찼어요.
[2차]에서는 편지를 낭독하며 서로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는데요. 태명을 왜 뽀실이, 감자, 또복이, 복덩이, 황금이로 지었는지와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가족들의 메시지 앞으로 얼마나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지 등, 이 모든 것들이 편지에 녹아있어 귀 기울여 공감하며 그동안 정적인 일상 속 안일하게 흘러가던 저의 감성에 크나큰 두드림이 되었답니다. 평상시 편지를 적을 일도 잘 없지만 적을 때와 달리 모두 앞에서 마이크로 낭독을 하자니 점점 눈가가 촉촉해 지더라구요. 이 감정은 뭘까? 나에게 어떤 감흥을 불러 일으킨 걸까? 부슬부슬 내리던 비와 함께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참을 생각해야 했답니다.
다음으로 요즘은 AI 활용이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노래와 앨범 제작에도 빠질 수 없었는데요. 그것을 몸소 느낀 순간이 바로 [3차]와 [4차]였습니다. 주변 지인들이 AI로 노래를 만들어 보내주는 걸 들어본 적은 있어도 제가 직접 해볼 용기는 없었는데요. AI 파트를 얼마나 쉽고 간단하게 알려주시던지 전혀 어렵지 않게 현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나가는 경험이었어요! 사실 임산부가 되고 나면 육아용품이나 태아의 성장과 발달 등에서는 전문가가 되지만 그 외적인 부분에서는 약간 단절되는 듯한 느낌을 받거든요.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그 경계를 확 깨뜨려 주는 신선하고 청명한 순간이었답니다. ‘어? 나도 쉽게 할 수 있네?’ 하며 자신감을 채움받았던 것 같아요.
또 추가로 제출한 아날로그 감성 뿜뿜의 ‘기쁜 눈물’ 책은, 책을 제공해 주시고 저희의 임신 10개월 간의 이야기로 꾸며갔었는데 임신을 알게 된 시점부터 남편의 반응, 되돌아본 결혼식, 우리 가족이 황금이와 함께한 봄, 여름, 가을 그리고 함께 할 겨울까지 아기가 크면 보여 줄 상상을 하며 기쁜 마음으로 정성스레 꾸몄더니 평생을 보관할 책이 되었답니다. 육아하며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 속에서 실용성만을 추구하던 저에게는 마냥 흘러 갈 것에 마음껏 투자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 같아 마치 선물을 받은 것처럼 좋았답니다. ‘몰입’이라고 하죠. 어딘가에 진-하게 푹- 빠졌다 나올 수 있다는 건 세월이 가며 적어지는 일인 것만 같았는데 크나큰 삶의 활력소가 되더라고요. 5팀의 책 일부를 스크린에 띄워 다른 분들의 일상도 엿볼 수 있는 아주 재밌는 시간이었어요.
마지막으로 어느 정도 결과물이 눈에 보였던 [5차]. 제가 좋아하는 노래도 마음껏 불러볼 수 있는 시간이어서 ‘신나게 부르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오겠다’라고 마음먹었던 날인데요. KBS에서 촬영도 오신다고 하여 백 년 만에 단장하고 갔더니 몸도 마음도 정말 기분이 났답니다.

