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제1회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BPAM) <BPAM Choice 쇼케이스>를 통해 처음으로 이 행사를 접했을 때, 우리는 지역 예술계가 국제적인 교류의 장을 마련했다는 사실만으로 큰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지만, 그만큼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한 경험이었다. 부산문화재단이 주최한 BPAM은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공연예술의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새로운 플랫폼이었다. 2023년부터 2025년 현재까지 이어진 여정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깊은 울림을 남겼다.
BPAM은 공연예술 작품의 유통 판로를 개척하고, 국내외 기획자와 예술가가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특히 일반 시민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축제형 마켓의 형식은 공연예술을 사회 속으로 끌어들이며, 관객의 관심과 호응을 새롭게 이끌어냈다. 전문적인 산업 관계자들의 만남뿐만 아니라,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무대가 마련됨으로써 관객은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누리고, 예술가들은 창작에 대한 신선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은 단순히 작품을 거래하는 자리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공연예술의 흐름을 주도하는 마켓들이 존재하지만, BPAM은 부산이라는 도시만의 특성과 개방성을 살려 시민과 예술가,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이는 독창적인 장을 만들어냈다. 아비뇽 페스티벌이나 서울아트마켓(PAMS)처럼 유통 중심의 구조를 넘어서, 시민 참여와 현장 체험을 강화하여 지역성과 국제성을 동시에 확보했다는 점에서 큰 차별성을 지닌다. 무대와 부스, 학술 프로그램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부산은 단순한 개최지가 아니라, 아시아 공연예술 교류의 새로운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BPAM의 가장 큰 성과는 ‘연결’에 있다. 예술가와 기획자, 지역과 세계, 무대와 시민을 잇는 연결이 이곳에서 실현되었다. 한 작품이 해외 초청으로 이어지고, 새로운 협업의 계기로 확장되며, 부산이 국제공연예술 네트워크 속에서 존재감을 키워가는 모습을 체감할 수 있었다. 실제로 지역 단체들의 작품이 해외 프로그래머에게 소개되어 국외 무대로 나아가고,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과 새로운 협업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BPAM이 지닌 실질적 의미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경험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에게도 큰 자극이 되었고, 순수예술이 지닌 한계를 넘어 보다 다양한 층위의 관객과 만나는 가능성을 확인하게 했다.
현대무용단 ‘자유’는 1995년 창단 이래 부산을 기반으로 꾸준히 창작 활동을 이어 온 전문 무용 단체이다. 부산의 자연과 장소성을 무대의 배경으로 삼아 야외 공연을 펼친 바 있으며, 참신한 안무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지역 무용계에 활력을 불어넣어 왔다. 2021년 국제안무가육성공연 AK21에서 「밀고 당기기」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제31회 부산무용제에서는 「They Live」로 대상, 안무상, 우수 무용인상을 받아 전국무용제에 진출해 은상을 거두었으며 이어 최근 열린 제34회 부산무용제에서는 우수상과 우수무용인상을 수상하였다. 이러한 성과는 단체의 예술적 역량을 입증했으며, 최근에는 서울과 해외 무대까지 활동을 넓히며 부산을 대표하는 현대무용 단체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현대무용단 ‘자유’는 2023년 제1회를 시작으로 2024년 제2회, 2025년 제3회까지 BPAM에 매회 참여하며 무대와 부스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다. 매년 축적된 경험은 단체의 활동을 한층 확장시키는 발판이 되었고, 올해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 <BPAM 쇼케이스>에서는 ‘침묵’을 주제로 한 작품 「Obscured Silence」를 선보였다. 작품은 말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전하는 ‘침묵의 힘’을 탐구하며 관객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일반적으로 침묵은 단순히 소리나 소음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만, 우리에게 침묵은 고요한 평정심이자 억눌린 분노, 깊이 가라앉은 절망, 차마 드러낼 수 없는 굴욕 등 다양한 감정을 품은 다층적 상태였다. 각자가 지닌 침묵의 모양은 다르지만, 그 안에는 말보다 강력한 힘이 숨어 있다. 우리는 침묵이 발현되는 순간 이전에는 갖지 못했던 질문들과 새로운 탐색을 만나게 되며, 대화와 상호작용 속에서 움직임이 변화하고 확장되는 과정을 실험하고자 했다.
작품은 또한 현대 사회의 과잉된 언어 환경에 대한 성찰이기도 했다. 정제되지 않은 수많은 말들이 무분별하게 퍼져나가며, 참과 거짓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말을 아끼고 침묵을 통해 관계를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Obscured Silence」는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잠시 물러서 타인과 사회를 주의 깊게 관찰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침묵 속에서 더 나은 소통과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제시한다. 고요와 절제, 그리고 관계 속에서의 응시를 통해 춤은 언어를 넘어선 또 하나의 소통임을 드러냈고, 관객과 해외 관계자들이 함께 호흡하는 순간, 예술이 나눔과 교류의 장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단체의 성과이자, 동시에 BPAM이라는 무대가 마련해준 기회의 결실이었다.
무대에서만이 아니라 부스에서의 만남도 의미 있었다. 작품을 설명하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해외 기획자들은 지역에서 시작된 창작물이 어떻게 세계 무대와 연결될 수 있는지를 궁금해했고, 우리는 우리의 예술적 고민과 방향성을 솔직하게 공유했다. 이러한 대화는 단순한 홍보를 넘어, 서로의 문화와 맥락을 이해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부산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세계와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은 BPAM이 주는 가장 값진 선물이었다.
BPAM에서 경험한 것들은 부산 공연예술의 현재를 보여줌과 동시에 미래를 내다보게 한다.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고 실험적 시도가 자유롭게 펼쳐지는 현장은 부산을 공연예술의 교류지로 만들어가고 있다. 예술가들에게는 새로운 도전과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토양이 되고, 시민들에게는 일상에서 예술을 만나는 또 하나의 길이 되어준다. 무엇보다 이러한 자리가 예술가와 시민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점에서, BPAM은 단순한 마켓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번 가을호의 주제처럼,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BPAM)은 ‘감(感)’의 여정이었다. 설렘의 감각에서 시작해 교류의 감응으로 이어지고, 성찰의 감화와 성과의 결실로 맺어졌다. 앞으로도 부산에서 세계로 뻗어가는 이 무대가, 예술의 울림을 더욱 깊고 넓게 전해주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부산문화재단이 마련한 이 자리를 통해, 부산 공연예술은 더 큰 무대로 나아가고 있다.
이언주
현대무용단 ‘자유’ 대표.
안무가 이언주는 자신이 직접 경험하며 느낀 감정이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고 친숙하게 풀어내고자 한다.
관객들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도록 작품을 표현해내는 무용수들과의 정서적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작업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