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그리고
지난호 보기

끝이 아니고 끈

박미라

무시로 날아드는 고양이 털 때문에 끈끈이 롤러를 샀다. 끈끈이가 지나간 곳이 말끔해진다.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던 고양이 털이 끈끈이에 찰싹찰싹 달라붙는 걸 보면 묘하게 기분이 청량해지면서 청소하는 맛이 난다. 끈이 두 번 반복되면 ‘끈끈이’가 된다는 건 자못 의미심장하다. 가느다란 연결이 반복되고 쌓일 때 비로소 서로에게 ‘끈끈한’ 힘이 된다는 뜻으로 해석해 본다.

이탈리아의 유명 아동문학가인 다비드 칼리의 그림책 <나는 기다립니다>는 끈으로 이어진 사람의 일생을 보여준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이어지는 빨간 실은 우리 인생의 굽이굽이 연결됨을 잘 표현하고 있다. 기다림, 만남, 상실, 그리고 또 다른 시작. 누구에게도 예외 없는 인생의 진리는 연결이다. 책을 덮고 나면 깨닫게 된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완전히 혼자였던 적은 없었다고.

생각해 보면, 삶에서 ‘끝’이라고 믿었던 순간들 대부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다. 입영 열차를 타기 전, 헤어짐에 복받쳐 오르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엉엉 울어버린 덩치 큰 동기는 4주 뒤 휴가를 받아 아무렇지 않게 돌아왔고, 가슴을 움켜쥐며 이별을 고했던 연인은 일주일 만에 캠퍼스 모퉁이에서 다시 나타났다. 끊어진 것 같아도 어느새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이어졌다.

삶과 죽음 또한 그렇게 이어진다. 한 사람의 시간이 멈추어도, 그가 세상에 남긴 말과 행동, 그리고 작품은 다른 이의 삶을 움직이며 다시 살아난다. 이 세상을 떠난 존재가 문득 우리의 삶 한 귀퉁이에 나타나는 순간을 자주 체감한다.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연결이다. 수많은 영화와 소설, 작품들이 죽음 이후의 삶을 그리는 이유도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의 현장에서도 보이지 않는 끈은 늘 존재한다. 무대 뒤쪽에서 마지막까지 호흡을 맞추는 스태프의 손끝에서, 차가운 공방의 작업대 위에서 작품을 다듬는 작가의 시선에서, 전시장 한편에서 조용히 머무는 관객의 숨결에서도. 서로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지만, 예술을 통해 공감하고 이어진다. 이 끈들이 모여 하나의 공연이 되고, 한 권의 책이 되고, 한 점의 작품이 된다. 예술은 결국 홀로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잇는 끈 위에서 펼쳐진다.

지역의 예술 생태계는 서로의 끈이 더욱 필요하다. 누군가의 전시가 누군가의 창작을 자극하고, 한 공연의 열정이 다른 작업으로 연결된다. 때로는 질투로 때로는 응원으로 이어지는 예술인의 끈이 부산의 창작 생태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 그동안 <공감 그리고>는 그 온기를 기록하고 확장하는 통로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제59호 <공감 그리고>는 그 온기를 기록하고 확장하는 통로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이번 겨울호로 종이 잡지로서 이별을 고한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까지 삶의 계절을 건너는 동안 보이지 않는 끈들이 우리를 붙잡아 왔다는 걸 느낀다. 마무리하고, 덮고, 정리하는 겨울의 시간. 우리는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종이 잡지에서 웹진으로 넘어가는 전환점 또한 끈으로 연결돼 있다. 매체는 바뀌지만, 독자와의 신뢰,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담겠다는 의지, 서로의 예술을 잇는 감각은 여전히 견고하다. 형태만 조금 달라질 뿐, 관계는 변함없이 이어진다.

<나는 기다립니다>의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게 끝난다. ‘끝’이라는 단어의 ‘ㅌ’에 작은 곱표가 그어지고 ‘ㄴ’으로 바뀐다. 끝이 아니라 끈이다. <공감 그리고>로 연결된 끈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박미라

동화작가.
달콤, 쌉쌀, 오싹, 포근한 이야기를 찾아 오늘도 두 눈에 불을 켜고 모험을 나선다.
「다정한 고랄라 목욕탕」 「별이와 북극여우」 「오만데삼총사의 대모험 1, 2」 등을 썼다.