다시 찾은 감, 감흥, 단감 - 나에게

이 부분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제가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 알려드리면 좋을 것 같은데요. 저는 명랑한 6살 누나와 귀여운 4살 직진남을 키우고 있는 ENTJ 애 둘 맘입니다. 결혼해서 그 해 아이를 가지곤 쭉 제가 없는 생활을 해 온 샘인데요. 예를 들면, 의료적 개입 없는 자연주의 출산을 통해 각 1시간, 30분 만에 아이를 낳아 조리원에 가서 일주일은 모든 수유콜을 갔고 나머지 일주일은 잠에 못 이겨 새벽 2시 수유콜만 제외하고 다 갔어요.
첫째 18개월, 둘째 27개월 완모를 하였고 천 기저귀로만 아이 둘 10개월 꽉 채워 썼습니다. 이유식은 매 끼니 메뉴가 더해지는 방식으로 유기농과 무농약으로 만들어 먹이고 쌀가루도 직접 쌀을 갈아 매번 죽을 쑤고 간편하게 나오는 냉동 큐브나 전자레인지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육아를 해왔습니다. 지금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요. 첫째 어린이집은 둘째 태어나기 한 달 전인 24개월에 보냈고 둘째는 셋째 가진 달인 29개월까지 최대한 데리고 있다 보냈습니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지도 않았어요. 이유식 먹던 시기부터 돌 때까지 점차 늘려가며 문화센터 주1~3회 다니고 몬테소리, 음악 자극, 원어민 노출, 생태체험 등 다 적을 수는 없지만 정말 부지런히 데리고 다니며 여러 가지 경험을 꾸준히 해볼 수 있도록 지원하였지요. 이 이야기로만 전체 글보다 더 길게 적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놀이 교육이 아닌 학습 우선시는 아니여서 운 좋게 제 기준 1순위 자연 속 배움을 우선시하는 숲유치원도 10:1의 경쟁률을 뚫고 당첨되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등하원 25분씩 남편이랑 제가 라이딩하고 있답니다.
어때요? 여기까지만 봐도 숨 막히지 않나요. 물론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커 주는 아이들에게 감사하고 커가면서 같이 일정 세우며 저와 발맞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면 행복합니다. 한 달, 한 주, 매일 단위로 계획에 맞게 일상이 흘러가니 작은 성취감들도 느끼고요. 근데 여기에는요, 제가 없더라고요. 물론 대한민국 어머니들이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저는 철저하게 제가 없는 삶을 살고 있더라고요. 모두 쏟아부을 만큼 말이죠. 이타적인 행복에 만족 기준을 맞추고 저를 다독이며 살아 온 건데 그게 제 욕심과 완벽주의 충족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그렇기에 이번 자장가 프로젝트 참여는 더더욱 저에게 큰 의미가 있었답니다. 온전히 100% 제가 좋아해서 하고 싶고 잘해서 기쁘게 할 수 있는 저에 대한 투자였거든요. 학창 시절부터 소프라노 파트장을 8년간 했던 잊고 지낸 저의 모습과 노래 부르던 감을, 그것을 느끼던 감흥을 되살려 주는 가을의 달콤한 단감 같은 순간들이었어요. TJ 성향은 ‘다소 기계 같다’ 하죠. 육아에도 제 감정을 많이 섞지 않는 편인데 아마 그게 저의 생존방식인 것 같기도해요. 근데 이런 제가 평상시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인 편지를 낭독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이 가을을 온전히 가슴으로 느끼며 마음 벅찬 9월을 보낼 수 있었다니! 꿈만 같은 9월이었고 앞으로 있을 나머지 일정 또한 그럴 듯 합니다. 내가 살던 삶보다 이 프로젝트가 줄 수 있는 행복에 감화되어 이 길 끝엔 어떤 내가 되어있을지 더 기대되는 요즘이에요.

더 많은 감을 따게 해준다면?

선율을 하나하나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최종 노래의 탄생은 가이드를 제가 선택하고 그것을 참고하여 작곡가님께서 제작해 주시는 방식이었잖아요. 몇 날 며칠 잠을 설쳐가시며 5팀의 노래를 만드느라 수고 많으셨을 작곡가님 생각에 마음이 저릿하면서도 한 팀꺼만 만든다면 재밌지 않을까? 선율과 꾸밈음 등을 직접 넣어보며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설레었네요.

가을에 익은 감 Golden

제가 이번에 만드는 노래 제목은 Golden인데요. 아직 부제는 정하지 못했어요. 감독님께서 25년도에 유명했던 제목을 담아보는 것도 만든 시점을 기억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하셔서 고민 끝에 선택해 보았답니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던 노래 ‘사랑의 하츄핑OST-처음 본 순간’을 가이드곡으로 삼아 뮤지컬 노래 속 웅장, 고요, 따뜻함이 담겨있는데요. 선율도 참 아름답답니다. 바람이 있다면 제 노래도 누군가에게 끊임없는 신선함으로 다가갈 수 있길 바라며 그날의 감성 속에서 다양한 감흥을 느낄 수 있기를.

반팔을 입고서 시작했던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추석 연휴를 지나 앞으로 10월 녹음과 11월 쇼케이스만을 남겨두고 있네요. 무언가에 도전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았던 임산부의 몸으로 기나긴 대장정의 반이나 왔다고 생각하니 무르익어가는 이 가을, 영근 햇살로 지은 옷을 황금이와 함께 입고 있는 것 같은 행복한 느낌이 듭니다.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요.

한영신

성악을 통해 길러온 감정 이해력과 EQ를 바탕으로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언어 속 감정의 미묘한 결을 탐구하며, 공감 능력을 언어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